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이탁(FREITAG)의 브랜드 스토리
비크닉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가득 찬 위시리스트와 귀여운 월급봉투에 고통받는 마케터 한재동입니다. 오늘은 MZ세대들의 소비 특징인 ‘가치소비’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해요. 이왕이면 좀 더 ‘가치로운 소비’를 하겠다는 건데, 사실 떠오르는 브랜드는 하나뿐이었습니다. 오늘 이야기해 볼 브랜드는 가치소비에서 가장 유명한 스위스의 가방 브랜드 프라이탁(FREITAG)입니다.
홍대나 이태원, 성수 같이 핫한 거리에는 위 로고가 달린 투박한 메신저 백을 맨 힙스터 들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바로 프라이탁이라는 가방 브랜드인데요. 이 가방을 메고 있는 사람이라면 열이면 열, 브랜드에 관해서 물어봐 주길 바라고 있을 겁니다. 왜냐구요? 브랜드에 자랑하고 싶은 이야기가 숨겨져 있거든요. 먼저 그 이야기가 무엇인지부터 말씀드릴게요.
프라이탁은 대표적인 업사이클링 가방 브랜드입니다. 업사이클링(Upcycling)이란 버려지는 자원을 재활용해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 내는 것을 말해요. 스위스의 디자이너 프라이탁 형제는 비에 젖지 않는 자전거 가방을 찾다가 트럭의 방수천으로 직접 가방을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게 바로 프라이탁의 시작이었죠. 방수천으로 가방의 몸통을 만들고, 자동차 안전벨트와 자전거 고무 튜브 등을 조합했습니다. 1993년, 이렇게 만든 가방이 세계적인 관심을 받게 되면서 업사이클링 브랜드의 시초(중앙일보.2017.06)이자 ‘절대자’로 자리 잡게 되었어요.
프라이탁이 업사이클링 브랜드의 시조새인건 알겠는데, 왜 절대자냐구요?
재활용을 통해 제품을 만드는 브랜드는 세계적으로 많이 등장했습니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드릴게요. 폐현수막 등을 이용해서 잡화를 만드는 스페인의 누깍(Nukak), 재활용 원단 등을 이용한 핀란드의 패션 브랜드 글로베 호프(globe hope), 폐지를 이용해 다양한 굿즈를 만드는 미국의 홀스티(holstee)가 있어요. 한국에도 2012년 코오롱Fnc의 업사이클링 브랜드 래코드(RE;CODE)가 등장했어요. 그런데 제가 환경보호에 대해 관심이 부족했던 탓인지 위의 브랜드들은 이번에 공부하면서 처음 알게 됐습니다. 바꿔 말하면, 저처럼 친환경 브랜드 초보자일지라도 ‘업사이클링’ ‘환경보호’라고 했을 때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유일한 브랜드가 프라이탁뿐이라는 겁니다.
프라이탁은 어떻게 이런 명성을 쌓은 걸까요. 가장 주목해야할 부분은 자발적 홍보를 일으키는 팬덤입니다. 프라이탁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자 세계의 많은 예술가와 디자이너 같은 힙스터들이 팬이 되고, 그 팬들은 스스로 확성기가 되어 프라이탁을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브랜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바이블처럼 여기는 잡지 ‘매거진B’의 창간호 주제도 바로 프라이탁이었으니까요. (매거진B를 만든 조수용 카카오 전 대표 역시 틈만 나면 프라이탁을 사모았던 프라이탁 매니아였다고 합니다.)
저 같은 마케터들은 브랜드를 알리기 위해 이런 ‘바이럴 마케팅’을 가장 이상적인 것으로 보고 있는데요. 프라이탁의 경우는 누구 하나 시키지 않았는데도 자발적으로, 그것도 정말 열심히 자신이 프라이탁의 고객이고 팬임을 열심히 알리더라구요.
왜 그럴까? 고민하고 있을 때 이들의 욕구를 명확하게 설명해 준 ‘원의 독백’ 이라는 유튜브 채널에서 프라이탁에 대한 영상을 발견했어요. 영상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
거리에서 프라이탁을 맨 사람을 보면 속으로
‘오, 취향 좀 좋은데~’
…중략…
비즈니스 미팅에 나갔을 때 상대방이 프라이탁을 메고 나오면
이 사람의 실력에 대해 근거 없는 신뢰가 막 솟아
그게 제가 프라이탁을 사는 이유입니다.
프라이탁 메는 사람들처럼 되고 싶었거든요.
“
영상에서 임승원 씨는 본인이 프라이탁을 메고 다니는 이유를 감각적이면서도 위트있게 풀어냈어요. 영상을 보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건 얼마짜리 브랜드 필름일까?’ 였습니다. 그런데 광고가 아니었어요. 프라이탁의 팬으로서 제작한 브이로그였습니다. 프라이탁에 대한 매력을 광고보다 더 잘 보여주고 있지만요.
프라이탁은 매체 광고를 하지 않기로 유명한 브랜드입니다. 광고 없이도 팬덤을 만들어낸 그들의 저력이 무엇인지, 이제 그 수수께끼가 풀렸네요. 수많은 힙스터 팬덤이 대신 광고를 해주고 있으니까요. 돈으로 인플루언서를 고용해서 바이럴 마케팅을 진행하려면 수백에서 수천만 원이 드는데, 프라이탁은 이걸 공짜로 하고 있습니다.
그럼 왜 팬덤이 생겼는지를 알아볼까요. 핵심은 프라이탁이 가진 스토리텔링의 힘인데요, 여기서 ‘미닝아웃(Meaning-out)’에 대해 이야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미닝아웃은 'Meaning(신념)’과 'Coming out(알리다)'의 합성어로, 개인의 신념과 가치관이 소비를 통해 드러나는 것을 뜻해요. 요즘 MZ세대가 가치소비를 하고 싶어한다는 것은 이미 기사들을 통해서 많이 보셨죠? 이것이 프라이탁을 메면 바로 해결됩니다. 자신이 환경을 생각하는 소비를 하고 있다는 것을 굳이 자기 입으로 설명할 필요가 없거든요. 프라이탁 로고만 보여주면 모든 설명이 충족되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현재 유행하는 패션 트렌드에 프라이탁이 잘 어울려서 MZ세대들에게 더 인기를 얻는 면도 있어요. 와이드 팬츠에 크롭티로 대표되는 Y2K 패션과 아메리칸 빈티지가 유행이라 프라이탁의 빈티지한 맛이 잘 어울리죠. 미닝아웃을 하면서도 지금의 패션 트렌드에 너무 잘 맞는 거예요.
MZ세대가 프라이탁에 열광하는 이유는 또 있습니다. 업사이클링 제품이 가진 특성, 바로 ‘세상에 하나 뿐이라는’ 제품의 개별성이에요. 트럭 방수천을 재활용하기 때문에 모두 다른 원단을 쓰고 있어서 같은 모델이라도 각기 다른 패턴의 아이템이 나오게 돼요. 공식 홈페이지와 오프라인에 팔리는 가방들은 특정 모델의 사이즈별로 전시되는 게 아니라 각각의 개별 상품으로(ex. F40 JAMIE_03130) 판매됩니다. 원단 오염이 적거나 인기있는 컬러는 나오자마자 매진되고요.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더 마음에 드는 가방을 사기 위해 발품을 파는데, 이 과정 속에서 브랜드에 대한 애정은 점점 더 커지고 결국 프라이탁에 ‘입덕’하게 됩니다.
많은 사람이 프라이탁 유니버스의 문 앞까지 갔다가 가장 먼저 가격을 보고 돌아서게 됩니다. 가장 인기 있는 메신저백은 10만원 후반대에서 30만원 후반대 정도인데요. ‘재활용’이라는 말에 사실 저렴한 가격을 기대했다가 뒤통수를 맞는 기분인 분들도 계실겁니다.(제가 그랬습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비쌀 이유가 있습니다.
업사이클링 제품의 경우 일반 제품 대비 재료수급과 제작에 공이 많이 들어갑니다. 버려진 방수천과 자전거 타이어를 재활용하려면 꼼꼼하게 세척하고 분해하는 과정이 반드시 선행돼야 하죠. 이 과정을 모두 일일이 수작업으로 해야하니 인건비가 많이 듭니다. 게다가 프라이탁은 무려 세계에서 가장 인건비가 비싸기로 유명한 스위스에서 만드는 가방이었습니다.
프라이탁 유니버스의 두 번째 관문은 극악의 구매 난이도입니다. 오프라인에서 프라이탁을 구매하려면 국내에 4곳(서울 3곳, 제주 1곳)인 매장에 방문해야 하는데, 사람이 많아서 대기시간이 긴 편이에요. 마음에 드는 제품을 발견하리라는 보장도 없죠. 그렇다면 온라인 구매는 어떻게 하느냐. 영어로 된 공식 홈페이지나 29cm 등 커머스 플랫폼을 이용하는 방법이 있는데, 이것마저도 인기 있는 컬러와 패턴의 디자인들은 금방 매진돼 살 수가 없습니다.
운 좋게 마음에 드는 디자인을 발견해서 구매에 성공한다 해도 제품을 받고 실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막상 받아보니 온라인에서 봤던 컬러가 아니고, 생각(각오?)했던 것보다 제품이 너무 더러워서 실망했다는 반응이 많습니다. 그래서 그런 제품들이 중고 거래 시장으로 흘러 들어옵니다. 주요 중고 거래 플랫폼의 주요 키워드에 프라이탁이 올라갔다는 기사가 나올 정도로요.
이런 모든 관문을 넘은 분들이 바로 거리에서 프라이탁을 메고 다니는 분들입니다. 생각보다 장벽이 높죠? 그래서인지 프라이탁의 브랜드 팬덤은 자부심이 세기로 유명합니다. 누군가 프라이탁에 대해 비판하면 팬들이 수호 기사가 되어 출동합니다. 댓글로 브랜드의 입장을 항변해 주거나, 환불 방법등을 친절히 알려주기도 합니다. 프라이탁이 십만 홍보대군을 양성한 것도 아닐테니, 다른 브랜드의 홍보담당자들이 보면 얼마나 부러울까요.
위에 소개한 유튜버 ‘원의 독백’ 프라이탁 편 영상 뒷부분에 보면 프라이탁을 사는 자기 자신을 ‘비합리적’이라고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저는 이 부분이 가장 와닿았습니다. 몇십만 원 짜리 가방을 산다고 가정해보죠. 당연히 흠집은 없는지, 마감이 잘되어 있는지 꼼꼼히 따지게 될 겁니다. 그런데 프라이탁은 사용감이 있는 원단과 제품의 흠집이 전제된 제품이에요. 다른 브랜드의 제품이었다면 바로 반품을 했을 만한 하자예요.
프라이탁이 아니었다면 비합리적인 소비지만, 프라이탁이니까 합리적인 소비랄까요?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이냐고 하실분도 계시겠지만 매거진 B 프라이탁 편 마지막 장에 나오는 문장에 그 힌트가 있습니다.
“프라이탁은 다른 가방과 다르다(A bag and a Freitag, is clearly different.)”
프라이탁을 산다는 건 가방을 사는 게 아니라 브랜드의 이미지, 넓게는 문화를 사는 겁니다. 자신을 드러내 줄 수 있는 스토리를 몇십만 원 주고 사는 거지요. 트렌드를 앞서가던 힙스터들은 기꺼이 본인의 이미지를 위해 지갑을 열었지만, 이제는 많은 MZ세대들도 이런 소비행태를 보이고 있어요. 럭셔리 브랜드를 사려고 백화점 오픈런을 하는 것과 인기 있는 프라이탁 모델을 사기 위해 매장과 온라인몰에 발품을 파는 것은 묘하게 겹쳐 보입니다. 쓰레기로 만들어지는 가방이 최고급 럭셔리브랜드와 같은 ‘추앙’을 받고 있다니, 새삼 브랜드에 입혀진 스토리의 힘이 대단하게 느껴집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0960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