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꿀 수 있는 용기_Courage to Change

알코울 중독으로부터 살아남은 가족의 이야기

많은 알코올 중독자의 가족들이 모임에 나오며 갖는 헛된 기대는 자신이 모임에 열심히 나오고, 프로그램을 성실히 하면 중독자가 단주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대개 이런 기대를 가지고 온 사람들은 금방 모임을 떠난다.


우리는 오직 나 자신만을 바꿀 수 있다. 나의 태도, 관점, 생각을 바꾸어 지금까지의 삶보다 나은 선택을 하도록 돕는 것이 프로그램의 목적이다. 인생이란, 우리가 이제까지 살아온 것처럼 잔혹하고 희망 없는 것이 아니며, 우리보다 앞선 경험을 한 사람들의 증언처럼 우리에게는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보다 나은 삶‘을 위한 선택.


이제까지 나의 삶은 마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사슬에 묶인 채 끌려가는 노예와 같았다. 나는 그저 주어진 숙명처럼 인생을 받아들여야 했으며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란 이번 생에는 없어 보였다.


이런 내게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은 대단히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선택할 수 있다고?



그렇다. 나는 선택할 수 있다. 더 이상 부모님과 같이 살면서 고통스러운 갈등과 증오를 목격하지 않아도 된다. 나는 부모로부터 독립해서 나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기로, 이제 진짜 ‘나의 삶’을 살아보기로 ‘선택’했다.






프로그램을 시작하고 6개월간 나는 엄마에게 절대로 먼저 전화하지 않았다. 엄마가 전화하면 3분 이내로 전화를 끊었다. 나름의 원칙이었다. 대화가 길어지면 서로의 안부를 묻는 것에서 신세한탄으로 이어질 것이 뻔했다. 참 잔인하게도 나의 회복을 가장 방해하고 있는 사람이 엄마였다.


‘동반의존’은 중독자 가족들이 겪는 매우 흔한 문제이다. 정서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유대감을 가지고 잔뜩 꼬인 실처럼 뒤엉켜 살아가는 것이다. 상대방을 ‘조절’하려는 의도를 가진 가족들은 결과적으로 자신의 삶은 물론 중독자의 삶까지 더욱 수렁에 빠지게 한다.


알코올 중독이 무서운 것이 이 점이다. 알코올 중독은 ‘가족병’인 것이다.


중독자만 환자인 것이 아니라 나도 병들었다니, 갈수록 태산이다. 나는, 당연히, 운이 지지리도 없어서 이 집에 태어나, 이런 부모 밑에서 고생하고 있는 가련한 자 아닌가? 내가 무슨 잘못이란 말인가?


그러나 나에게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점은, 역설적이게도 내가 늘 ‘나에게 최선인 선택’만을 하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했다. 최선인 선택은커녕 도리어 나에게 해가 되는 선택도 서슴지 않았으니까.


내가 성인이 되었음에도 부모를 떠나지 않기로 한 것도 나의 선택이다. 내가 집을 떠난다고 해서 부모가 나를 고소하거나 나를 묶어 둘 수 없다. 나를 고통스럽게 한 이 환경에 머물기로 한 이상 그에 대한 책임은 나에게 있었다. 좋지 않은 가치관을 가진 친구들과 어울린 것도 나의 선택이었다. 어느 시점부터 나는 친구들의 대화가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매일같이 돈과 스펙, 외모에 대한 이야기뿐이었다. 이제까지 누구보다 그런 대화에 앞장섰던 나였다.


슬슬 부모 탓만 하던 것이 머쓱해지기 시작했다. 나의 과거에는 무수히도 많은 나의 ‘선택’이 있었다.






모임에 참석한 지 5년이 지나가자 나는 더 이상 첫 번째로 경험담을 하지 않아도 괜찮게 되었다. 끝이 없을 것 같았던 원한이 바닥을 드러내고, 실제 나의 삶에서 겪는 갈등과 어려움을 프로그램과 함께 이겨내 보려고 고군분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과거에 사로잡혔던 나의 삶이 서서히 바로 지금, 오늘 살아 숨쉬기 시작했다. 이제 과거의 얘기를 해도 눈물이 나지 않았다. 겉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곪고 피가 나는 내면의 상처가 아물기 시작했다는 뜻이기도 했다.


프로그램에서 말하는 회복이 무엇인가, 하는 것은 내게 매우 중요한 의미였다. 나는 그곳에서 친구를 사귀거나 신세 한탄만 하며 시간을 낭비할 생각이 없었다. 황금 같은 내 시간과 에너지를 ‘회복’을 위해, 이 모임과 프로그램에 ‘투자’하고 있는 것이다. 낭비란 없다. 내가 원하는 것을 가장 효율적으로, 빠르게 쟁취할 것이다. 그러려면 ‘내가 무엇을 원하는가’와 ‘이 프로그램이 무엇을 주는가’가 일치해야 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는 모임은, 아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게 회복이든 성장이든, 어쨌든 내가 ‘정상인’에 가깝게 치유됨에 따라 우리 가족이 겪고 있는 병이 생각보다 복잡하고 어려운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버지가 술만 마시지 않는다면 해결되리라 생각했던 문제들의 상당 부분은 나와 엄마, 아버지 본래의 성격적 결함에서부터 온 것이라 술을 제외하고서라도 각자의 회복을 위해 좀 더 지혜롭게 이 문제를 바라봐야 했다.


하지만 그게 그렇게 쉬울 리가 없지. 아버지는 끝까지 자신이 애주가라고 우겼고, 엄마는 술만 아니면, 아니 아버지만 아니면 자신의 인생이 이토록 망가지지 않았으리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어떤 부분에서는 사실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정말 ‘술’만 사라지면 모든 문제가 사라질까? 모임에서 많은 멤버들이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고통스럽게 토해 내고 있었다.


그럼에도 가장 급한 불은 단주이다. 단주하지 않으면 그 이면에 숨겨진 문제들은 발견조차 못할 테니까.






내가 회복에 목숨을(죽기 직전까지 갔으니 정말 목숨을

건 것이 맞다.) 걸고 모임과 프로그램, 정신적인 치료에 몰두한 사이에도 엄마 아빠의 갈등을 계속되었다. 우리는 마치 보이지 않는 실로 연결된 것처럼 물리적인 거리에도 불구하고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았다.


물리적으로 분리되어 있으니 나는 그나마 상황이 조금 나았다고 할까.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가장 고통스러운 부분은 이런 점이었다. 엄마를 고통의 구덩이에서 건져낼 수 없다는 절망감. 엄마와 무관하게 내 삶만 건강해지는 것이 무슨 소용일까 하는 회의감. 엄마의 고통을 모른 체하고 있는 불효녀라는 생각이 짓누를 때마다, 나는 알아넌의 슬로건을 생각했다.



Let it begin with me. 나부터 시작하자.



내가 건강해지면, 어떤 식으로든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다 함께 죽을 순 없다.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기 위해 안전장비 없이 물에 뛰어들면 모두가 위험해진다. 물에 빠진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신을 구하러 온 사람에게 매달리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 가족이 지금 물에 빠진 사람과 같다고 생각했다. 내가 안전장비를 갖추고 들어가지 않으면 나 역시 물속으로 빠지게 될 것이다. 무모하게 달려들 순 없는 일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무엇보다 나부터 건강해져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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