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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이책장 Nov 07. 2021

편지로 쓴 서평, S에게.

김초엽, 방금 떠나온 세계


김초엽,

방금 떠나온 세계


최후의 라이오니

마리의 춤

로라

숨그림자

오래된 협약

인지 공간

캐빈 방정식

작가의 말



사랑하지만 끝내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당신에게도 있지 않나요.

___126, 로라, 방금 떠나온 세계, 김초엽.


S에게.


드디어 S 너에게 편지를 쓰네. 이 편지는 조금 특별한 편지가 될 거야. 김초엽 작가님의 단편 소설집 <방금 떠나온 세계>를 읽으며 느꼈던 감정을 전하기 위해 쓰는 편지거든. 벌써 세 번째 편지야. 너에게 쓰는 편지는 처음이지만.


나는 왜 하필 '편지'로 김초엽의 세계를 풀어내고 싶은 걸까.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과 <지구 끝의 온실>에 이어 세 번째 편지를 쓰며 고민해 봤어. 그냥 평범하게 줄거리와 메시지를 설명하면 될걸, 왜 편지라는 수단을 택했을까. 그건 아마 김초엽의 세계가 내게 가져다주는 감정을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서일 거야. 어떤 순간은 향기로 기억되듯 어떤 책은 감정으로 기억되잖아. 아쉽게도 이 감정을 언어로 풀어낼 능력이 내게는 부족하지만.


<방금 떠나온 세계>를 읽다 보면 애쓰지 않아도 머릿속에 어떤 우주가 펼쳐져. 그건 인지 공간이기도, 머나먼 행성이기도, 어두운 지하이기도 해. 그 우주 속에서 움직이는 사람, 사람과 사람이 스쳐 지나가는 순간, 순간을 지배하는 감정이 화자의 회상을 통해 흘러들어오지. 그 우주는 내게 갈망을 불러일으켜. 대체 불가능한 온기, 마음을 동요시키는 향기, 같이 살자는 간절한 마음, 손끝에서 느껴지는 연대. 그 모든 순간과 감정을 다시 소유하고 싶다는 갈망. 너도 이 책을 읽으면 같은 감정을 느낄까?


한때 사랑은 모든 것을 이해해야 한다고 믿었어. 사랑이 무엇인지도 몰랐으면서. 혼자 '나는 저 사람을 영원히 이해할 수 없겠구나'라는 생각에 사랑을 멀리하기도 했지. 이렇게 쓰니 뭔가 낭만적인데, 사실 그냥 삽질이었지만. 동시에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평생 온전히 이해받을 수 없다는 사실에 괴로워했어. 나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지지해 주리라 믿고 싶은 유일한 사람에게 나를 드러낼 수 없는 이 감정을 너는 알지. 하지만 사랑하지만 끝내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당신에게도 있지 않나요. 이 문장이 나를 통과했어.


사랑하는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 세계를 돌아다닌 '진'은 '로라'를 끝내 이해할 수 없었지만, 마지막 순간에는 '로라'를 바라봐. '나'는 생각하지. 온전히 이해할 수 없더라도 드넓은 우주에서 찰나의 시간이라도 마주친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부족한 이해는 우리가 서로에게 나누어주자. 이 말이 하고 싶어서 편지를 써. 우리는 이해하고 이해받고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어서 평생 떠돌겠지. 아무리 애써봐도 완벽한 이해와 사랑은 불가능할 거야. 하지만 김초엽의 세계가 말하듯 서로가 교차되는 몇 안 되는 순간이 있다면 우리는 온전해지겠지. 지금 이 순간이 네게 그런 순간이길, S.



책 속으로

김초엽, 방금 떠나온 세계


창밖의 해가 천천히 기울며 다른 색의 빛줄기를 탁자 위로 비추었다.

빛은 얼마나 상대적인 것일까?

문득 나는, 어딘가에서 춤을 추고 있을 마리를 생각했다.

___97, 마리의 춤, 방금 떠나온 세계, 김초엽.


하지만 그걸 깨닫는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사랑하지만 끝내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당신에게도 있지 않나요.

___126, 로라, 방금 떠나온 세계, 김초엽.


양말이 사막 구석에서 모자를 쓰고 발견되었다······.

___188, 숨그림자, 방금 떠나온 세계, 김초엽.


그때 저는 아주 긴 잠을 자고 있겠죠. 저는 땅 위로 내딛는 당신의 발걸음을 느끼고, 꿈결 속에서 당신의 목소리를 들을 거예요. 오래전 이곳에 머물렀던 어떤 반짝이는 시간들을 생각하면서요.

___227, 오래된 협약, 방금 떠나온 세계, 김초엽.


'나는 세 번째 달을 잊지 않을 거야. 그리고 너도.'

___269, 인지 공간, 방금 떠나온 세계, 김초엽.


나는 문득 언니와 나의 시간이 다시는 겹쳐지지 않을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지금 우리가 아주 다른 풍경을 보고 있으리라는 것도.

___319, 캐빈 방정식, 방금 떠나온 세계, 김초엽.



같이 들으면 좋은 asmr



첫 번째 편지, 수빈에게.



두 번째 편지, K에게.



양말이 사막 구석에서

모자를 쓰고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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