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진눈깨비 내리던 날

by 잠자는집시

그 해 이른 첫 눈이 내린 날, 진눈깨비를 맞으며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엉엉 울며 집으로 걸어왔던 날. 내 마음은 아직도 그 때에 머물러 있는 듯하다.



임신 시도 3개월 차, 배란 초음파를 3번째 확인하고 여전히 배란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다는 의사 선생님 말씀에 역설적으로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이번 달은 글렀으니 얼른 생리하고 배란유도제 받으러 가야지! 하며 마음 편하게 생리를 기다렸다. 그런데 며칠 째 배는 슬슬 아파오는데 생리가 시작되지 않았다. 배란이 늦어 생리도 늦어질거라 생각은 했는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해본 테스트기에서 난생 처음 보는 두 줄.


천성이 쫄보인 엄마, 아빠는 얼떨떨했다. 기쁨과 환희보단 조심스럽고 두려운 마음이 컸다. 그런 걱정이 무색하게 아기는 잘 자라 스스로 집도 만들고 우렁찬 심장 소리도 들려주었으며 이내 입덧으로 나를 괴롭게 하며 크게 존재감을 내뿜었다. 결혼반지에 새긴 우리 결혼 생활의 모토, '오래오래 행복하게'의 줄임말로 '오복'이라 이름 지어줬다. 엄마아빠랑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자고.


조그맣고 동그란 다리 두 개를 본 날, 남편은 오복이와 가까워진 듯 했다. 그래도 아직은 얼굴을 본 적도 없는 사이니 좀 어색하다며 귀엽게 존댓말로 내 배에 대고 "잘 잤어요?", "잘 있나요?" 하고 속삭이곤 했다. 인생이 하나의 사진첩이라면 그 때 그 장면은 '행복'이란 이름으로 아주 크고 선명하게 남아 있다.


8주에 접어들며 나도 슬슬 마음이 놓여갔다. 뱃속에 있는 오복이가 점점 실감이 나고 비로소 정말 엄마가 된 것 같았다. 그간 걱정하셨던 회사 팀원분들께도 슬슬 말씀 드리고 인사팀에 단축근무 신청 방법을 문의했으며, 양가 부모님들께 서프라이즈 할 날을 계획하기 시작했다. 9주 째 되는 날 정기검진 하고 돌아오면 산후조리원도 예약하고, 초음파 앨범이랑 임밍아웃 카드도 주문해야지! 하며 그제야 조금 설렜다.


그렇게 정기검진을 하루 앞둔 금요일. 점심시간에 퇴근하는데 배가 너무 아팠다. 너무 추워 버스정류장까지 빠르게 걸어가는데 배가 쥐어짜듯 아파 걷기가 힘들 정도였다. 버스에 올라 타니 통증이 잠잠해졌고 왠지 불안한 맘에 곧 속으로 생각했다. '오복아 너무 쉽게 생각한 거 미안해. 제발 잘 있어줘.' 11월 어느 날, 버스는 회색 빛의 강남역을 떠나 왔고, 경부고속도로엔 흰 눈이 펑펑 내렸다.


초음파 화면으로 본 오복이는 주수에 맞게 자라 이제 제법 사람 모양 같았다. "아기 잘 있네요. 자궁이 크며 배가 아플 수 있어요." 라고 말씀..하실 줄 알았다. 그 말을 들으러 간거였으니까. 그런데 초음파 화면만 자꾸 바뀌고 진료실은 정적이 맴돈다. 우렁찼던 오복이 심장 소리도 희미했다. 무언가 잘못 되었다는 걸 바로 알 수 있었다.


눈물을 꾹 참고 침착하게 설명을 들었다. 계류유산으로 보이고, 이런 경우 심장이 다시 뛸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말. 그래도 내일 다시 담당 의사 선생님과 함께 확인해보자는 말. 수납을 하고 병원 문을 나서자마자 참았던 눈물이 거센 수압으로 쏟아졌다. 펑펑 내렸던 눈은 진눈깨비로 바뀌어 있었다. 주체할 수 없이 엉엉 울며 추적해진 거리를 걸어 집까지 왔다. 소식을 듣고 바로 퇴근하고 달려온 남편의 눈이 이미 빨갰다. 서로를 부둥켜 안고 우린 울었다.


나에게는 이성이라는 것이 있어 나는 이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 충격을 받으면 착각을 하듯 그렇게 나를 속이며 마음을 추스렸다. 그래도 한편으로는 다음 날 아침 병원에 갔을 때 마치 기적처럼 오복이 심장이 힘차게 뛰는 건 아닐까 하는 기대도 조금은 했다.


토요일 아침이 되어 담당 의사 선생님을 만났고, 역시 기적을 담기에 내 인생은 너무 평범하다는 걸 알았다. 동네 병원이라 소파술을 진행하지 않아 큰 병원으로 연계해 주셨다. 거기서도 소견은 같았다. 아기가 부어 있으며 심장 박동이 없고 난황이 커서 좋지 않다고 했다. 이런 경우는 대부분 염색체 이상이 유산의 원인일거라 했다. 바로 다음 주 월요일로 소파술 예약을 잡고 돌아왔다.


양가에는 본의 아니게 임신과 유산을 동시에 말씀 드리게 됐다. 수화기 너머로 처음 전한 말 "사실 임신했는데.."에 어머니 두 분 다 너무 기뻐하셨다. 그 뒤 단어가 유산일거라곤 상상도 못하셨겠지. 짧은 환호는 곧 실망으로 바뀌었다. 엄마는 금세 차분해져서 연신 괜찮다고 나를 위로했다. 어머니는 "내가 올라갈까?" 조심스럽게 물어보시다 이내 당신 대신 전복 한 박스를 보내시겠다 했다.


모두 나를 위한 말씀인 걸 알지만 "실패할 수도 있는거야.", "건강하지 못한 아기가 오면 안 되지." 하는 말이 가슴을 아린다. 비로소 아기가 불쌍하단 생각이 들었다. 아직 태아라 하기도 뭐한 2cm의 작은 존재지만 혼자서 어두운 곳에서 고군분투하다 심장이 멎어버렸다 생각하면 아기가 자꾸 가엾게 느껴져서 저녁에 또 한번 한참을 울었다.


일이 이렇게 되고 나니 그제야 인정하게 됐다. 입덧약 때문에 밤 9시만 되어도 거의 잠에 취해 지내던 때, 꿈을 꿨었다. 어느 시골길을 아빠가 누렁이 한 마리와 함께 걸어가다 멈춰선다. 그리고 걱정스런 얼굴로 누렁이를 바라보며 말한다.

"야가 와 심장이 안 뛰노."

그저 말 그대로 개꿈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는데 너를 곧 보내야 할 거라는 복선이었나봐.


나중에 엄마를 통해 알게 된 사실은 그 때 아빠도 꿈을 꿨단다. 꿈이 아무래도 이상해 며칠을 고민하다 엄마에게 털어 놓았다고. 나무에 대추가 많이 열려 있어 엄마에게 대추를 좀 따라고 했는데 무슨 이유에선지 엄마가 대추를 하나도 따지 못했단다.

누렁이가 씩씩하게 그 시골길을 건넜다면, 엄마가 대추를 한아름 땄다면

우리 오복이도 태어났을까?

너의 태몽은 귀여운 누렁이랑 풍성한 대추나무였어. 엄마랑 할아버지가 그렇게 너를 맞았어.

우린 그렇게 말해줬을까?


한 달 남짓 임산부로 지낸 날들. 너무 조심스럽게 생각한다고 오복이가 왔을 때 크게 기뻐해주지 못했던 것 같아 그게 너무 미안했다. 임신 초기 유산은 전체 중 5분의 1이 경험할 만큼 종종 있는 일이라는데 내 주변에서는 그런 경우가 없어 그 불행이 혹시 나의 몫이 되는 건 아닐까 불안했었다. 그땐 그렇게 충분히 미리 두려워해야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오복이가 다시 오면 그땐 마음껏 환영해주자고 남편과 약속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우리 둘 오복이 덕분에 참 행복했다. 오복이를 배에 품고 우리는 노란 은행잎과 빨간 단풍을 함께 보았다. 하루종일 구역질을 하고 샤워도 못할 만큼 입덧 때문에 괴로워 서러운 눈물이 나도 나는 오복이가 건강하다는 증거라 생각하면 견딜 수 있었다. 오래전부터 우리는 마치 이미 어딘가 존재하는 것처럼 그렇게 아기를 그려왔다. 하얀 피부는 나를, 해사한 웃음은 너를 닮았으면 좋겠어. 나중에 골 때리는 짓 하면 그건 다 널 닮아서야.

남편은 연애할 때부터 꼭 날 닮은 딸을 낳고 싶다 했다. 한번도 날 닮은 딸을 상상해본 적 없었는데, 그런 남편의 말에 나는 나 자신도 사랑하게 됐다. 더 나은 내가 되고 싶었다.

임테기 두 줄을 본 그 순간부터는 희미한 밑그림에 이제 채색할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다.


초음파 사진은 아기가 다녀간 흔적 같아 차마 버릴 수가 없어 서랍에 넣어두고, 산모수첩이나 임테기 같은 것들은 모두 정리했다. 아기 주수를 체크하려고 사용했던 베이비빌리 앱. 접속할 때 마다 아기 캐릭터 위에 말풍선이 나에게 말을 건다. 정말 오복이가 말하는 것 같아 수시로 눌러보았었는데. 오복이는 9주에 멈춰 버렸는데 어플에 있는 아기 캐릭터는 자꾸만 자라는 게 속상할 것 같아 아기 정보를 초기화 하기 위해 들어갔다. 어플 속 오복이가 나에게 해준 마지막 말.


"엄마 힘내세요. 내가 지켜줄게요."



이 때만 해도 나는 알지 못했다. 그저 조금의 휴식기를 가진 후 다시 임신을 하고 또 출산을 할 줄 알았다.

내 마음에 어떤 지옥이 찾아올지도 모르고.

정말로 내가 아기에게 구원받기를 간절히 바라게 될 줄도 모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