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예(猶豫)

영화 “연지구 디 오리지널 4K” 후기

by dilettante

진방은 곧 부서질 비단처럼 아름다웠다.
여화는 절정에 이른 모란처럼 아름다웠다.

다 잘 될 거야. 우린 영원히 함께니까.

그러나
그 아름다움 속에는 불안과 유약함이 감춰져 있었다.
매사 여유로운 듯 보이는 두 사람은
사실 헤어지지 않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는 게 아닌가?

현실의 벽 앞에 부딪혔다 하였으나
여화는 죽음 앞에 두려워하지 않았다.

반면
진방은 두려워했고, 회피했다.

50년이란 긴 세월 동안 여화는 자신들의 사랑에 ‘마침표’가 찍히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실 그들의 사랑은 이미 끝났다.
진방이 저 혼자 살아난 후 죽음을 선택하지 않은 순간부터.

사람이 삶을 붙잡는 것을 본능이라 본다면
진방의 선택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의 오십 년은 버틴 것이 아니라,

흘러간 시간에 불과했다.
그저 어떤 것도 선택하지 못한 채 부유하기만 했을 뿐.

그녀는 진방 앞에서 그간 모아 온 점괘 일부를 태운다.
그동안은 그것에 기댔지만

이제는 기댈 이가 있으니 괜찮다고.

저희는 진심이에요.

자신과 진방의 맹세만큼은

모든 것을 초월할 거라 여겼다.
그러나 그 사랑의 맹세도 언젠가는

빛이 바래고 시들 뿐.

그녀의 사랑은
지독히도 열정적이었다.
그러나
그 탓에 너무도 쉽게 영원 앞에 자신을 던져 넣었다.

3811, 연지구. 그것은 사랑의 맹세가 아니라
영원 앞에 자신을 던져 넣은 여자와,
끝내 도망친 남자의 비루한 여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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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 영화 연지구 디 오리지널(감독 관금붕, 2026)


이 영화에서 삶은,
끝내 버틴 것이 아니라
비루하게 남겨진 것에 가깝다.
그래서 그 선택은 끝내 납득되지 않는다. 나로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금붕 감독의 미장센과
그 시절 배우들의 가장 찬란한 순간을 통해
사라질 수 없는 어떤 것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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