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퍼팝, 젠더, 그리고 진정성의 해체에 대하여
인공의 사운드로 진실을 만든
트랜스 여성 프로듀서
“Faceshopping, I’m real when I shop my face.”
이 가사는 첫눈엔 불쾌한 모순처럼 보인다.
그러나 곱씹을수록 이 가사는 우리가 숨기고 싶어 했던 모순의 가장 날카로운 진실로 다가온다.
SNS 필터로 가공된 사진이 진짜 자신으로 받아들여지고 성형 수술이 자아실현이 되는 시대 속에서 가공된 정체성은 ‘진짜‘가 된다.
SOPHIE는 바로 그 세계의 경계에서 스스로 가장 인공적인 존재가 됨으로써 진정성의 본질을 거꾸로 묻는다.
뮤직비디오에서 그녀는 비닐처럼 윤기나는 피부, 3D 렌더링된 안면 근육, 의학적 스캔을 연상케 하는 장면들을 통해 정체성의 가공 과정을 시각화한다. 얼굴은 상품이 되고, 인간 존재는 연출된다. 이 영상은 소비사회와 신체정치가 교차하는 기묘한 지점에서 전개된다. 음악 평론가들은 이 영상을 두고 “트랜스 바디의 정치성과 포스트휴먼 미학이 교차하는 가장 급진적인 팝 아트”라고 평했다.
SOPHIE의 Faceshopping은 단순한 음악이 아니라 퍼포먼스이며, 신체를 재조립하고 정체성을 해체하는 기술적 예술 실험이다. 그녀의 목소리는 기계처럼 조작되고, 드롭은 금속성 파열음처럼 쏟아진다. 이 사운드는 불쾌할 정도로 극단적이지만, 그 불편함 속에서 우리가 진짜라고 믿는 것들이 뒤흔들린다.
그녀는 음악을 통해 외친다 .
정체성은 진실일 필요가 없으며, 진실은 구성된다.
그리고 그 구성이 이 음악에서 말하는 쇼핑이 될 수도 있다.
하이퍼팝의 탄생, 그리고 SOPHIE의 기여
2010년대 중반, 전통적인 장르 구분이 모호해지고 디지털 정체성이 부상하던 시기에 SOPHIE는 하이퍼팝이라는 전례 없는 사운드 혁명을 이끌었다.
그녀의 음악은 전자음의 과장, 음절 단위로 쪼개진 보컬, 금속과 라텍스에서 가져온 질감 등을 활용해, “팝”이라는 개념 자체를 재구성했다.
“소리는 크다면 가장 크게, 단순하면 가장 단순하게.” 그녀와 PC Music이 공유한 이 음악적 태도는 극단을 통해 순수를 증명하려는 시도였다.
그녀의 대표곡 “Lemonade”, “Hard”, “Bipp”는 물론이고, “It’s Okay To Cry”에서는 자신의 목소리와 얼굴을 처음 드러내며, 아방가르드와 팝의 경계를 허물었다, 그리고 마침내 SOPHIE라는 존재는 장르가 되었다.
“It’s Okay to Cry”는 SOPHIE의 데뷔 이후 처음으로 자신의 목소리와 얼굴을 공개한 곡이다.
이전까지 그녀는 고도로 가공된 사운드와 익명성을 유지한 아티스트였다.
하지만 이 곡은 그녀의 전환점이었다.
뮤직비디오에는 긴 컬리 헤어, 맑은 눈, 담백한 표정의 SOPHIE가 구름 사이에서 노래한다.
“It’s Okay to Cry”는 트랜스젠더로서의 정체성을 공식적으로 드러낸 최초의 예술적 발화였다.
그러나 이 곡은 ‘커밍아웃 송’이라기보다,
오히려 모든 존재의 연약함에 대한 찬가에 가까웠다.
그녀는 삶 전체를 통해 그녀의 가장 연약한 모습까지 도 정직해지기를 선택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것이 그녀가 노래를 통해 세상에 전한 진심이었다.
“I think your inside is your best side.”
“It’s okay to cry.”
하이퍼팝이라는 격렬하고 인공적인 사운드 안에서,
울어도, 약해져도 괜찮으니 숨기지 않아도 된다고.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우리 안에 있는 연약하고 흐릿한 감정들이라는 가사는 가장 인간적으로 다가온다.
이 곡은 그녀의 다른 작품들과 달리 보컬의 왜곡이 없다. 목소리는 거의 ‘생(raw)’에 가깝게 유지되며,
후반부로 갈수록 신스가 폭발하듯 터지고, 하늘이 번개처럼 갈라진다.
이 사운드 전개는 단순한 분위기 변화가 아니다.
그것은 SOPHIE의 인공을 통해 진실에 닿을 수 있다는 믿음의 반전 같은 장치다.
처음엔 순수하고 진실해 보이는 자연적 보컬로 시작하지만, 그것조차도 결국 폭발적이고 왜곡된 디지털 세계로 흡수된다. 그녀는 어쩌면 앞으로의 미래를 음악으로 예견하는 것 같다.
SOPHIE의 존재 방식
SOPHIE는 자신을 “여성으로 커밍아웃”했다고 말하기보다, “정직함의 연장선에 있는 삶”을 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녀는 ‘커밍아웃’이라는 단어조차 부정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의 선언이 아니라 삶 전체를 걸친 존재 방식이기 때문이다.
‘나는 남성이고, 남성 음악을 만들며, 거기에만 속한다 ‘는 고정관념을 깨뜨리기 위해 그녀는 어떤 젠더로 자신을 규정하든 모두 함께 음악을 만들 수 있는 환경을 추구했다. 이는 단지 트랜스젠더 아티스트로서의 정체성 선언을 넘어, 정체성은 유동적이며 다층적일 수 있다는 전복적 메시지였다.
그녀는 질문을 던졌다.
“왜 가장 감정적인 음악만이 진정한 음악이어야 하나요? 왜 가장 밝고, 가장 인위적이고, 가장 날카로운 것이 진실일 수 없다고 말하나요?”
그녀에게 있어 음악은 가장 날카로우며, 인공적이기에 오히려 진실을 투명하게 드러내는 도구였다.
보름달을 만지려 추락한 예술가
2021년, SOPHIE는 아테네에서 보름달을 더 잘 보기 위해 옥상에 올라가다 추락사했다. 그 사건은 단순한 사고 이상의 상징성을 남겼다.
그녀는 평생 ‘진실’이라는 보름달을 향해 손을 뻗었다. 현실이 아닌 이상을 좇는 예술가, 그리고 그 빛에 닿으려다 추락한 존재.
그러나 그 추락은 실패가 아니다. SOPHIE는 팝이라는 가장 상업적이고 평평한 장르 안에, 젠더와 인간성의 복잡한 다층성을 심은 최초의 인물 중 한 명이었다.
그녀는 인류에게 물었다.
정체성은 외면인가, 내면인가? 진정성은 감정인가, 구성인가? 그리고 그 질문은 여전히 하이퍼팝이라는 유령 안에서 울리고 있다.
SOPHIE는 존재 그 자체로 질문이었고,
사운드로 정체성을 조각한 첫 번째 조각가였다
그녀는 도달할 수 없음을 알면서도
보름달에 손을 뻗었다.
그것은 무모함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원하는 삶을 문학처럼
살아낸 용기의 다른 이름이었다.
그리고 그 시도만으로도, 그녀는 충분히 아름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