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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복치남편 Dec 29. 2023

돌 잔치

세상에는 두 엄마가 있다, 돌준맘과 돌끝맘

나은에게


아빠가 어렸을 적에는 학교에서 부모님 직업을 조사하는 악습이 있었단다.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지. 네가 커서는 안 그랬으면 좋겠지만 만약 누군가 네게 아빠의 직업을 묻는다면 이렇게 답하면 된다.


“우리 아빠는 이벤트 쟁이래요”


아마 뭐 이런 대답이 있냐는 표정이 예상되지만, 그것이 팩트란다. 아빠는 십여 년간 이벤트를 돈 받고 만들어주었단다. 주로 월급을 받으며 회사를 위한 이벤트를 해주었지만, 너희 엄마를 위한 인생 최고의 이벤트도 해보았지. 바로 프러포즈와 결혼.


남들 앞에서 오글거리는 걸 싫어하는 엄마를 위해 아빠는 열심히 프러포즈를 준비했단다. 남들 다하는 식의 프러포즈는 이벤트 쟁이로서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기 때문에 촛불로 하트 만들고 무릎 꿇고 반지를 끼워주는 식은 아니었지. 아빠는 책을 만들었어, 하루에 한 번씩 엄마에게 사랑의 편지를 100일간 손으로 썼지. 캘리그라피와 그림도 그려보았고, 엄마는 만족했어!(그래 보였어 ^^)


이렇게 한 번 하고 나니, 다음은 더 잘해야겠다는 욕심이 생기더라. 그리고 아빠의 이벤트 재능을 맘껏 뽐낼 기회가 돌아왔지, 바로 너의 돌잔치야. 아 ‘돌’ 이라는 건 어린아이의 나이를 뜻하는 우리말이야. 그래서 돌잔치는 너의 첫 번째 생일잔치를 말하는 거란다. 


세상의 모든 육아 지식이 있는 맘카페에는 이런 격언이 있단다.

‘세상에는 두 엄마가 있다. 바로 돌준맘과 돌끝맘’


여기서 돌준맘은 돌잔치 준비하는 엄마고 돌끝맘은 돌잔치 끝낸 엄마래. 사람들 참 말 재미있게 한다 그치? 그런데 그만큼 돌잔치를 준비하는 것이 엄마들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말해주는 것이기도 해. 그래서 이 아빠가 나서볼까 했는데 말이야……


문제가 생겼어, 그것도 전 지구적인 문제였지. 코로나바이러스가 퍼져서 우리는 화끈한 잔치를 열 수가 없었단다. 그러나 여기서 포기하면 스스로를 이벤트 쟁이라고 할 수 없겠지. 아빠는 언제나 답을 찾는단다, 늘 그랬듯이.


그리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말 상황 적응이 빠르고, 그걸 사업으로 잘 이용할 줄 아는 민족이지. 이미 집에서 돌잔치를 할 수 있는 다양한 용품들을 빌려주고 있더라고. 그래서 우리는 너의 돌잔치를 집에서 하기로 결심했어. 돌잔치에서 네가 입을 다양한 드레스와 집을 꾸밀 것들을 빌렸단다. 그리고 잔치하면 음식이지. 우리나라 전통에 따라 수수팥떡과 백설기, 그리고 네가 제일 좋아하는 딸기(가장 맛있다는 딸기 중의 딸기, 킹스베리로!)를 준비했어.


돌잔치 전날 밤, 엄마 아빠는 집에서 가장 깔끔한 벽에 식탁을 놓고, 흰 식탁보와 황금 촛대 등 다양한 액세서리를 밤새 설치했지. 이쁜 사진을 위해서 말이야. 그리고 너의 첫 번째 생일이 밝았어. 햇살이 무척 환한 아침이었단다.


그날 네가 입어야 할 드레스는 3개였고, 진행해야 할 식순도 많았지. 무엇보다 옷을 갈아입을 때마다 최대한 이쁜 사진을 남기기 위해 엄청난 양의 사진을 찍었어. 너의 웃는 모습을 위해 비장의 무기인 비눗방울도 준비했고 말이야.


그러나 너는 점점 지쳐갔고, 상에 올려진 딸기와 떡에 자꾸 시선을 뺏기더구나. 요 사진만 찍으면 바로 먹자고 해도 네가 알아들을리 없었지. 비눗방울도 소용이 없었어. 그래서 아빠는 결단을 내리고 바로 마지막 식순으로 넘어가기로 했어. 바로 돌잔치의 하이라이트 ‘돌잡이’


사실 첫 생일잔치라고 하지만 사진만 많이 찍고 별다른 건 없어, 바로 이 돌잡이를 위해 달려온 것이라고 보면 된단다. 네가 무엇을 잡는지는 앞으로의 너의 일생에 전혀 영향을 끼치지 않겠지만, 뭔가 일생에 한 번이라는 희소성이 재미있지 않니?


참고로 아빠는 연필을 잡았고 엄마는 아마도 실을 잡았단다. 너의 돌잡이 상에는 대부분 집에서 그렇듯 연필과 실, 장난감 청진기와 마이크 그리고 돈을 올렸단다. 네가 잡은 것은 바로 마이크! '그럼 나 연예인이 되는 건가?' 라고 기대한다면 미안하지만, 그 마이크로 말할 것 같으면 뽀로로 마이크로 휘황찬란한 디자인을 자랑해서 아기가 보고는 안 잡을 수가 없는 존재였다. 아빠의 실수였지, 다른 것과 좀 화려함의 레벨을 맞췄어야 했는데 말이야.


너무 화려한 마이크를 준비한 내 잘못이다. 그림 나은 엄마


너는 마이크를 하늘 높이 들며 이 소박하고도 힘겨웠던 돌잔치의 끝을 알렸어. 그리고 너는 이제 평생 노래와 춤을 출 때마다 내게 이런 말을 듣게 될 것이다.


“우리 딸이 역시 돌잡이 때 마이크를 들더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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