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은 어떻게 인간을 움직이는가
하늘 아래, 인간은 질문하기 시작했다
별빛이 풍만한 밤하늘을 관측한 적이 있는가.
그 순간 우리는 세 가지 감정을 차례로 마주한다.
첫째, 밤하늘의 압도적인 아름다움에 놀란다.
둘째, 수많은 별들이 질서 속에서 변화해 간다는 사실에 감탄한다.
그리고 셋째, 문득 이런 호기심이 스친다.
“지구는 과연 우주의 중심일까?
아니면 우리가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천구가 회전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일까?”
자연의 원리를 이해하고자 하는 질문은, 인간에게 있어지극히 본능적인 충동이다.
애니메이션 〈지구의 운동에 대하여〉는 바로 그 질문으로부터 시작된 사유의 역사,
즉 ‘지동설’을 둘러싼 인류의 투쟁 속으로 안내한다.
“그래서 지금부터 지구를 움직일 것이다”
‘천동설(天動說)’은 고대 그리스부터 중세까지 오랫동안 받아들여졌던 우주관이자, 지구가 우주의 중심에 정지해 있으며, 태양과 별, 모든 천체가 지구를 중심으로 돌고 있다는 개념이다.
중세 기독교 사회는 이 천동설을 신앙과 결합해 절대적인 진리로 수용했다. 그 믿음 안에서 지구의 고정성은 곧 신의 권위를 의미했다.
그러나 지구가 움직인다는 생각은 그 권위에 균열을 냈다. 누군가에겐 그것은 단순한 물리학의 문제가 아니라신을 부정하는 ‘죄’로 간주되었다.
이 작품은 그 안에서 지동설이라는 세계관을 증명하려는 이들의 지적 혁명을 다룬다.
그렇게 과학과 신학, 이성과 신앙, 의심과 믿음이라는 대립되는 가치들이 충돌하던 시대의 중심으로 시청자를 이끈다.
시대의 철학을 움직이는 건 전해오는 이야기다
이 애니메이션에서 가장 두드러져야 할 지점은 바로 등장인물의 캐릭터성이다.
이 작품 속 인물들은 시대정신과 사상, 윤리적 갈등을 상징하는 은유적 존재들이다.
등장인물인 라파우, 바데니, 오크지, 요렌타, 알베르토 등은 각기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지만 ‘지동설’을 좇으며 작품을 관통하는 하나의 메세지인 ’앎‘ 즉 지를 사유한다.
특히 라파우라는 캐릭터는 진리에 다가서는 인간이 겪게 되는 내적 갈등을 모두 내포한다.
다시 말해 신념, 의심, 집착, 광기의 모든 단계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존재이자,
진리를 좇는 인간은 끝내 인간일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작가의 최종적 의심(철학)의 메타포이다.
이외에도 과학적 사유를 은유하는 인물 바데니와 문학의 힘을 은유하는 인물인 요크지의 연결 서사,
지동설의 순수 역사를 은유하는 요렌타와 격변하는 시대의 방황하는 인물을 은유하는 드라카의 연결 서사 등
유기적으로 연결된 캐릭터의 서사는 그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들의 갈등과 모순부터 오늘날 우리의 모습까지 비치며 공감을 자아낸다.
철학적 유기성의 정점
〈지구의 운동에 대하여〉는 단지 ‘잘 만든 이야기’가 아니다. 각 부는 하나의 명확한 메시지를 담고 있으며,
그 메시지들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사상과 감정, 윤리와 논리가 한데 얽힌 거대한 흐름을 만든다.
작가 우오토의 또 다른 작품 <가작>과 <100m>를 보면, 이 사람이 단순한 만화가를 넘어서 철학을 서사로 다룰 줄 아는 서사 설계자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철학을 전공한 작가가 빚어낸 세계이기에 가능한 정교함이다.
지식이란 무엇이며, 신념은 어떻게 사회를 움직이는 가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는 예술이다.
그리고 시청자는 그 질문 앞에서, 깊은 타우마제인(Thaumazein, 철학의 시작인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