털보를 위한 도구는 있다, 셀프 이발 폭망기
[더,오래] 한재동의 남자도 쇼핑을 좋아해(27)
남자의 머리는 외모의 팔 할이라는 말이 있다. 속된말로 ‘머릿발’의 중요성을 말한 것이다. 두발 자유화라는 말을 모르는 Z세대는 공감하지 못하겠지만, 나의 남중·남고 생활에서 가장 절실했던 것은 구레나룻의 길이였다. 이것은 군대에서도 이어졌다. 민간인은 절대 알아차릴 수 없는 군인의 구레나룻 사수기는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었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곳도 군대와 비슷한 사내문화를 가진 직장이었다. 브라운색으로 살짝 염색하면 어려 보인다는 미용실 실장님의 제안에 넘어가 염색을 했다가 출근 다음 날 한마디 듣고 바로 ‘블루블랙’으로 혼자 염색을 했다.
나의 두상은 넙데데해 정면에서 보았을 때 상당히 거대한 느낌이다. (사실 절대적인 지름도 크다. 남들이 편하게 쓰는 모자를 쓰면 머리가 조여서 아파온다) 그래서 나의 머리 스타일은 2가지 절대적인 목표를 추구한다. 첫째 머리가 작아 보이는 스타일, 둘째는 그나마 어려 보이는 스타일. 수년간의 시행착오 끝에 가장 적합한 머리 스타일을 찾았다. 바로 ‘투블럭컷’ 스타일이다.
‘투블럭컷’은 쉽게 이야기해 양옆 부분을 짧게 잘라 얼굴이 슬림해 보이는 스타일이다. 몇 년 전부터 유지하고 있는데, 옆머리가 금방 자라 자주 미용실을 가야 하는 단점이 있다. 문득 군대에서 쓰던 이발기가 떠올랐다. 왠지 스스로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3달 안에 이발기값을 뽑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포털에 검색해보니 생각보다 다양한 제품이 있었고, 한번 쓰고 안 쓸지도 모르는데 굳이 유명 브랜드의 비싼 제품 보다는 중소기업의 저렴한 모델을 구매했다. 배송 온 이발기를 보더니 아내가 전에 키우던 반려견 미용 기계와 똑같이 생겼다며 옆머리 미는 것을 도와준다고 했다. 그렇게 아마추어 2명이 거울 앞에서 이발기를 들었다.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미용실에서 봤을 때는 쉽게 쓱쓱 미는 것 같았는데, 내 이발기가 지나간 자리는 층을 이루며 마치 강원도의 계단식 논 같이 되고 말았다. 수습하려 하면 할수록 머리 모양은 점점 이상해졌고, 결국 맨살이 드러나는 수준이 되었다. 전문가의 기술을 금방 따라 할 수 있으리라 착각했던 것에 대한 대가였다. 그렇게 이발기는 한번 쓰고 창고에 넣어졌으며, 15년 단골인 미용실 실장님은 역시나 훌륭하게 나의 머리를 수습해주셨다.
▼ '남자도 쇼핑을 좋아해' 를 모아서 책 <결제의 희열>로 출간되었습니다. 부족한 글을 편집자와 열심히 고치고 다듬었습니다. 신문에서는 말할 수 없었던 좋아하는 브랜드에 관련된 내용도 새로 써서 넣었습니다. 부디 올해 독자님들께 모든 결제가 행복을 불러오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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