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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어나 Jun 28. 2023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김밥 두 줄은 가지고 가고 싶다.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


빈 손으로 와서 빈 손으로 갈 줄 알지만,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 내 손에 2인분 만큼의 김밥이 들려 있었으면 좋겠다.






소풍의 가장 설레는 순간은 소풍 가는 날이 아니라 늘 소풍 가기 하루 전날이다. 여행도 가기 전이 제일 설레는 것처럼. 정작 소풍날의 풍경보다는 소풍 전날이 어땠는지만 아련하게 피어오르는 까닭이리라.


소풍 가기 하루 전 제법 큰 액수를 엄마가 건네면 거스름돈을 남겨올지는 묻지 않고 엄마 맘이 바뀔세라 곧장 슈퍼로 달려갔다. 가방에 다 들어가지도 않을 과자를 받은 액수를 꼬박 채워가며 신중히도 골랐다.

그 기분은 그때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다. 지금은 마트에 가서 원하는 과자를 한껏 다 담아야 할 설레는 소풍도 없고, 설령 다 담는다고 해도 그때처럼 설레지 않으니.


양손 가득 미어지는 비닐봉지를 들고 집으로 돌아와 소풍 가방을 싼다. 평소 가방에 있던 책, 노트, 필통을 다 꺼내 놓고 오로지 소풍을 위한 책가방을. 책가방이 크지도 않은데 질소가 가득 들어간 봉지과자로만 사온 몽매함으로 인해 이제는 선택의 시간이다. 이건 초코가 발라져 있어서 녹으니 빼고, 저건 손에 너무 많이 묻어나는 과자이니 빼고, 갖가지 이유로 뺄 거 같았으면 애초에 안 사면 그만인 것을 기회를 놓칠 수 없으니 일단은 다 사고 보는 그 심리란.


한창 그렇게 들뜬 기분에 젖어 있을 때면, 매년 아빠가 하는 장난이 있다.


“아빠 내일 소풍 따라갈까?”하고 넌지시 묻는 것.


그때부터 소풍의 설렘은 걱정으로 바뀌고, 나는 오지 말라는 말도 그렇다고 선뜻 같이 가자는 말도 못 하고, 연신 아빠의 볼록 나온 배를 밀어 넣었다.

다른 사람 기를 한껏 세워줄 주문받은 양복을 만드느라 아빠의 밤은 늘 깊었고, 고된 삶의 무게는 우리가 등교할 때까지도 아빠를 꿈나라에서 데려오지 못했기에 내일 아침 아빠가 깨지 않게 슬쩍 빠져나가겠다는 용의주도한 생각을 하다가도, 내일은 아빠가 작정하고 일찍 일어나 같이 가자고 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슬그머니 들곤 했다. 그래서 자기 전에 지극정성으로 기도를 했다. 내일 아침엔 아빠 배가 쏘옥 들어가게 해달라고.


그렇게 미루고 미룬 소풍을 우리는 끝내 같이 가지 못했고, 아빠는 이 세상 소풍을 끝냈다.

천상병 시인의 귀천을 마주하면 나는 늘 아빠의 소풍이 진짜 아름다웠기를, 아빠의 양복점 이름처럼 ‘유토피아’였기를 바랐다.


그래서 생의 아무것도 가져갈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내가 하늘로 여행을 갈 즈음엔 그저 아빠랑 나눌 김밥 두 줄만 들려 있었으면 좋겠다.



아빠 내일 소풍 따라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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