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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복치남편 Mar 10. 2022

[퍼온글]20대 대선을 보고 난 뒤의 소회

분당아빠B가 보는 이번 대선

어제 20대 대선 선거가 끝났습니다. 나도 내 개인의 부족한 생각으로 한 명을 지지했던 입장으로 아쉬운 마음도 들고 기대와 소망도 가져보게 되지만, 이러한 느낌들이야 모든 유권자가 가지고 있는 생각일 듯 하여 일축하고, 이번 선거 개표를 지켜보면서 떠오른 생각들을 정리해보고자 합니다.


고리타분하지만 좀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볼까 합니다. 워낙 이런 고리타분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편이라 가끔 핀잔을 주위사람들에 듣곤 합니다만… 전두환 씨가 불법적인 방식으로 권력을 찬탈한 이후, 우리나라는 꽤나 많은 희생을 치러서야 헌법개헌을 통해 87년 체제를 만들어냈습니다. 어릴 때는 전두환 씨가 정말 세상에서 제일 나쁜 놈이라고 생각했었지만, 세계로 눈을 돌려보니 생각보다 전씨는 유일무이한 나쁜 놈은 아니었습니다. 나쁜 놈들은 전세계 각지에  많이도 있었고, 그중 몇 놈들은 공동체를 파괴하면서까지 자신의 욕망을 구현하고자 최선을 다하는 지혜와 시선의 길이가 반의 반뼘 타조새끼들 같은 자들도 있었습니다. 우리나라가 달랐던 점은, 많은 사람들의 같은 방향성으로 비폭력적인 저항을 계속 하였으며 (일부 화염병, 각목등이 있었을 지 몰라도 외국에서와 같이 화기를 사용하는 폭력저항은 없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또 이 와중에 수많은 엘리트 리더들이 본인의 기득권을 포기하면서 버텨냈고, 이중 몇 명은 생존하여 구심점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다음 해에 올림픽이 예정되어 있었고 냉전상황에 반미정서가 더 크게 일어나는 건 미국이 원치 않았던 부분에 압박을 느꼈기에 환경에서의 운이 따라준 부분도 있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운이라는 단어를 쓰기에도 죄송스러운 것이 정말 셀 수 없는 많은 생명이 안타깝게도 졌습니다. 잘 알려진 박종철열사, 이한열열사 말고도 정말 수많은 어린 생명들이 소리소문없이 사라지고, 죽고, 불구가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정의감으로, 사명감으로 더 나은 사회를 위해 거침없이 생명을 던졌고 결국 개헌을 이끌어 낼 수 있었습니다.


87년 체제가 바로 민주진영으로의 정권이양으로 이어지진 않았습니다. 야권은 단일화에 실패했고, 87년 13대 대선은 노태우씨, 92년 14대 대선은 3당합당으로 탄생한 민자당의 김영삼 전대통령으로 이어졌으며, IMF 이후 치러진 97년 15대 대선에서야 보수진영과의 연합을 통해 김대중 전대통령으로 첫 여야교체가 이뤄졌습니다. 여기까지는 지역간 갈등구도가 주로 관심의 대상이 되었으며, 이에 정면으로 도전한 노무현 전대통령이 드라마틱하게 02년 16대 대선에서 승리하게 되었던 것을 생생히 기억합니다. 


여기까지는 모두가 익히 들어온 이야기입니다. 이후에도 한참동안 지역구도가 정치갈등에 대한 주요 화두였지만, 내가 관심이 더 가는 부분은 02년 16대 대선부터의 세대간 구조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87년 13대 대선, 90년 3당합당으로 지역갈등이 고조된 이후 약 20년간 수도권으로의 인구집중은 꾸준히 일어나 1987~2008년 사이 334만명이 수도권으로 순유입되었으며, 현재도 20대의 수도권으로의 이동이 계속되어 2020년을 기준으로 수도권의 인구가 비수도권의 인구를 추월하게 되었습니다.


아직도 지역감정은 중요한 과제중의 하나이나, 줄어드는 지방 유권자수, 수도권 집중으로 인한 지역희석, 지역감정이 약한 세대의 출현 및 유권자로의 진입은 지역감정뿐만 아니라 세대간의 갈등 또한 주요 화두중 하나로 떠오르게 되었습니다. 다음 이야기를 이어나가기 위해 다음 표를 봐주시지요. 투표율을 반영하지 않은 전체 연령별 유권자 수 입니다.



보시다시피 02년부터 22년까지 꾸준히 총 유권자수는 증가해 무려 1천만명이 증가합니다. 참고로 02년 우리나라 인구는 4,764만명, 현재는 5,178만명입니다. 총 인구가 400만명 가량 느는 동안 유권자 수는 1,000만명이 늘었고, 60대 이상 유권자 수는 740만이 늘었습니다. 요약하면, 1) 60대 이상 인구가 엄청나게 늘고 출산율이 떨어져 노령화가 급속히 진행되었지만, 2) 경제활동인구는 폭발적으로 늘었습니다. * 60대 이상 취업률은 40% 내외입니다.


97~22년은 지속적으로 고용가능인구가 증가하는 시기였습니다. 이를 반영하여 02년에는 [한국] 인구구조 ‘황금기’ 진입…“10년 장기호황 온다” - 조선비즈 (chosun.com) 라는 기사도 나왔습니다. 실제로 02년부터 코로나 직전인 19년까지 경제는 지속적으로 성장하여 1인당 GDP 를 일본 턱밑까지 추격하여 관련된 기사가 여럿 나오기도 했습니다.



위의 그래프들은 ‘02~’19년동안 우리나라 경제가 꾸준히 성장했으며, 경제수지 (경상수지 + 자본수지) 가 금융계정으로 꾸준히 전환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쉽게 말해서 상품과 서비스 등을 팔아 돈을 벌어서 해외의 금융자산을 매입하는 용도로 썼다는 이야기입니다. 12~19년에 실로 어마어마한 경제수지 흑자가 금융계정으로 변환되게 됩니다. 좌측이 1,000 일 때 10억 달러이므로, 대략 1조원 이상이 됩니다. 15년에 100,000을 넘긴 것은 100조원을 뜻합니다. 반도체, 조선산업 등이 크게 호황을 맞이할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해당 소득이 일반 가계로 연결되진 않았습니다.



똑같은 소득을 만들어내기 위한 노동자수를 뜻하는 고용계수는 반의 반토막이 나버렸습니다. 한국의 로봇 밀도는 전 세계 중 최고가 되었습니다. 이를, 노동친화적 정책으로 인한 정부실패로 기업이 로봇을 들인 것 이라고 설명하든, 기업들이 사회적 책임을 다 하지 않은 악마들이라고 비난하든, 어느 정당의 의견을 반영하든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고용은 줄어들었고, 국가 전체의 부가 늘어나는 만큼 가계가 살찌진 않았으며, 이런 상황들에 대한 고민은 그저 “고용창출”, “경제활성화” 라는 레토릭에 갇혀 앞으로 단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MB정부의 낙수정책도, 박근혜정부의 창조경제도, 문재인정부의 주52시간 단축, 공공일자리 창출도 이러한 근본적인 문제를 눈에 띄게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아니면 아예 정부가 자신의 정치적 구호나 노력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가계는 가난하게 남았고, 청년의 채용률은 낮아졌으며, 사회의 빈곤층은 극한전선에 계속 내몰려 있습니다. 정부를 포함한 정치권, 기업, 가계 셋 중 어느 한 곳의 책임은 아닐것입니다. 세계화와 치열한 신자유주의의 물결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쩔수 없는 일들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어쨌든 우리는 이 지점에 서있습니다. 우리가 이 생활을 유지할 수 있을것이냐라는 질문에 불안감과 좌절감을 안고 말이죠.


부족한 소득대비 상승하는 생활비와 주거비 등은 가계부채비율을 점점 끌어올려 처분가능소득 대비 가계부채비율은 ‘00년의 76.8% 에서 2020년의 200% 까지 올라왔습니다. 



이는 OECD 기준으로 6위입니다. 상위 5개국은 순가처분소득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높지만 노인연금을 소득대비 70% 이상 혹은 기본적인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는 국가들입니다. 우리나라는 그런 준비 하나 없이 초고령사회로 돌입하고 있습니다. 몇몇 기사들에서는 미래의 세대에게 더 큰 부담을 어쩔수 없이 지워야 한다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야기에서 가장 먼저 벼랑끝에 선 느낌을 받는 세대는 20대, 60대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과정속에서 더욱 뼈아픈 것은 우리 사회의 미래의 기둥인 젊은 세대에 대한 투자는 점점 줄어들었다는 것입니다. 20대 청년 실업률은 높아지는 경향을 보였고 무엇보다 최근에는 대기업들조차 신입에 대해 비용을 투자하면서 교육하는 부분을 꺼리기 시작했습니다. 대학교가 현재 필요한 인원을 배출할 수 있도록 최적화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이는 20대 청년들에게 좌절로 다가왔습니다. 기업 또한 어려운 경제상황에서 어쩔 수 없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특히, 몇몇 대학을 졸업한 학생들은 재교육하는데 돈과 시간이 많이 든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확실히 대학교 교육의 실용성은 무너져 있었습니다. 몇몇 유명 대학은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지방의 대학들은 확실히 그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사회는 지잡대라는 멸칭을 쓰며 그 대학에 가게 된 학생들을 부르고 있었습니다. 흔한 방식입니다. 구조속에서 힘들어하는 약자끼리 갈라치기 합니다. 사실은 교육개혁이라는 과제를 다 하지 못하고, 그저 자리를 차지하고 권위를 누리는 데에 정신팔려 있던 사학과 교육계 종사자 등의 목을 용기있게 쳐내지 못한 사회와 이를 아젠다로 띄우지 못한 정치권을 탓하기 보다는요. 그 결과로 우리는 아이를 더 낳아달라고 외치면서 사회로 나가는 청년들에게 구조적으로 절망하고 좌절하게 하여 우리의 미래를 빛내줄 젊은 세대를 죽음으로 내몰고 있습니다. 이러한 부분이 좌절한 20대의 탓일까요.


60대 또한 기나긴 노후의 터널로 들어가기엔 재정적으로 준비가 안되긴 마찬가지입니다. 87년 체제를 30~40대의 열정의 투쟁의 물결로 지나고 국가는 선진국 반열에 올라갔다고 하는데, 사회는 여전히 살기 팍팍하고, 왠지 모르겠지만 우리보다 나은 사회에서 살고 있는듯한 20~30대 자식들은 언제나 인상을 쓰고 결혼도 안한다고 하는 모양새가 맘에 안들기도 합니다.


20대는 미래가 보이지 않습니다. 이제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초고령사회로 들어가게 되면 세금 및 공적연금, 보험료 등이 소득의 절반을 넘어설지도 모른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는 이야기는 즉 지금의 40대를 부양하기 위해, 빛도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약자로 끌려갔던 20대가 또다시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따라서 20대의 절망감과 분노는 클 수밖에 없습니다.


정리하면, 우리나라는 돈을 한참 벌고 힘이 센 기간동안 사회가 마땅히 미래를 위해 했어야 했던 일을 진행하지 못했고, 이는 결국 구성원들끼리 물어뜯는 아수라장의 모양새를 만들어냈습니다. 연금개혁, 교육개혁 등등, 각각 하나하나가 지지율을 박살내고 어떤 경우에는 만명단위의 기득권 세력에게 강력한 저항에 맞닥뜨리게 될테지만, 그래도 했어야 했던 일들을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쪽에 씌여야 할 재원은 일부는 부동산으로 흘러들어가 더 상황을 악화시켰습니다. 누구 한사람의 책임은 아닐 겁니다. 모두의 책임이라 할 지라도, 이 과정에서 정치의 책임이 없다고 하진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앞으로 이러한 문제들이 40대~50대, 현재 권력과 부를 상대적으로 많이 점유하고 있는 세대, 에게 숙제로 남았습니다. 적당히 진보로 포장한 40~50대가 손에 피를 묻히는 절박함으로 사회를 개혁함 없이 왜 20대는 멍청하게 보수당을 찍는거야, 60대는 꼰대들이네라고 이야기하기엔 시간도, 여력도 많이 남지 않았습니다. 이 모든 책임이 대통령에게, 정치권에 있는 건 아니겠지만 정치가 꿈과 비전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 꿈과 비전이 비용만으로 남아 사람들에게 힐난을 받고 더 이상 임기를 유지하지 못할지라도 앞으로 가야 합니다. 아니면 이 모든 책임에 대한 결과는 구성원의 반목이라는 슬픈 형태로 남게 될 것입니다. 


지난 19대 대통령 임기동안 180석의 거석을 얻은 민주당은 기득권의 교체를 통한 Regime Change 를 이뤄내지 못했습니다. 대대적인 대학교 및 공교육을 현재의 사회와 맞게 개혁하는 교육개혁, 혹은 어린이집 비리가 터져나왔을 때, 어린이집등의 영유아 교육을 갈아엎는 개혁조차도 해내지 못했습니다. ‘02년 노무현 전대통령 시기부터 나왔던 주제인 연금개혁도 이루지 못했습니다. 미래의 다양한 정치적 목소리를 반영할 대선거구제 도입 등의 정치개혁도 이루어내지 못했습니다.


일부 수정은 있었던 것을 당연히 알고 있습니다. 여러 사회구성원 특히 기득권층의 반발이 있었던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민주당 구성원들이 각자 최선을 다했을지도 모릅니다. 혹은 개혁을 진행했으면 반발로 지지율을 유지해나가기 힘들었을지도 모릅니다. 신경써야 할 더 많은 아젠다 들이 있다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살을 내주는 것을 머뭇거리는 사이,  해당 이슈들은 그대로 남았고, 20대는 여전히 좌절하고 있으며, 60대는 여전히 불안해 하고 있고, 나머지 구성원들은 자기가 가지지 못한 부분들에 대한 불만만 가득차 있습니다.

이제 우리 모두가 빚을 갚을 시간이 곧 돌아옵니다. ‘02~’20년 우리가 힘차게 일하는 사람의 비중이 늘어나는 과정에서 손대야 했지만 해결하지 못했던 교육개혁문제, 연금개혁문제가 우리 공동체를 옥죄어 올 것입니다. 30대 중후반 ~ 50대 초반의 소위 진보적 경향을 가진 유권자는 이번 선거결과를 아쉬워 하겠지만, 역으로 생각하면 그정도로 20대와 60대의 좌절감은 큰 것일 것입니다. 현재 30대 중후반 ~ 50대 초반은 우리 사회 구성원 중 생활이 가장 안정적인 세대입니다. 우리가? 라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수치로 나오는 사실이 그렇습니다. 당신이 버겁다고 생각하는 것의 곱절 이상으로 다른 사회 구성원들은 벼랑끝에 내몰려있습니다.


20대 유권자들의 투표율은 19대 대선에 대비해 10%가량 낮아졌습니다. 그만큼 젊은 세대가 느끼는 사회에 대한 좌절감이 얼마나 큰지, 정치에 대한 효능감이 떨어지는  지를 보여주는 방증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20대분들은 더 이상 남녀사이에 갈라치기에 당해서는 안됩니다. 위의 유권자 숫자에서 보듯 10~20대 유권자를 모두 합해봐야 760만 가량입니다. 60대 이상 유권자의 절반가량입니다. 20대가 서로 반목하고 갈라치고 표를 절반으로 쪼갠 뒤에 또 좌절하고 투표율까지 낮아진다면 어떻게 될까요. 옆나라 일본을 보시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나라는 이제 청년의 꿈에 대해 더이상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60대 이상의, 아버님 어머님 또래의 유권자분들과 이야기를 나누어보면 깊은 좌절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87년 체제를 이룩한 주역이지만, 대부분의 투표기간을 지역주의로 갈라치고 서로를 비난하게 만든 정치권의 책임이 너무나 큽니다. 그리고 벌써 30년이 넘게 지났습니다. “초고령사회”라고 사방에서 들리는 이야기들은 여러분들이 이제 사회에서 비용일 뿐인가, 누구도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진 않는건가 라는 좌절감을 느끼고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세상은 너무나 빨리 변하였고 따라가기 힘들어 내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다라고 슬퍼하시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제가 어렵게 드릴 수 있는 말씀은, 여러분들의 헌신은 지금 대한민국 사회가 여기까지 오는 모든 원동력이었습니다. 다만 그 부분이 물질적으로 보상을 받진 못하겠지만, 우리 사회 구성원 중 젊은 사람들은 그 삶의 무게를 무겁게 여길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의 저도 20년 뒤면 60대가 됩니다. 그리고 그때까지 우리 세대가 지금의 60대만큼 내려놓으면서 사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할 정도로 많이 고생한 세대입니다. 하지만 아버님 어머님, 지금의 젊은 세대의 좌절감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서로 사회가 보듬고 서로 공동체를 위해 희생하지 않으면 이 문제들은 다 해결되지 않습니다. 각종 개혁 아젠다는 테이블위로 꺼내질 수도 없을 것입니다. 이번에 대통령으로 선출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해당 아젠다들을 용기있기 꺼내주기를 소망합니다. 만약 그게 안된다고 하면 다음 총선, 대선에서 꺼낼 수 있는 상황이 되길 소망합니다. 그리고 이는 한두명의 정치인의 용기가 아니라, 모든 국민들의 깨어있는 문제의식, 본인의 자리를 내려놓을 수 있는 용기, 공동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해내온 민족입니다. 3.1운동, 4.19혁명, 광주항쟁, 87년 항쟁을 통해 우리가 얼마나 공동체를 사랑하고 미래를 꿈꾸기를 원하며, 본인을 희생하면서라도 아름다운 미래를 만들어나가기를 원하는 민족인지를 보여주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이번 20대 대통령 임기동안 각 세대간에 서로 이해하고 공감하고 소통하면서 지금까지 그래왔듯 위대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시간이 되길 소망합니다.




존경하는 친구의 생각을 너무나 알리고 싶은 마음에 부득이 친구에게 글을 받아 올립니다. 이리저리 조각 나있고 흐트러졌던 사실의 파편을 모아 듣는 이에게 통찰을 주는 특기가 있는 친구입니다. 여러분께도 그것이 닿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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