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속 여행 : 혼자 관람의 묘미 1

스웨덴 국립 미술관전에서

by ayeon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국립박물관, 서울시립미술관 등의 수백 개 갤러리에서는 365일 하루도 빠짐없이 다채로운 미술 전시가 열리고 있다. 전시회에 가는 것만으로도 우울한 기분이 환기되기도 하고, 막혀 있던 문제에 직면했을 때 창의적인 발상이 떠오르기도 한다.


봄이 찾아오자 푸릇푸릇한 초록잎들이 기지개를 활짝 켰고, 한겨울 동안 집안에 웅크리고 있었던 사람들은 모두 밖으로 나왔다. 사람들의 발걸음을 따라 나도 삼성역 근처에 위치한 미술관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스웨덴 국립미술관전이 열리고 있었다. 스웨덴 국립 미술관에 있는 원화를 그대로 옮겨온 대한민국 최초의 전시라며 텔레비전에서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었다.


미술관 입구에 들어서자 거대한 포스터가 나를 맞이했다. 포스터 속 그림은 화가 칼 라르손의 작품 ‘전원’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었다. 하얀색 모자와 드레스를 입고 나무 위에 앉아 있는 여자는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했다. 뽀빠이처럼 콧수염을 가진 남성은 여자의 손을 살포시 잡고 있었는데, 그림 속 인물들이 나에게 손짓하며 전시회에 오라고 초대하는 것 같았다. 포스터 아래쪽에는 도슨트 시간이 적혀 있었다. 크지는 않지만 알아볼 수 있는 글씨로 정성스럽게 적혀 있었다.


도슨트 시간: 11시, 14시, 16시

오디오 가이드 있습니다.


평일 오후라 전시장은 한산했다. 몇 년 전만 해도 1만 원대였던 티켓 가격이 어느새 2만 원으로 올랐는데, 이 가격 인상도 관람객 수에 영향을 미친 것 같았다. 전시장에 들어서자 은은한 헤이즐넛 향기가 나를 반겼다. 커피 향기에 취해 잠시 멍하니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앳된 얼굴의 커플과 혼자 온 남자 한 명만 보였다. 사이좋게 오디오 가이드의 이어폰을 한쪽씩 나누어 끼고 있는 커플은 등 뒤에 대학교 이름이 커다랗게 적힌 학교 점퍼를 입고 있는 것으로 보아, 수업 끝나고 바로 온 듯 보였다.


다른 사람은 전혀 신경 쓰지 않겠다는 양 나는 오디오 가이드의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이내 큐레이터의 차분하고 명료한 설명이 들려왔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지금부터 스웨덴 국립미술관전을 시작하겠습니다." 기계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작품에 담긴 이야기와 화가의 배경을 생생하게 전달해 주었다. 전시장의 조명 아래 반짝이는 그림들은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했고, 각 작품은 나에게 다가와 나를 봐 달라며 속삭이는 것만 같았다.


첫 번째로 마주한 그림은 한스 프레드릭 구데의 ‘샌드빅의 피오르’였다.

“띵동. 노르웨이의 가장 뛰어난 풍경화가 중 한 명인 한스 프레드릭 구데. 그는 일생동안 노르웨이 산과 피오르를 묘사하는 데 집중하였습니다. 1873년 여름에 이곳에 방문한 구데는 주변 풍경과 선박의 디테일한 묘사를 연습한 뒤 작품을 제작하였죠. 배와 낚싯대, 해안 저편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공장의 묘사에서 세밀함이 돋보입니다.”


바로 옆에는 칼 라르손의 대표작이 있었다. 밝은 색채와 섬세한 붓질이 돋보이는 작품 앞에서 나는 숨을 죽였다. 그림 속 풍경과 인물들이 마치 나를 그 시대로 데려간 것처럼 생생하게 다가왔다. 나뭇잎 하나하나, 사람들의 표정 하나하나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수십 명의 사람들이 칼 라르손의 작품을 감상하러 왔다가 떠날 때까지 나는 그의 작품 앞에 망부석처럼 서 있었다.


전시장을 걸어 다니며, 나는 벽에 걸린 각 작품의 설명을 읽었다. 설명을 읽을 때마다 그림이 새롭게 다가왔다. 그림 속 이야기와 화가의 삶이 내 눈앞에서 펼쳐지는 듯했다. 전시장의 은은한 조명 아래서 그림들은 더욱 빛났다. 각 작품마다 다른 분위기와 감정이 나를 휘감았다.


한편에 마련된 휴식 공간에서 잠시 멈춰서, 눈을 감고 커피 향기를 깊이 들이마셨다. 그 순간, 미술관의 고요한 분위기와 어우러진 커피 향이 나를 감싸 안았다. 다시 전시장으로 돌아와 오디오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나는 그림과 하나가 되었다. 그때, 저 멀리서 귀를 찢는 아주 큰 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이거 설명 듣고 가자고 했잖아!”

“아까 들었잖아? 이제 그만 나가자니까?”

아까 그 대학생 커플이었다. 둘이서 이어폰을 나눠 끼고 있었던 것과는 달리, 지금은 여자만 이어폰을 귀에 꽂고 있었는데 둘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진 것 같았다.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문득 몇 년 전 언니와 루브르 박물관에 갔던 때가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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