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부신 공허

영화 “아비정전 리마스터링” 후기

by dilettante

*주의사항*

해당 글은 영화 “아비정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열람에 주의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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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우린 친구예요.
이건 당신도 부정할 수 없는 엄연한 사실이죠.
이미 지나간 시간이니까.

타인의 삶에 지울 수 없는 낙인을 찍고 유유히 사라지지만,

정작 본인의 삶에는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못하는 공허한 유령, 그게 바로 아비다.

아비는 의미도, 목표도 없는 삶을 산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상대를 유혹하고, 삶 속으로 스며든다.

그것은 남에게라도 의미가 되고 싶어 저지르는 비행(非行)에 가깝다.


그러나, 아비가 저지르는 비행(非行)은 사실 추락하지 않기 위한 비행(飛行)이다.


아비는 떠나는 사람이지만, 단 한 번도 ‘도착한’적이 없다.


아비는 발 없는 새처럼 멈출 수 없다.

멈추는 순간, 자신이 이미 정서적으로 죽어 있다는 사실과 직면해야 하기 때문이다.

당신은 날 평생 즐겁게 해 줄 순 없어.

그 말은 이별의 선언이 아니다.

한 곳에 영원히 머물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버린 사람의 말투다.

그래서 그는 멈추지 않기 위해 달린다.

멈출 수 없다는 사실을 알기에, 자신에게 ‘바람둥이’라는 화려한 외피를 씌운다.

그 외피는 자유의 상징이 아니라, 추락을 가리기 위한 위장이다.


인간은 언제나 자신의 뿌리를 찾으려고 한다.

그것은 아주 오래된, 태초부터 이어져 온 욕구다.

친어머니로부터 버림받아 ‘발 없는 새’가 된 아비는, 자기 뿌리를 찾아 떠난다.

다만, 아비가 친어머니를 찾아 떠난 것은 사실 자기 뿌리를 찾기보다,

자신이 왜 이미 죽은 새로 태어났는지의 기원을 확인하러 간 것에 가깝다.


아이러니하게도, 자기 기원을 찾겠다는 아비의 행동은 죽음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발 없는 새가 있지.
날아가다가 지치면 바람 속에서 쉰대.
평생 딱 한 번 땅에 내려앉을 때가 있는데,
그건 죽을 때지.

‘정착하면 죽는다’ 이것이 아비 인생의 모토가 아니었던가?

필리핀으로 떠나 친어머니 곁으로 가게 된다면, 그게 정착 아닌가?

새가 한 마리 있었다. 죽을 때까지 날아다니던…
하지만 새는 그 어느 곳에도 가지 못했다.
왜냐하면 처음부터 새는 죽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비로소 땅에 내려앉은 것이 아니라,

자신이 이미 죽어 있었다는 사실을 수긍하기 위해 기차에 올랐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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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영화 아비정전(감독 왕가위, 1990)


이전 “중경삼림” 글에서 왕가위 감독 세계관 여행의 종착지라는 표현을 쓴 적이 있다.

그러나 이 글을 쓰며, 그 말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됐다.

이 글은 영화 “해피 투게더” 속 보영이라는 인물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

기원인 아비를 향해 거슬러 올라가 쓴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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