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남녀가 서로 손을 붙잡고 있는 그림. 누가 그린 것일까요?
바로 네덜란드의 화가 "얀 반 에이크"의 작품이랍니다. "얀 반 에이크"는 형인 "휴베르트 반 에이크"와 함께 에이크 형제로도 불렸는데, 유화 물감을 크게 발전시켰어요. 에이크 형제를 기점으로 유화가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죠. 그래서 얀 반 에이크를 유화의 발명자로 보기도 하지만, 정확하게는 발명자보다는 중흥자에 가까워요. 이미 오래전부터 유화물감이 존재해 있었고, 다만 기존의 유화물감은 너무 늦게 말라서 화가들의 사용이 줄어들었어요. 그러다 반 에이크 형제가 린시드 오일을 안료에 섞어 쓰며 다시 유화를 채택하게 된거죠.
유화물감은 느리게 마르기 때문에 덧칠이 가능해 그림을 수정하기 쉽고, 정확하고 여유로운 묘사는 물론, 미묘한 농담 효과와 부드러운 색의 변화까지 표현할 수 있어요. 유화물감의 특성을 가장 잘 활용한 사람이 얀 반 에이크 였던 것이죠.
위의 그림이 얀 반 에이크가 1434년에 그린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이랍니다. 얀 반 에이크는 유럽 북부 르네상스의 선구자라고 불려요. 종래의 양식이나 구도에 영향 받지 않고 자신이 관찰한 현실세계를 섬세하고 사실적으로 표현했죠.
그럼 그림 속 두 사람은 누구일까요?
잘 모르겠다고요? 그림을 한 번 자세히 살펴 보세요. 뭔가 부유해 보이지 않나요?
왼쪽에 서 있는 남자는 이탈리아 출신의 상인, "조반니 디 니콜라오 아르놀피니"랍니다.
보통 초상화라고 하면 왕족, 혹은 귀족을 많이 그렸잖아요? 그런데 그림 속 남자가 이탈리아 출신의 상인이라니......의아하죠?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선 시대적 배경을 알 필요가 있어요. 그러니까 그림이 그려진 1434년, 15세기에는 르네상스가 부흥한 시대였죠. 미술사에서 가장 잘 알려진 르네상스 시대가 바로 이때에요. 르네상스는 신이 모든 것의 중심인 기독교적 세계관에서 벗어나 인간이 모든 것의 척도였던 고대 그리스, 로마 시절로 회귀 하고자 한 정신에서 기인해요.
르네상스 이전에 주로 종교화만 그렸던 것과 달리, 르네상스로 접어들면서는 초상화, 역사화, 신화 등 다양한 분야의 미술이 등장했고, 특히 민중적인 평범한 대상도 그렸다는 것에 의의가 있죠. 얀 반 에이크도 이러한 르네상스 부흥에 편입해 있었어요. 얀 반 에이크는 당시 부르고뉴 공국을 통치한 부르고뉴 공작 필리프 3세의 궁정화가로 있었죠. 그런데 어떻게 일개 상인인 "아르놀피니"를 그리게 되었냐고요?
15세기 초 한창 국제무역의 중심지로 떠오르던 브뤼헤에는 유럽 각지에서 온 야심 넘치는 상인들이 모여 들었죠. 아르놀피니 가문도 예외는 아니었어요. 참고로 말하자면, 아르놀피니 가문은 이미 이탈리아에서 상업적으로 유명한 가문이였어요. 많은 상인들 중에 특히나 "조반니 디 니콜라오 아르놀피니"는 남들의 부러움을 살만큼 상업적인 성공을 거뒀죠. 주로 모피 등 사치품을 수입하여 팔았고 심지어 부르고뉴 공작의 국정자문위원이 될 정도였으니까요.
그럼 이제 감이 오시나요?
부르고뉴 공작의 궁정화가였던 얀 반 에이크와 부르고뉴 공작의 국정자문위원이었던 아르놀피니.
그러한 인연으로 얀 반 에이크는 신흥 부르주아였던 상인 "아르놀피니"를 그리게 된거랍니다.
그림을 자세히 살펴볼까요? 무엇이 보이나요?
창가 옆 탁자에 굴러다니는 오렌지. 유리창의 스테인드 글라스. 두 사람이 입은 모피코트.
오렌지는 따뜻한 나라에서 생산되는 과일이죠. 그런데 방금전에 이 작품이 북유럽에서 그려진 것이라고 말한 걸 기억하나요? 당시 북유럽에서 오렌지는 값비싼 수입과일이었어요.
그리고 그림이 그려지기 이전, 그러니까 14세기만 해도 스테인드 글라스는 교회 건축을 위한 장식 중 하나로 사용되었어요. 고딕성당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샤르트르 대성당의 스테인드 글라스가 1200년에서 1236년까지 30년이 넘는 기간에 걸쳐 완성되기도 했죠. 그만큼 오랜 시일이 걸리고, 많은 자금이 드는 일이었어요. 그러던 것이 15세기에 들어서, 부유층의 집, 공공건물의 장식으로도 활용되기 시작해요. 이것만으로도 두 사람이 부유하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겠죠?
그런데 여기에 더해서, 창 밖 체리나무의 열매가 보이시나요?
체리나무가 열매를 맺는 시기는 5~6월로, 기후가 따뜻할 때에요. 밖의 날씨는 따뜻한게 분명한데, 실내의 두 사람은 모피코트를 입고 있죠? 지금도 그렇지만 모피코트는 당시에 굉장히 비싼 옷이었어요.
자, 그러면 한 번 생각을 해 볼까요? 여러분은 언제 모피코트, 혹은 가장 좋은 옷을 꺼내 입나요? 굉장히 중요한 일이 있을때겠죠. 마찬가지로 두 사람도 굉장히 중요한 일이 있는 것이 틀림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