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류(殘留)

영화 “헤어질 결심” 후기

by dilettante

*주의사항*
해당 글은 영화 “헤어질 결심”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열람에 주의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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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 파도처럼 덮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물에 잉크가 퍼지듯이
서서히 물드는 사람도 있는 거야.

매혹.
서래를 본 순간 해준이 느꼈을 그 감정.
그건, 순식간에 덮쳐오는 종류였다.

날 사랑한다고 말하는 순간
당신의 사랑이 끝났고
당신의 사랑이 끝나는 순간
내 사랑이 시작됐죠.

처음부터 사랑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물에 번지는 잉크처럼, 서서히 스며든 쪽에 가까웠다.

서래는 어느 순간부터 사냥감을 포착한 한 마리 맹수 같았다.
목표물을 향해 다가서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저 앞으로 나아가서, 잠식하고 침범한다.
아무렇지 않게.

산오는 사랑을 증명하기 위해, 끝내 선을 넘는 사람이다.
이 영화의 인물들은 모두 그 선 앞에 선다.
넘거나, 멈추거나.

그는 사랑하는 여인이 결혼했음에도, 멈추지 않는다.
가인은 그 사실을 알고 있다.
그들의 관계는 공적이되 사적이다.

저 폰은 바다에 버려요.
깊은 데 빠뜨려서 아무도 못 찾게 해요.

그건 단순한 물건이 아니다.
사라지지 않는 어떤 것이었다.

살아 있는 한, 숨겨지지 않는다.

그래서 묻는다.
깊은 바닷속에.

죽을 만큼 좋아한 여자네.

산오는 감옥에 가는 걸 죽기보다 싫어했지만
그럼에도 가인을 건드린 사람 둘을 죽였다.

가인이한테… 나 너 땜에 고생깨나 했지만,
사실 너 아니었으면 내 인생 공-허했다.
요렇게 좀 전해주세요.
안 전해주셔도 되겠네.

그리고
끝내 제 사랑을 증명해 보였다.

이걸로 재수사해요. 붕괴 이전으로 돌아가요.

당신은 나 때문에 붕괴되었고,
나 또한 그렇게 되었으니.

다만
나는 붕괴되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그러니 당신이 말한 것처럼
바닷속에 나를 던지겠다.

그래서
영원한 당신의 미결 사건으로 남으리라.

너 가인이 때문에 다 포기한 거 아니야, 씨발!

홍산오는 사랑을 위해 감옥행을 각오하고 살인을 저질렀다.
해준은 사랑을 위해 품위를 버렸다.

사랑은 계속 행동으로 넘어간다.
죽이고, 숨기고, 끝내는 몸을 던진다.

바다는 묻힌 것들이 가라앉아 있는 곳이다.
깊은 바닷속에 멀리멀리.

그리고 그 파도는
끝내 해준에게까지 닿는다.

헤어질 결심을 하는 순간마다 사건이 생긴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사람이 사라진다.

바다 밑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건 끝나지 않는다.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남아 있었다.

끝내 남는 것은
홍산오처럼,
미결 사건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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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 영화 헤어질 결심(감독 박찬욱,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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