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코올 중독으로부터 살아남은 가족의 이야기
역기능 가정의 자녀들은 대부분 부모님과의 관계에서 크고 작은 문제를 겪게 되고, 이 문제들은 자신의 삶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친다. 우울증에 걸리거나 자포자기해 버리기도 한다. 좌절하고 원망하고 자신을 비하하며 힘든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그러나 희망은 있다. 나에게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나는 나에게 가장 최선의 것을 찾아서 선택해야 한다. 언제까지고 모든 게 부모 잘못 만난 탓이라, 라고 합리화할 수는 없는 일이다.
무기력은 인생의 가장 큰 독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거든 가장 작은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죽지 않으려면, 반드시. 가장 작은 일부터, 천천히 시작해야 한다. 나의 경우는 2천만 원을 들고 독립한 것이 그 시작이었다.
모임의 한 멤버가 울며 말했다. 내가 왜 하필 이런 부모를 만나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하냐고. 내가 무슨 잘못을 했길래 선택하지도 않은 일 때문에 이런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야 하냐고. 눈물이 났다. 나도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알 수 없는 일이다. 어째서 누구는 다정하고 건강한 부모님을 만나 행복한 삶을 살고 누구는 병에 걸리고 학대하는 부모를 만나 고통스런 삶을 살아야 하는지 말이다. 인생이 수학처럼 공식에 맞춰 딱 떨어지는 것이 아니니까 앞뒤로 모순투성이인 삶에도 저항 한번 못해보는 것이 나약한 인간이란 존재이다. 받아들여야지, 별 수 없다. 인생에 이유를 찾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없다. 이유는 모르니까. 그냥 내 인생이 이렇게 주어졌나보다, 그럼 어떻게 인생을 설계해야 내게 주어진(다소 불공정해 보이는) 패(牌)를 가지고 최선의 결과를 낼 것인가를 고민하는 수 밖에.
그렇다고 게임에서 빠질 수는 없는 일이니까, 어쨌든 해 봐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면 왜 내게는 이런 패 밖에 안 줬는지 따지고 불평 불만할 시간에 게임 운영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 훨씬 건설적이다. 게임에서 빠지는 옵션은 없다면 말이다.(부디 그 옵션은 선택하지 마시길)
다만, 그들이 부모가 된 시절의 시대적 배경이나 상황을 고려해 봤을 때 어쩌면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아 기른 모든 과정이 그들에겐 낯설고 두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온전히 사랑을 받아보지 못했으니 주는 데도 서툴렀겠지. 두 사람이 고작 20대 초반에 부모가 된 것이라는 걸 생각해 보면 그들이 대단히 성숙한 인격을 가지고 부모 역할을 했어야 했다는 원망은 지나치다.
그들이 원해서 그런 삶을 산 것은 아닐 것이다. 무지해서, 그게 최선인 줄 알아서 그랬겠지. 뜨겁게 타올랐던 나의 분노는 맥없이 힘을 잃어버렸다. 그토록 나약한 것이 나의 부모였다니. 나는 그들이 유능하고 완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불가능한 기대였다는 것을 알게 되자, 더는 이전처럼 원망할 수 없었다.
인고의 시간, 이해와 용서를 통해 마침내 나는 나의 부모를 부모로서가 아닌 한 사람으로서 응원하고 위로할 수 있게 되었다.
“그만하면 수고하셨습니다. 나름의 최선을 다했다는 걸 알았으니 더는 원망하지 않겠어요.”
한편, 나의 경험담은 AA들에게 어떤 깨달음을 준 모양이었다. 모임에서 한 중독자가 내 앞에서 고개를 떨궜다. 미안하다고 했다. 내 경험담을 들으니 자신의 딸이 생각난다고 했다. 자신이 딸에게 어떻게 ‘보상(12단계 프로그램의 과정 중 하나)’하면 좋겠냐고 묻는 그의 질문에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나의 부모가 미성숙했다는 것을 인간적으로 이해했다고 해서 내가 받은 영향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의 미성숙함과 나의 기질, 살아온 경험들이 어지럽게 뒤엉켜 내 삶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 원망할 상대가 허무하게 사라져 버렸으니 이제 내 힘으로 과거의 망령과도 같은 사슬을 끊어낼 차례였다.
나는 닥치는 대로 모임에 나가 프로그램과 회복에 대해 나눴다. 내가 무엇을 잘하고 있고 무엇에 약한지, 어느 부분에서 도움이 필요한지 숨김없이 투명하게 이야기했다. 수치심에 숨고 싶으면 숨고 싶을수록 더 나를 빛 가운데에 드러내기로 했다.
‘에라, 모르겠다.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무슨 상관이야. 일단 살고 보자.’
이태원에서 외국인을 대상으로 모임이 있었다. 외국인 멤버들은 좀 더 회복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원칙적이었다. 이점이 매우 마음에 들어 한동안은 외국인 모임에도 나갔다.
감히 말하건대 이 시기에 나는 '회복'에 목숨을 걸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의 내가 도대체 무엇을 봤기에 모임에, 프로그램에 그렇게 열심이었는지 신기하다. 살아야겠다는 열망이었을까. 엉망으로 부서진 집을 보며 '감사하다'던 그 멤버의 경험담이 충격이었을까. 그녀의 빛나는 얼굴을 보며, 나도 저렇게 빛나는 미소를 가질 수 있을까? 기대했는지도 모르겠다.
한 번에 많은 것을 생각하면 압도되는 것 같았다. 내가 정말 건강해질 수 있을까?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 알아넌은 매우 지혜로운 슬로건을 제안했다.
One day at a time. 오늘 하루를 살자.
낮은 자존감과 열등감, 자격지심, 분노로 가득 찬 내가 갑자기 건강해질 수는 없어도 오늘 하루 동안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한 가지 찾아서 해 볼 수는 있었다. 두려움이 많은 내가 갑자기 사람들 앞에서 나를 가감 없이 드러내고 나의 부족함까지 포용할 수는 없어도 오늘 하루 동안 부드럽지만 강하게 나의 생각을 이야기해 볼 수는 있었다. 그렇게 하루에 하나씩. 딱 하나씩만 해 보기로 했다.
그러자 조금씩, 삶의 궤도가 변하는 것이 느껴졌다. 변화가 시작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