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은 단순히 부를 과시하기 위함일까요?
그림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기로 해요.
우선 그림 속의 왼쪽 아래쪽에 벗겨진 신발이 보이나요?
현재도 그렇지만 중세 당시에도 유럽 사회는 실내에서 신발을 벗는 문화가 아니었어요. 그런데 남자도 그렇고 여자도 신발을 벗고 있죠?
이것은 두 사람이 신성한 장소에 있다는 것을 암시해요.
그리고 두 사람 사이에 털이 복슬복슬한 개가 한 마리 있죠. 퐁파두르 후작 부인 그림을 설명할 때도 언급했었는데, 기억하나요?
개는 충절을 상징해요. 두 사람 사이의 신뢰와 충실함을 상징하는 거죠.
샹들리에 위 촛불을 살펴볼까요? 촛불이 신랑 쪽에만 켜져 있죠? 이것을 근거로 들어, 혹자는 이 그림이 부인 사후의 초상화라고 주장하기도 하죠. 실제로 아르놀피니의 부인은 1433년에 세상을 떠났고 그림은 부인이 죽은 다음해 그려졌거든요.
하지만 당시 사회가 기독교 사회라는 것을 감안했을 때, 단 하나의 초는 신의 눈을 의미해요. 즉, 신의 가호 아래 성스러운 서약, 결혼을 상징하는 거죠.
그리고 이 결혼식에는 증인이 있어요.
샹들리에 아래, 부부 뒤쪽에 걸려 있는 볼록 거울이 보이나요? 볼록거울은 부부 이외의 사람 두 명을 더 비추고 있어요.
푸른 옷을 입은 사람과 푸른 사람 뒤, 붉은 터번을 쓴 남자. 그 중 붉은 터번을 쓴 남자가 바로 화가 반 에이크 랍니다.
어떻게 확신하냐고요?
거울 위에 쓰여있는 글씨가 보이죠? 그 뜻이 바로 '반 에이크가 이곳에 있었다.'란 의미랍니다.
자, 우리는 이 작품이 결혼식을 위한 증거로 그려진 것이라는 걸 알았어요.
앞서, 이 작품이 그려지기 1년 전 아르놀피니 부인이 죽었다고 했죠? 그러면 그림 속 여성은 죽은 부인일까요?
2003년에 그림 속 여성이 죽은 아내라는 가설도 제기 되었어요. 하지만, 우리는 그림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어요.
그림에서 두 남녀가 맞잡은 손을 보면, 남자는 왼손으로 여자는 오른손으로 서로의 손을 잡고 있죠. 정말 그들이 결혼하는 장면이라면 당시의 문화를 고려했을때, 서로의 오른손을 잡고 있었어야 해요. 하지만 그렇지 않죠. 당시에는 남자와 여자의 신분적 차이가 큰 경우 왼손결혼을 했고, 소위 첩을 들이는 것이었어요.
즉, 그림 속 여인은 아르놀피니의 두번째 부인으로 생각할 수 있는거죠. 비록 상속권은 인정되지 않았지만 말이죠.
보통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것은 평면 거울이에요. 그런데 얀 반 에이크는 그림에서 볼록 거울을 사용했죠.
볼록 거울은 항상 물체와 같은 모양으로 서 있고, 실물보다 작게 보여요. 그래서 넓은 범위를 비출 수 있죠.
반면에 오목 거울은 물체가 오목 거울의 초점 안쪽에 있는가 그렇지 않은가에 따라 큰 차이를 보여요.
물체가 거울의 초점 안에 있을 경우, 물체는 실물보다 확대되어 보이고 항상 똑바로 서있죠. 하지만 물체가 거울의 초점 밖에 있을 경우, 거울과의 거리에 따라 확대되거나 축소되어 보여요. 또한, 항상 거꾸로 된 상이 보이고요.
이러한 특징때문에 얀 반 에이크는 그림 속에서 볼록 거울을 사용했어요. 많은 범위를 비춰 그림 속 단편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부부의 뒷모습, 부부의 앞에 있어 그림 속에서는 직접 보이지는 않는 화가 자신을 포함한 증인들을 담아내고 싶었던거죠.
앞에서 언급했듯, 볼록 거울 속에는 아르놀피니 부부외에 두 사람이 더 보여요.
붉은 터번을 쓴 남자는 화가 자신이라고 말한 걸 기억하나요? 그러면 푸른 옷을 입은 사내는 누구일까요?
여기에는 많은 설들이 존재해요. 결혼식을 주재하는 신부라는 설도 있고, 화가의 조수라는 설도 있고, 심지어 결혼하는 신부의 아버지라는 설도 있죠. 하지만 정확하게 밝혀진 사실은 아직 없답니다. 다만, 화가의 앞에 떡하니 자리하고 있고 부부의 앞에 있기 때문에 이 결혼식의 또 다른 증인임에는 틀림이 없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