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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어나 Jun 28. 2023

“피어나”는 청춘이기를

다시 30대, 나이 들어감에 대하여


청춘

청춘이란 삶의 한 시절이 아니라 마음먹기에 달렸나니
장밋빛 볼, 붉은 입술, 부드러운 무릎 그런 게 아니라 풍부한 상상력과 왕성한 감수성과 의지력
그리고 인생의 깊은 샘에서 솟아나는 신선함을 뜻하나니.
청춘은 두려움을 물리치는 용기, 안이함을 뿌리치는 모험심, 탁월한 정신력을 뜻하나니.
때로는 스무 살 청년보다 예순 살 노인이 더 청춘일 수 있네.

누구나 세월만으로 늙어가지 않고, 이상을 잃어버릴 때 늙어가나니
세월이 피부를 주름지게 할지는 몰라도 열정을 포기한다면 영혼의 생기를 잃어버리게 되겠지.

걱정, 두려움, 자기 불신이 마음을 속이고 영혼을 먼지로 되돌리기에
그대가 젊어 있는 한, 예순이건 열여섯이건 마음속에는 경이로운 동경과 아이처럼 왕성한 탐구심, 그리고 저마다 인생의 링에서 기쁨을 얻고자 하는 열망이 있지.
그대의 마음과 나의 마음속에 무선기지국이 있는데, 사람들과 신으로부터 아름다움, 희망, 기쁨, 용기, 그리고 힘의 영감을 받는 한, 우리는 언제나 청춘이다. 그러니 안테나가 꺾일 때, 정신이 냉소로 가득 찬 눈과 비탄이란 얼음으로 뒤덮일 때, 우리는 늙은이가 되네. 스무 살 조차도.
안테나를 올리고 희망을 물결을 붙잡는 한, 그대 여든 살이어도 늘 푸른 청춘이네.

사무엘 올만 < 안도 타다오의 뮤지엄 ‘산’에서>


“30대로 다시 돌아가는 1984년생 OOO님”

은행 마케팅 문자다. 살다 보니 나이가 줄어드는 날도 온다. 오늘부터 다시 30대다.


마흔이 되는 건 서른이 되는 것보다는 쉬웠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퇴사에만 온 신경이 쓰여, 앞자리가 바뀌는 것에 무신경했고 그래서 두려움이 덜 했다.


서른을 앞둔 2012년 12월 31일의 나는 이미 서른이 된 대학동기들의 괜찮다는 위로를 튕겨내며 세상에 곧 종말이라도 오는 양 우울해하며 영혼을 좀먹고 있었다. 내일부터 소위 아줌마가 될 것 같았고, 내일부터 몸 구석구석이 아파올 것 같았고, 내일부턴 어른처럼 살아야 할 것 같았다. 모든 것이 두려웠다.

그즈음 제일 많이 들었던 노래가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였으니, 서른이라는 숫자에 지독히도 집착했다.  


정작 자고 일어난 다음 날, 아무렇지도 않았지만.

너무 아무렇지도 않아서 오히려 겸언쩍었지만.




어렸을 때부터 작은 눈이 컴플렉스였다. 엄마도 엄마의 작은 눈이 콤플렉스였는지, 엄마는 내가 딸이라는 걸 안 날부터 눈 큰 연예인 사진을 오려 잘 보이는 곳에 붙여두고 생각날 때마다 “눈만 커라. 눈만 커라”했단다. 그게 태교였다고.

우스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갓 태어난 딸의 눈을 보고 속이 상해 미역국을 이틀이나 걸렀다던가? 엄마 눈엔 예쁜 딸을 안고 나가면 늘 지나가시는 분들이 “예쁘다”가 아니라 “어머, 귀엽네”하셨단다. 그게 그렇게 속이 상했단다. 작은 눈 때문이라고. 코도 멀쩡하고 입술도 귀여운데, 눈이 작아 그런 거라고.

줄줄이 손자들 뿐이라 기다려온 손녀 소식에 반색하는 할머니에게 눈이 작다고 푸념했더니 “애가 이렇게 쪼그만데 당연히 눈도 작지. 크면서 눈도 커지는 거지. 너는 별 걸 다 걱정한다”하셨단다.

할머니의 바람과 달리 안타깝게도 작은 눈은 키가 커지고 얼굴도 커지고 다른 모든 것들이 커질 때에도 내내 작았다. 그 작은 눈은 중, 고등학교 시절 다양한 별명을 만들어냈다.

단춧구멍, 건빵눈, 눈짝(눈이 작다는) 등등


살면서 건빵에도 눈이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드래곤볼의 ‘부르마’ 같은 땡그란 눈을 간절히도 바라던 내게 30대 중반 드디어 쌍꺼풀이 생겼다. 자연스레. 아니 처음엔 조금 부자연스럽게. 쌍꺼풀이 우성이라는데 우리 집에서 나만 없던 그 쌍꺼풀이 드디어 생긴 거고, 출생의 비밀쯤으로 어딘가에 부자 엄마 아빠를 기대했던 나에게 출생의 비밀 따윈 없던 걸로 밝혀진 거다.  


그 나이에 생기는 쌍꺼풀이 궁금해 알아보니, 노화란다. 눈꺼풀이 얇아지며, 무게를 견디지 못해 겹치는 거라고. 그리고 5년이 지난 지금, 눈이 커 보이는 돋보기를 쓴다. 6살인가 7살 때부터 평생을 써온 안경을 3-4년 전에 찾은 안과에서 벗어도 된다고 했다. 일시적으로 눈이 좋아지는 것도 노화의 하나라면서. 대신 노안이 일찍 와서 40대 초반엔 돋보기를 써야 할 거라고도.

잠시 몇 년간 늘 써오던 안경을 안 쓰니, 그렇게 홀가분할 수 없었다. 겨울에 실내에 들어갈 때 뿌옇던 시야도 개였고, 늘 콧등에 화장이 뭉쳤었는데 이제 모두 해방이었다. 그래도 한 동안은 콧잔등에 걸쳐진 것 같아 수시로 안경을 올리는 시늉을 했지만.


노화는 그렇게 자연스럽게,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졌다. 다 나쁘지만은 않다면서.


 




안도 타다오 뮤지엄 산에 다녀온 신랑이 청춘으로 살자고 했다. 사무엘 올만의 저 시를 보여주면서.


작년 어느 날 처음으로 시간을 돌리면 언제로 돌아가고 싶냐는 질문에 비로소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답을 했다. 그동안 뭐가 중한지 모르고 살았던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고, 이제야 불행을 끝내고 봄날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데, 애써 돌리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마흔이 되는 건 기다려졌었다.


기다린 그 마흔은 물론 혼란의 연속이었다. 철없이 살겠다고 다짐했지만 삶에 유연해지는 내가 어쩐지 철든 어른이 되어 가는 듯 했고(물론 신랑은 강력하게 그 정도는 아니라고 했다), 철없이 살던 그 시간들이 그립다가도, 나이 마흔의 무게에 지혜 한 줄 없는 가벼움이 부끄럽기도 했다.


그 와중에 나이를 한 살 줄여 준다니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답이 무색하게, 기분이 그냥 좋다. 나이 들어감에 대해, 불혹의 흔들리지 않음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조금은 번 느낌이라.


육신이 시들어도, 영혼은 피어나길 바라며,

내 필명처럼 끊임없이 내 안의 용기가, 호기심이, 모험심이, 상상력이, 창의력이 "피어나"는 청춘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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