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후기
*스포일러 주의*
해당 글은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열람에 주의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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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그 슬픔, 그 괴로움, 모두 간직하렴.
네가 느꼈던 기쁨과 함께.
엘리오에게 그 여름은 찬란함과 잔혹함이 동시에 깃든 계절이었다.
사랑은 분명 그곳에 있었지만,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어떻게 존재하지 않는 것이 이다지도 선명히 남을 수 있을까?
네 이름으로 날 불러줘, 내 이름으로 널 부를게.
어찌 보면 낭만적인 고백이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올리버는 엘리오의 이름을 가져감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엘리오의 내면에 박아 넣었다.
사랑은 확장인 동시에, 서로의 영토를 침범하는 과정이다.
올리버가 떠나간 자리에서, 엘리오는 자신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강제로 타인의 부재와 직면해야 하는 분열을 겪는다.
올리버… 전부 기억하고 있어.
현실 속에는 아무도 없다. 올리버의 목소리는 전화기 속에서만 살아 있고, 정작 엘리오의 곁은 고요하기만 하다.
밤을 지새우게 했던 설렘과 혼란.
사소한 장난과 자전거로 내달린 교외,
달빛 아래 번뜩이던 뜨거운 여름밤.
그 밤의 잔열은 아직 식지 않았다.
그 순간들을 되짚으며, 그는 깨달았다.
이 감정이 사랑이며, 사랑이 남긴 흔적이 이토록 선명하고 아플 수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게 나을까요? 죽는 게 나을까요?
공주를 사랑하면서도, 용기가 없어 말하지 못했던 기사와,
제 감정을 온전히 알지 못한 어느 공주의 이야기.
그것은 단순한 소설 속 이야기가 아니었다.
언젠가 어머니가 읽어주었던 소설 속에서, 엘리오는 자신과 올리버의 모습을 보았다.
엘리오에게 사랑은 온전히 경험할 수 있는 것이었지만, 올리버에게는 사회적 시선과 지켜야 할 위치가 경험을 제한했다.
올리버가 습관처럼 던지던 "Later!"는 약속이 아니라 책임의 유보다. 그는 관계의 끝을 명확히 하지 않음으로써 엘리오를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유보의 굴레 속에 가뒀다.
확신이 생길 때까지 멈춰 있는 인간에게 기약 없는 "나중에" 만큼 유독한 고문은 없으니까.
이미 잘려 나간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뇌는 여전히 그곳이 존재한다고 믿으며 통증을 쏘아 올린다.
올리버는 떠났지만, 그가 헤집어 놓은 엘리오의 내면은 여전히 그가 머물고 있는 것처럼 용솟음친다.
우정이라는 이름에 갇혀 말할 수 없었던 감정, 그러나 마음 한 켠에서 간절히 원하는 것.
그 모든 것이 여름이라는 계절 속에서 찬란하게, 그리고 잔혹하게 얽혀 있었다.
올리버는 떠났고, 여름은 이미 지나갔다.
하지만 어떤 감정은 끝났다는 사실만으로 사라지지 않는다.
이름을 부를 때마다 되돌아오는 감각,
이미 없다는 걸 알면서도 손이 먼저 반응하는 기억.
엘리오는 그 여름을 지나왔다.
다만, 완전히 빠져나오지 못했을 뿐.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감독 루카 구아다니노, 2018)
작년 8월, 재개봉 중이던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보고 썼던 글을 다시 읽었다.
그 당시 나는 엘리오의 감정에 깊이 잠겨 있었고
다시 마주한 글에서는 지나친 빡빡함의 냄새가 났다.
그래서 일부를 덜어내고, 지금의 시선으로 다시 다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