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파수꾼” 후기
*주의사항*
해당 글은 영화 “파수꾼”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열람에 주의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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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무슨 애들 앞에서 허세 부려서 그런 게
좋은 건 줄 아냐?
이렇게 주목받은 적이 없으니까.
기태 곁에는 아무도 남지 않았다.
희준도, 동윤도. 모두 그의 곁을 떠났다.
떠나는 그들이 기태에게 남긴 말은 공통점이 있었다.
우리는 널 단 한 번도 친구로 생각한 적 없어. 네가 그랬듯.
파수꾼은 무엇인가를 지키는 사람이다.
하지만 기태는 아무것도 지키지 못했다.
그 최후는 공허함에 짓눌려 자신을 죽이는 선택으로 이어졌다.
‘파수꾼’은 비단 기태만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다.
희준, 도윤도 모두 파수꾼들이다.
파수꾼은 본디 지키는 사람이나,
이 영화의 파수꾼 셋은
친구도, 우정도, 자신도 아무것도 지키지 못한다.
그래서 이 제목은 역설이다.
지키려 했던 사람들이
결국 아무것도 지키지 못한 이야기.
기태는 수컷 공작새 같다.
화려한 깃으로 존재감을 과시하고 친구들 위에 군림하지만,
그 속에는 인정받고 싶은 결핍이 숨어 있다.
마치 헤밍웨이가 평생 써온 ‘강한 남자’라는 가면처럼,
겉으로는 강해 보이지만 속은 불안한, 자기 결핍을 숨기려는 몸짓이다.
친구들 앞에서 권위를 과시하는 모든 행동이 바로 그 가면의 일부다.
기태가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는 친구는 희준과 동윤뿐이다.
그 두 사람이 차례로 떠나려 하자, 기태는 이성을 잃었다.
야. 내가 니 꼬붕이냐?
희준은 자존심으로 관계를 버틴다.
기태가 힘으로 관계를 붙잡으려 한다면, 희준은 자존심으로 관계를 유지한다.
희준은 기태에게 어느 정도 자격지심 혹은 열등감을 갖고 있다.
이는,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가 기태에게 고백했다는 사실 앞에서 터진다.
희준은 예민한 사람이다.
친구들이 놀러 온 집 화장실을 이용한 뒤 방향제를 뿌리는 사소한 행동에서도 그의 예민함이 느껴진다.
그런 희준에게, 보경에게 고백받은 사실을 숨기고 장난스레 넘어가는 기태는
참으로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좋아하는 아이가 내 친구를 좋아한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패배를 인정해야 하는 상황인데,
그 친구는 내 머리를 툭툭 치며 장난스레 군다.
희준은 더는 견딜 수 없었다.
자존심으로 버텨온 관계가 무너지자, 그는 단절을 선택했다. 싸움이 아닌, 포기였다.
나 다음 주면 전학 가. 니 덕분에.
그래서 별로 사과받고 싶지 않다고, 너한테.
니가 나 친구로 생각해 본 적 한 번이라도 있냐?
니가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는 알량한 자존심
그거 나도 한 번 부려봤다, 왜. 안 되냐?
너에게 더 이상 어떤 것도 기대하지 않아.
너는 내 인생에 있어 더는 아무 의미가 없어.
사람이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고통은, 무관심이다.
나잇값 좀 하고 살자, 좀 있으면 고3인데.
그게 뭐냐 애들처럼. 니가 애냐?
친구잖아, 기태야.
세 친구 중 가장 성숙한 인물은 동윤이다.
동윤은 희준, 기태 모두를 이해하려 하고, 둘 사이를 중재하고자 노력한다.
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그 또한 미성숙한 아이라는 것.
기태는 제가 갖지 못한 안정적이고 사랑하는 사람을 둔 동윤에게 질투를 느꼈을 수 있다.
그래서, 대뜸 여자친구 세정의 추문을 꺼내며 동윤을 시험한다.
동윤은 역시 사실을 몰랐지만, 애써 아는 척 자존심을 지킨다.
이 점에서 셋 다 마찬가지다.
미성숙함을 가리고자 강한 척하고, 사실을 숨기며 알량한 자존심을 내보인다.
결국, 여자친구의 자살시도 후 동윤은 기태에게 분노를 쏟아내지만,
그 속엔 여자친구를 믿지 못한 자신에 대한 죄책감이 있다.
이에 기태는 진실을 말하지 않고, 억울함과 분노를 쏟는다.
결국 재호와 레고 등 가벼운 친구들도 떠나고, 기태는 고립된다.
아니. 처음부터 잘못된 거 없어.
처음부터, 너만 없었음 돼.
동윤의 말은 폭발한 감정의 표현일 뿐이지만, 이미 뱉은 말을 주워 담을 수는 없다.
기태의 사과는 공수표 같다. 이유도, 오해도, 잘못도 설명하지 않고, 그저
내가 어떻게 해야 돼? 너까지 이러면 안 돼.
하지만 이미 죽은 땅 위에 씨앗을 뿌린들 작물이 자라나겠는가?
기태는 땅을 일구는 법을 모른 채,
이미 죽어버린 관계라는 땅 위에 사과라는 씨앗만 무의미하게 쏟아붓는다.
기태는 친구들을 사랑하지만, 사랑을 제대로 표현할 방법을 모를 뿐이다.
기태는 마지막에 묻는다.
뭐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잘못된 건 없다.
그저 너무 어린 사람들이 감당하기엔 버거웠을 뿐이다.
그 서툰 진심들이 서로를 지키려다 서로를 베었다.
그 결과, 한 사람은 죽고, 두 사람은 평생 그 기억을 안고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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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파수꾼(감독 윤상현, 2011)
내게 이 영화는 “얼굴” 만큼이나 불편함을 남겨주었다.
하지만 누가 그들을 비난할 수 있으랴.
우리 또한 그 시절을 통과하며 누군가를 베고 베여온,
단지 저들보다 조금 ‘덜 어린’ 자들일뿐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