알코올 중독으로부터 살아남은 가족의 이야기
부모로부터, 과거로부터 자유로워지자 나의 진짜 문제가 하나둘씩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알코올에 가려져 있던 성격적 결함들이었다. 부모님만 떠나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건 정말이지 큰 착각이었다. 어릴 적 경험들, 기질들, 여러 가지 복합적인 문제들은 고스란히 내 뼈에 새겨져 삶의 곳곳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었다. 뒤틀리고 어그러진 생각들, 정서적인 불안과 두려움, 낮은 자존감 등 한두 개가 아니었다. 이렇게 압도당할 것 같은 문제 앞에서 알아넌은 다음과 같이 제안한다.
오늘 하루를 살자_One day at a time
오늘 할 수 있는 일을 하라는 것이다. 더도 덜도 말고 오늘 할 일만 하라는 것이다. 지나간 것은 지나가 버렸고, 다가올 일은 무엇하나 예측하기 어려우니 그저 내게 주어진 오늘을 살라는 것이다. 정말 탁월한 슬로건이다. 특히 나처럼 완벽주의가 있는 사람에게는 더욱 그렇다. 나는 오늘 할 수 있는 일만 하면 된다. 나의 성격적 결함을, 삶의 문제들은 한두 개가 아니지만 이것을 한 번에 모두 해결할 필요는 없다. 오늘은 오늘의 문제만, 오늘 할 수 있는 만큼 하면 된다. 나머지는 내일 또 생각할 것이다.
이제껏 도망치기만 했던 학업에 욕심이 생겼다. 그렇게 입학한 대학원에서의 공부는 무척이나 나를 설레게 했다. 정말이지 신나게 공부했다. 강의 하나하나 재미없는 얘기가 없었다. 발표 준비를 하는 것도, 논문 준비를 하는 것도 즐거웠다. 무엇보다 토론식 수업은 정말 매력적이었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는 것도, 내 생각을 이야기하는 것도 즐겁고 흥미진진한 경험이었다.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즐거움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오래된 열등감이 나의 발목을 잡아끌었다.
‘그래 봐야 너는 명문대를 나온 것도 아닌데 지금 잘하는 게 무슨 소용이니. 너는 결국 실패할 거야. 사람들이 네 실체를 알게 되면 너를 우습게 보고 무시할 거야.’
대학 입시에서 한 번의 실패가 인생을 계속해서 괴롭히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방아쇠를 당긴 것에 불과했을 뿐 진짜 문제는 내면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수치심, 자기혐오와 낮은 자존감이었다. 내 안에 있던 오래된 메시지가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나는 점점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소리가 커지면 커질수록 무사히 졸업을 할 수 있을지 압박이 심해지고 하루하루 수업을 듣는 일조차 버겁고 힘들어졌다. 그토록 즐거웠던 배움의 시간은 피하고 싶은 고통이 되었다. 정말로 나는 ‘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 갔다.
그 당시 전공 수업은 돌아가면서 원서를 번역하고 요약해서 발표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는데 실컷 발표 자료를 잘 준비해 놓고 사람들 앞에만 서면 불안증이 몰려와 반도 얘기하지 못한 채 내려오곤 했다. 내가 이상하게 말하고 있는 건 아닐까, 발표 내용이 완전히 틀린 건 아닐까, 번역은 제대로 한 걸까 나에게 확신이 부족하니 내가 한 모든 일에 확신이 없었다. 발걸음은 무겁고 내가 너무 한심하게 느껴졌다. 이제껏 재미있게 공부해 왔는데 학교 가는 것도 싫고 발표가 있는 날이면 잠에 들지 못할 정도로 스트레스가 심했다. 눈물이 났다.
‘난 정말 바보 같아, 이렇게 바보 같은데 무슨 대학원은 다니겠다고 입학을 해서 이 고생일까? 그냥 생긴 대로 살지 욕심은 많아서 정말 한심하다.’
내 안에서 또다시 부정적인 생각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너는 어차피 할 수 없는 사람, 해 봐야 안 되는 사람이라고, 해 봐야 안 될 거라고 사람들이 손가락질하고 창피를 당하기 전에 못한다고 항복하고 도망쳐 버리라고 말하고 있었다. 압박감에 덜덜 떠느라 중요한 발표를 망친 어느 날 온갖 절망적인 생각을 하던 끝에 알아 넌 후원자(Sponsor)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자마자 쏟아진 눈물에 엉엉 울며 하소연하는 내 얘기를 끈기 있게 듣던 후원자(Sponsor)는 한 가지 제안을 했다.
거울 속 나의 눈을 보며 “사랑한다”라고 세 번 말하기.
너무 유치한 제안에 실소가 나왔다. 미안한 말이지만 완전히 개소리라고 생각했다. 알아 넌 모임까지 엉터리가 아닌가 절망스러웠다.
‘이게 뭐야? 지금 겪는 문제가 어떤 건지는 알아요? 나와 같이 수업을 듣는 사람들은 현직에서도 이미 잘 나가는 사람들에, 해외 명문대 출신에, 적어도 국내 대학에서 강의 정도는 가뿐히 하는 사람들뿐이라고요. 근데 무슨 나한테 사랑한다고 말해주라는 엉뚱한 조언을 하는 거예요? 내가 무슨 유치원생인 줄 알아요?’
그런데 마음 한 켠으로는 뭐가 됐든 한번 해 보고 싶기도 했다. 먼저는 나의 후원자가 매우 신뢰할 수 있는 분이었고, 다음으로는 정말 절박했기 때문이다.
그날 밤 결국 나는 거울 앞에 섰다. 놀랍게도 눈물이 쏟아졌다. 거울 속의 나를 쳐다보는 것도 괴로웠기 때문이다. 거울에 비친 나와 눈을 마주치는 것이 힘들었다. 너무나 큰 충격이었다. 호주에서, 인도네시아에서, 태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사랑한다 말해 주었지만 정작 나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 거울 속 내가 혐오스러웠다. 밀어내고 싶었다. 동시에 눈물이 쏟아졌다.
‘나를 이렇게 미워하고 있었구나. 이렇게 나를 밀어내고 있었구나. 그런데 너무나 사랑하고 싶었구나. 그동안 참 외로웠겠구나. 어쩌면 그래서 이렇게 병들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날 밤, 하염없이 쏟아지는 눈물에 샤워기를 틀어 놓고 엉엉 울어버렸다. 그동안 외롭고 서러웠을 나의 영혼에 한없이 사과하면서.
오랫동안 내면에 뿌리 박힌 생각을 바꾸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무리 주변에서 좋은 말을 해 줘도 마치 보이지 않는 방어막이 있는 것처럼 모두 다 튕겨져 나갔다.
나는 형편없는 사람이야.
나는 뭘 해도 안 되는 사람이야.
나는 늘 실패한 걸.
나는 가치 없는 사람이야.
나는 전혀 소중하지 않아.
이제껏 스스로에 대한 이런 평가를 되새기고 되새겨 마침내 내가 정말 그런 사람이라고 믿고 있었다. 절망스러웠다.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걸까. 어쩌다 이렇게까지 나를 미워하게 된 걸까. 왜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을까. 내가 뭘 그렇게까지 잘못했다고, 내가 뭘 그렇게까지 못난 사람이라고 왜 그랬을까.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뭘 어떻게 해야 나를 살릴 수 있을까.
더 이상 이렇게 살 수 없다고 결심했다면 용기를 내야 했다. 내 안에 뿌리내린 썩은 나무를 송두리째 뽑아 버리고 새로운 씨를 뿌리고 잘 가꿔야 했다. 물론 쉽진 않겠지만 지금부터라도 해 보기로 했다. 눈을 마주치는 일부터 시작해서 사랑한다고 말해 주고 내가 생각한 것처럼 그렇게 최악은 아니라는 사실을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말해 주기로 했다.
“너는 아무 잘못이 없단다. 너는 그저 연약한 존재, 여리고 착한 아이였을 뿐이야. 이제부터 내가 너를 보호할 거야. 아무도 너를 상처 내지 못할 것이고, 아무도 너를 함부로 평가하지 못하게 할 거야. 너는 지금부터 나의 보호 아래에서 아주 소중하게 자라날 거야. 이제부터 나는 너의 보호자가 되어 줄게. 나를 믿어, 그리고 이제 일어서서 우리 함께 가자.”
되새기고 또 되새겼다. 정말로 나 자신에게 이렇게 약속했다. 절대로 나를 비난하거나 미워하지 않겠다고, 이제부터는 무조건 내편이 되어 주겠다고 다짐했다. 이렇게 다짐하면 정말로 그렇게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제부터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실천할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