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립 10년만에 백화점 명품존에 들어간 토종 안경
비크닉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1n년차 마케터 한재동이라고 합니다. 갑작스런 고백이지만 취미는 쇼핑이고, 첫 직장은 백화점이었습니다. 말그대로 ‘덕업일치’였죠. 좋아하던 것이 일이 되면 안 된다는데 쇼핑은 예외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모든 브랜드에 과도한 관심을 가지게 되고 말았습니다. (가지고 싶은게 많지만 한정된 자원의 슬픔을 아시나요? 차라리 모르는 것이 약일지도….) 물욕을 자극하는 힙한 브랜드의 마케팅 스토리를 들려드리려 합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아이웨어 브랜드의 새 장을 연 ‘젠틀몬스터’입니다.
잘 나가는 브랜드를 찾으려면 백화점 정문에서 잘 보이는 매장을 찾으면 됩니다. 보통 그 자리에는 명품의 대명사 ‘에루샤(에르메스·루이뷔통·샤넬)’가 있거나, 그들이 입점해 있지 않다면 그 뒤를 잇는 럭셔리 브랜드들이 있어요. 백화점 1층에선 브랜드 간의 보이지 않는 치열한 자리전쟁이 벌어지죠. 젠틀몬스터도 그 전쟁에 참전했습니다.
젠틀몬스터는 백화점 1층의 한가운데에서 다른 매장과는 차별화 되는 톡특한 공간 디자인으로 눈길을 사로잡았어요. 처음에는 당연히 세계적인 명성의 디자이너가 뉴욕이나 밀라노에서 만든 브랜드이겠거니 했습니다. 그런데 10년 남짓 된 국내 브랜드라는 사실!(국뽕이 차오른다….)
젠틀몬스터를 만든 김한국 대표는 2000년대 후반, 금융 대기업을 그만두고 도전을 위해 작은 영어교육업체 이직한 소위 ‘괴짜’였는데요. 위기에 처한 회사의 돌파구로 아이웨어 사업을 제안한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2011년 2월 스눕바이(2017년 아이아이컴바인드로 사명 변경) 법인을 설립하고 두 달 뒤 젠틀몬스터를 론칭합니다.
사업 초기 매출 1억 원이 채 넘지 않고 전전긍긍하던 그는 입소문을 낼 요량으로 유명 타투이스트와 협업을 추진합니다. 그는 아는 연예인에게 제품을 전해 달라는 김 대표의 부탁을 “디자인이 예쁘지 않다”는 말로 거절했다고 해요(DBR, 2014.11). 이에 김 대표는 충격을 받고 디자인 개발에 총력을 다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어쩌면 그분이 바로 젠틀몬스터의 귀인일 수도 있겠네요.
당시 안경 산업은 안경점과 제작업체 간의 카르텔로 신생 업체 진입이 어려웠습니다. 사람들은 근처 안경점에 가서 시력을 측정하고, 추천해주는 안경테 중에 가장 잘 맞는 안경을 사는 형태였거든요. 하지만 젠틀몬스터가 디자인 개발에 본격적으로 투자를 한 뒤인 2012년 tram c2, matroos 등 디자인이 이쁘다는 평가를 받는 제품들이 등장했습니다. 고객이 먼저 제품을 찾게 되자 안경 산업의 카르텔은 깨지기 시작했어요. ‘안경은 패션아이템’이라는 젠틀몬스터의 전략이 맞아 들어가기 시작한 거죠.
2013년 드라마 ‘별그대’의 인기는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특히 중국에서요. 주인공 천송이를 연기한 전지현씨가 치킨에 맥주를 먹는 장면 때문에 중국 관광객이 한국 여행을 와서 치맥을 하는 것이 유행이었고, 전지현씨가 입는 모든 옷과 액세서리가 품절 되었습니다. 그중에 가장 인기 있던 아이템 중 하나가 바로 젠틀몬스터의 ‘DIDIDI’였습니다. 나중에 알려진 바로는 PPL이 아니라 코디가 디자인이 예뻐서 가져다 쓴 것이라고 합니다. 디자인에 역량을 집중한 덕을 본 거죠.
이렇게 갑자기 떠버리면 식는 법도 빠르다고 하죠? 그러나 젠틀몬스터는 반짝스타가 아니었습니다. 드라마는 끝났지만, 젠틀몬스터의 인기는 여전했고, 오히려 더 도약하게 됩니다.
그 저력을 15일~25일마다 홍대 플래그십 스토어의 패션 인스톨레이션을 교체한 퀀텀프로젝트에서 발견할 수 있어요. ‘패션 인스톨레이션’은 패션과 설치미술(installation art)이 접목된 개념이에요. ‘예술과 의상의 접점으로서 공간과 오브제, 메시지가 통합된 작업’(마진주, 2019)울 가리키죠.
퀀텀(quantum)의 사전적 개념은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에너지의 최소량의 단위'의 의미인 ‘양자'입니다. 공간이 속도감을 갖고 빠르고도 창의적으로 변화하는 걸 보여주겠다는 실험 정신에서 시작됐죠. 경영효율을 생각하면 해서는 안 되는 프로젝트인데, 젠틀몬스터는 브랜딩을 위해 강행했다고 해요.
디자인 스튜디오 패브리커, 최도진 아트 디렉터가 차례로 프로젝트를 이끌면서 다양한 분야의 아티스트, 전문가 및 기업과 협업했어요. ‘이야기가 느껴지는 매장’이라는 컨셉을 잃지 않으면서 디지털 테크놀로지와 퍼포먼스를 활용해 다양한 감각 경험을 제공하고, 방문객과 상호작용이 이뤄질 수 있게 만들었죠. 결과는? 2014년부터 2016년까지 총 36가지의 컨셉을 보여준 퀀텀프로젝트는 입소문을 타며 젠틀몬스터의 팬덤을 만들어냈습니다.
젠틀몬스터는 현재 한국에서 공간마케팅을 가장 잘하는 브랜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백화점 입점 매장도 다른 브랜드와 달리 독특한 매장 구성을 보여주고 있어요. 가로수길과 홍대의 플래그십스토어와 다양한 장소에서의 팝업스토어를 통해 주방·대중목욕탕·세탁소 등 실험적인 콘셉트의 공간마케팅을 실험했고, 항상 이슈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브랜드 가치를 쌓아 올린 결과, 2017년 루이비통의 모기업 LVMH 계열 사모펀드 L캐터톤아시아의 700억 원 프리 IPO 투자로 이어졌어요. 다양한 콜라보레이션도 이어졌습니다. 펜디, 몽클레어와 같은 명품 브랜드들부터 알렉산더왕, 헨릭 빕스코브, 블랙핑크 제니 등 인플루언서와의 협업은 큰 화제가 되었어요. 그중 전자통신회사 화웨이나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같은 게임과의 콜라보레이션들은 보통의 패션브랜드의 공식을 비트는 도전이었습니다.
2017년 스킨케어 코스메틱 브랜드 ‘탬버린즈(tamburins)’를 런칭하기도 했습니다. 탬버린즈는 제품 퀄리티에 대한 찬사와 공간연출, 특히 매장의 ‘향’에 까지 신경을 쓴 디테일에 역시 젠틀몬스터의 세컨드 브랜드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좀 예상이 가능했는데….
2021년 젠틀몬스터는 디저트 브랜드‘누데이크(NUDAKE)’를 하우스 도산에 런칭했습니다. 요즘에는 구찌·루이비통 등이 국내에서 팝업으로 레스토랑을 오픈하는데요, 한발 앞선 시도였습니다.
하우스 도산은 젠틀몬스터가 ‘퓨처 리테일’을 표방하며 서울 압구정로에 마련한 공간입니다. 젠틀몬스터 매장과 탬버린즈에 누데이크까지 입점해 있어요. 젠틀몬스터 로봇 랩이 1년여 연구해 만들었다는 육족 로봇 THE PROBE도 전시돼 있습니다. ‘끊임없이 소비자의 감정을 자극시키고자 하는 브랜드의 도전 정신’을 상징한다고 해요.
커피 맛 때문이 아니라 스타벅스의 문화코드 때문에 스벅을 마시는 것처럼, 젠틀몬스터의 아이웨어에 열광하는 이유도 젠틀몬스터만의 문화코드에 팬들이 호응하기 때문일 겁니다. 단순히 디자인 좋은 아이웨어를 넘어 공간·음식·뷰티까지 아우르는 종합 라이프스타일을 아트와 테크로 풀어내는 ‘엣지’가 팬덤을 만들어내는 게 아닐까요.
젠틀몬스터는 당분간 계속 핫하고 힙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당연히 백화점에서도 좋은 자리에 위치할 가능성이 크고요. 2021년 12월 31일 기준 아이아이컴바인드 및 종속회사의 자산총액은 4827억원, 지난 한 해 매출 3220억원에 달합니다. 매출 1억원도 못 내던 브랜드가 10년 남짓만에 드라마틱하게 성장한 거죠.
젠틀몬스터가 만약 대기업의 신사업 공식에 따라 기획되었다면 공간 마케팅 프로젝트는 효율이라는 명분으로 좌절되었을 거예요. 사실 재무재표 숫자 너머의 이미지가 지금의 젠틀몬스터라는 브랜드를 만들어준 저력이라고 할 수 있는데 말이죠. 그런면에서 젠틀몬스터는 비용 효율에 고통 받는 수많은 마케팅 실무자들이 가장 부러워하는 브랜드일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가 젠틀몬스터가 보여준 것이 드라마틱한 성장 스토리라면, 이제는 K패션 브랜드에서 벗어나 글로벌 브랜드로 도약하는 포지셔닝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에요. 젠틀몬스터는 이미 중국과 미국 등 해외 7개국에 진출했고, 전체매출의 75%가 해외에서 나오고 있다고 합니다. 해외 진출 전략에서도 공간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젠틀몬스터는 하우스 도산을 시작으로 상하이에서 더 크고 새로운 하우스를 오픈했어요. 과연 젠틀몬스터는 계속 우리를 놀라게 할 수 있을까요? 이 레터 저장해두시고 나중에 다시 젠틀몬스터의 성장 스토리를 찾아보기로 해요. 다음에 또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