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by 그리다

[자유시간을 즐기기 위한 대화 시간]


고민하며 숙소로 들어와 각자 어떤 것을 할 것인지 서로의 의견을 말했다. 현서는 캠프 오기 전부터 말했던 그림 그리기를 하겠다고 했고, 송현은 밥을 배부르게 먹었더니 졸리는 거 같다며 낮잠을 자겠다고 했고, 영인과 서영은 좀 더 고민을 해보겠다고 했다. 이후 송현은 이부자리를 펴 잘 준비를 했고, 송현은 챙겨 온 스케치북과 필통과 색연필 세트를 챙겨 숙소 밖으로 나갔다. 영인과 서영은 덩그러니 있을 수는 없다는 생각에 일단은 숙소 밖에 의자에 앉아 같이 더 생각해 보기로 한다.


영인 : 매번 내 생각 속 에는 공부밖에 없었는데, 이렇게 막상 시간이 주어지니까 무엇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서영이 너는 어때?


서영 : 나도 똑같지 머. 학교 학원 집 반복되는 일상은 비슷하니까. 그래서 집에 가면 내 하루 일과가 끝났다고 생각해서 집에 가면 씻고 침대에 누워 가만히 음악을 들었어.


영인 : 생각해 보면 나도 이동할 때 음악 듣는 거 말고는 따로 문화생활이라고 한 게 없는 거 같아.


서영 : 너무 잘 놀고 있어서 오히려 문제집이라도 챙겨 왔어야 했나 생각이 들기도 해. 다른 애들은 공부하고 있겠지.


영인 : 그렇지. 공부하고 있겠지. 그런데 나 영단어 책 챙겨 오긴 했는데, 수학 문제집 얇은 거랑.


서영: 너도 지독한 공부 쟁이야. 난 챙겨 올 생각은 못했는데, 진짜 너처럼 단어장이라도 챙겨 올 걸 그랬다.


영인 : 그러면 나는 집중해서 여유롭게 수학 문제를 풀래. 지금은 직중의 시간이 필요한 거 같아.


서영 : 그래. 그러면 나는 1박 2일 쉬는 건데 공부는 음.. 아니고, 산책이라도 다녀와야겠다.


영인 : 잘 다녀와~~


서영은 가방에서 이어폰을 꺼내 블루투스를 연결해 잔잔한 노래를 들으며 산책을 시작했고, 영인은 수학 문제를 풀면서 집중했다. 다른 것을 한다기보다 오히려 공부하는 게 더 자연스러운 영인이었다. 어쩌면 영인은 공부를 싫어하지 않고, 자신을 로봇으로 보이게 만드는 그 상황이 싫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각자 다 다른 선택을 통해 자신에게 어떤 물음표를 던져 느낌표를 찾아낼지, 찾지 못하더라도 자신에 대해 깊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현서의 시간]


평소 현서는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한다. 쉬는 시간에 아이패드로 드로잉 하는 게 취미일 정도로 귀여운 캐릭터부터 인물, 풍경 가리지 않고 그린다. 그런데 미술 입시에는 관심이 없어 순수하게 그림만 그린다.


최근에는 인터넷에 나온 풍경 이미지만 보고 그리다가 실제 풍경을 보며 그림을 그린 것이 오랜만이라 현서의 마음은 설렘으로 가득했다. 그런데 그림을 그리려니 바닥에 깔 돗자리가 없어서 인준에게 "제가 돗자리가 필요해서 그런데 빌릴 수 있을까요?"라고 물었다. 인준은 환한 미소로 돗자리를 꺼내주었다.


돗자리를 받아 들고 캠프 주변을 둘러보면서 그림 그릴 스폿을 찾았다. 지금 보고 있는 풍경들이 푸릇푸릇하고, 살랑이는 바람에 이끌려 아까 갔던 계곡 근처 정각에 자리를 잡았다. 그늘도 지고 약간의 햇빛도 들어오고, 마음이 편안한 자리를 찾았다. 친구들과 있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을 보여주며, 온전히 계곡에서 흘러나오는 물소리도 들려와 집중도가 최상에 이르렀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각에 앉아 4B 연필로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리다 보니 아까 같이 물놀이를 했던 친구들도 그리고 싶었다. 너무 즐거운 시간이었으니까. 연필을 따라 손이 이동하고 내 손이 아닌 듯 저절로 그려지는 듯했다. 이때 머릿속에 떠오르는 말은 "행복하다, 여유롭다,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하는 말들이었다.


나의 일상 속에서는 공부를 조금만 늦추면 불안하고, 학원 빠지면 놓칠까 봐 걱정돼서 늘 앞만 보고 달렸는데, 여기선 아무도 나한테 뭐라고 안 하고, 정해진 시간도, 해야만 하는 일도 없으니까 나를 누르던 압박들로부터 자유가 된 것만 같은 느낌이다.


위치가 높을수록 그 위치에 있는 사람은 정상에 올라가기 위해 열심히 하지만, 지금 위치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더한 노력을 한다고 했다. 그렇기에 누군가 나를 제치지는 않을지 불안한 마음에 항상 조바심을 내었던 거 같다. 그리고 주변에서 '왕이 되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라는 말도 심심찮게 들었다. '공부 열심히 해야 해'라는 어른들의 말보다 나의 미래에 대해 의논하는 대화를 더 했더라면 내가 성적에 휘둘리지는 않는 멘털을 가질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 적도 있다.


이렇게 내 일상과 지금의 마음을 번갈아 가면서 교차하며 생각하다 보니 현서의 눈에서는 작은 물방물이 턱 밑으로 또르르 흘러내렸다. 알 수 없는 짜증이 밀려왔다. 지금 이 감정을 어떻게 표현할 수 없어서 오는 불편함이 짜증으로 나온 것만 같다. 친구들이 옆에 있었다면 보이지 않았을 모습. 눈물을 멈출 줄 모르고 계속 흘렀다. 그 모습을 지나가다 보신 할머니께서 현서에게 말을 걸었다.


할머니 : 무슨 일 있는가? 뭐 이리 서럽게 운단가.


현서는 갑자기 올라오는 부끄러움에 눈물이 쏙 들어갔다.


현서 : 아니에요. 할머니 괜찮아요.


할머니 : 괜찮으면 말고, 그래도 인생이 원래 그런 것이여. 맨날 웃기만 하면 병나 시원하게 울기도 해야제


현서 : 아 네. 조언 감사합니다.


스쳐 지나가듯 해주시는 그 말씀이 인사이드 아웃에서 슬픔 이가 필요한 이유를 들은 거 같았다. 지금의 나에게는 슬픔 이가 필요하다고, 충분히 슬퍼하고 일어나라고 말이다. 가끔 흘리는 눈물은 다시 일어날 힘을 만들어 준다고 말이다. 우연히 만난 할머니에게 위로를 받아 다시 힘차게 그림을 그려 완성했다. 다 그리고 나니 뿌듯한 마음과 친구들이 보고 싶다는 마음이 동시에 들어서 빠르게 짐을 정리해서 숙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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