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야, 위를 똑바로 보아라

영화 “사바하” 후기

by dilettante
그리고 별의 강의 정 씨,
성주, 성주 정 씨 정나한.

김제석의 고향인 ‘영월’을 지키는 네 개의 별, 사천지왕.
그중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서쪽의 광목천왕, 성주 정 씨 정나한.

초반부터 중반까지, 나한에게는 거의 표정이랄 게 없다.
극도로 절제되고 기계적인 표정만 지을 뿐.

피를 나누지는 않았으나 같은 뜻으로 움직이는
지국에게 던지는 말 또한 지독히도 사무적이다.

죽으십시오. 세상이 곧 지국 님을 찾을 겁니다.

그가 인간적 표정을 지을 때라곤,
지국이 열반하던 순간과,
밤마다 제가 죽인 소녀들의 울음소리에 시달릴 때뿐.

어둔 밤아 물러가라
우리 집에 오지 마라
자장자장 우리 애기
울지 마라 자장자장

아이들의 영에 시달리면서도
나한은 정면을 똑바로 보고 누워 있었다.
금화를 납치해 두고도
다음 생에는 부처로 태어나라 기도했었다.

나한은 이 모든 고통을 마주하면서도
철진과 달리 뒤로 물러서지는 않는다.
그저 견딘다. 믿음 하나로.

철진에게 어머니는 그를 약하게 만드는 존재였지만,
나한에게 어머니의 기억은 그를 강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네가 아비라 부르는 자의 표식을 확인해라.
그자가 곧, 뱀이니라.
그자를, 죽여라.

그는 ‘그것’과 조우한 이후 표정이 풍부해진다.
결정적으로, ‘그것’이 노래하는 어머니의 자장가 앞에 무너진다.
‘그것’은 나한을 가장 약하게 만들 방법을 알고 있었다.

왜 넌 코끼리가 무섭지 않을까.

코끼리의 눈을 보며 두려워하는 김제석과 달리,
나한은 두려워하지 않는다.
김제석은 인간을 버리고 신이 되려 했으나
그는 끝까지 인간의 고통을 껴안는다.

이제 너의 이름은 광목이다.
넓을 광에 눈 목 자.
서쪽 귀신들을 잡는 용맹한 장군이다.

진짜 ‘뱀’이 되어버린 김제석을 죽인 후

그는 이름처럼 정말 광목이 되었다.

짐승에서 사람이 되었다.

추워…

죽는 순간 그는 춥다고 말했다.
그리고, 박 목사는 나한에게 자신의 코트를 벗어 덮어준다.

사실 박 목사는 영화 내내 신은 어디 계시냐 질문하던,
신의 부재와 침묵을 가장 의심하는 냉소적인 인물이다.

그런 그가 비참하게 죽어가던
나한에게 코트를 벗어준 순간,
정나한은 더 이상 사천지왕도, 수행자도 아니었다.
그저 추위를 느끼는 존재였다.

어디 계시나이까.
우리를 잊으셨나이까.

성경에서 옷을 덮어주는 행위는

종종 죄를 가리는 은혜를 상징하기도 한다.

신의 응답을 간절히 기다리던 박 목사가,

정작 신이 침묵하는 그 길 위에서

스스로 구원자가 되어 나한의 죄를 덮어준 것이다.


그래서 하늘에서 내리는 하얀 눈과 박 목사의 코트가

나한의 죄를 가려주는 것처럼 보인다.

결국 이는 종교가 아닌, 그저 인간이 인간을 구원하던 순간이 아닐까.


이 영화에서 가장 무서운 건

‘그것’도, 김제석도 아니다.

확신이 너무 단단해진 인간.

그런 인간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


그래서 나한은 강한 확신이 깨지던 순간

비로소 인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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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영화 사바하(감독 장재현, 2019)


나무 서까래와 대들보가 얽혀 만든 천장의 네모난 틀.
그것이 마치 나한의 눈을 가리는 장애물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 구조 아래로 내려오는 영혼을
그는 정면으로 응시한다.

비록 어머니의 환상과 함께 옆으로 돌아누웠을지라도
나한이 홀로 견뎌낸 직시의 시간은
뱀을 불태울 인간성을 벼려냈을 것이다.

그래서 다시 한번 말해주고 싶었다.


아이야, 네 앞의 그 틀을 넘어
위를 똑바로 보아라.
그곳에
네가 끝내 마주해야 할 세상이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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