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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복치남편 Feb 23. 2019

혼자가는 일본, 사카사카오사카

일본 여행기라는 변명 하에 일본식 문장이 잔뜩 섞여있습니다.

Day1


‘여행길에서 모든 일이 잘 풀리면, 그것은 여행이 아니다.’

라는 하루키 말처럼. 왜 항상 캐리어를 끌고 나올 때면 무엇인가 놓고 온 기분일까. 그 찜찜함은 사실 소중한 사람들을 잠시 서울에 두고 떠나는 아쉬움이려니 했다. 그런데 오늘은! 오사카 여행책을 두고 와버렸다. 기껏 어제 새벽잠 참아가며 읽고 체크해 두었더니, 그대로 몸만 빠져 나오고 말았다. 망했네.


그래도 좋다. 하루키 말처럼 원래 여행이란 완벽할 수 없으니까. 더구나 혼자 가는 여행이니, 차라리 천천히 둘러보며 다닐 수 있는 기회다. 그래, 이 정도면 충분하지. 지금 나의 삶에 고맙습니다.


‘여행은 살아보는 것.’ 이라는 문구가 요즘 트렌드를 잘 담았다고 생각했다. 북적대던 관광객들도 오사카의 주택가로 들어서니 길이 어긋나 조용해졌다. 홀로 남은 느낌, 상당히 유쾌하다. 익숙하지 않은 것에서 오는 당황스러움(에어비앤비로 예야간 가정집 문을 못 열었던 경우라던지)이 있지만, 남의 집에서 지낸다는 느낌을 가지는 것이 설렌다. 남의 떡이 더 크다는 속담도 이런 느낌에서 만든 말 아닐까?


Day2

점심을 찾아 이리저리 방황하던 중, 그래! 역시 백화점 식당은 실패하지 않겠지. 라고 결심, 다카시마야 식당가로 출발했다. 이게 왠걸 여기도 줄을 서야 하잖아. 예전 소비에트연방(소련입니다) 사람들은 인생의 삼분의 일을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으로 산다고 하더니 일본사람들도?


이리저리 사람 없는 곳을 찾다가 들어간 스시집. 메뉴를 보니 아뿔사, 비싼곳이어서 사람이 적었던 것이구나. 어쩐지 손님들이 나이대가 지긋하신 어르신이 많다 했더니 큰일이다. 가장 저렴한 메뉴를 시키고 짐짓 소식하는 척을 한다. 사실 양의 반의 반도 차지 않았다. 돈을 벌지만 아직은 여행이 풍요롭지 않다. 내 인생의 마지막 여행까지 여행이란 것이 풍요로울 수 있을까? 아마 아니지 않을는지, 늘 부족한 것이 나의 인생이고, 여행도 나의 인생의 일부니까.


비싼 값을 하는 구나. 하면서 정신 없이 먹는 도중 놀라운 장면을 목격했다. 중년 노인이(엄청 비싼 메뉴를 드시던) 계산을 하고 나서, 자신이 앉았던 의자가 미처 정리되지 못한 것을 발견하고는 노구를 이끌고 낑낑대며 의자의 열을 맞추었다.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누가 본다고 해도 하기 힘든 행동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하는 모습에 심히 놀랬다. 무엇 때문에 저리도 스스로에 엄격할까?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단지 개개인 사람의 차이일수도.


오사카성을 보고 대부분 탄성을 내뱉을 것이다. 나의 경우는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거 만들기 위해 생고생을 했을까?’ 라고 생각하는 경우에 해당한다. 내가 피지배자 DNA가 있어서 그런 걱정이 드는 것인지 모르겠다만, 이것(또는 이런 것들) 만들고 싶다는 놈(훅은 위인)들은 사이코 패스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말 한마디에 올라갈 저런 성 때문에 얼마나 많은 땀과 피가 동원 될지 모르나? 아니면 ‘어차피 내가 할 일은 아니니까’라는 마음 때문인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단 한장의 벽돌이라도 옮겨 보았다면, 오사카성의 천수각은 5층이 아니라 1층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냥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뼛속까지 말단 근성이 있는 것인지도 모르지.


 Day3

나는 쇼핑을 좋아한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좋아하게 되어 버렸다. 백화점에서 일하며 쇼핑정보에 뒤지고 싶지 않았고(정확하게 말하자면 적어도 브랜드 이름은 정확히 읽기 위해) 사람들이 무엇을 사고 파는지, 브랜드에 어떤 특성이 있는지 잘 알고 싶어 했었다. ‘사실 그래야 백화점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얕보이지 않는다.’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아무튼 이런 면에서 오사카는 매우 볼게 많은 곳이다. 어차피 교토의 호텔체크인이 오후 3시이니 느즈막히 가는 것이 더 시간적으로 이득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낑낑대며 거대한 캐리어가방과 마치 군대시절 완전군장 같은 배낭을 지고 간신히 교토에 도착하니 4시.


교토열차역과 가까운 숙소 위치에 럭키! 짐을 풀고 슬슬 스케줄을 짜볼까 하며 지도와 관광지를 살펴보니 이게 왠걸! 유명한 유적지는 4시에 대부분 마감이 아닌가. 그나마 청수사가 6시 마감이네 하고 가는 길을 찾아 보니 버스로 30분 걸어서 45분. 돈주고 버스타봐야 15분 차이고 초행길이라 제대로 찾을 자신 없어 후다닥 숙소를 뛰어나왔다. 문닫기 1시간 전 출발. 걷는 내내 얼마나 후회했던가. 교토에 좀 일찍 올 것을.


혼자 하는 여행 남 눈치 보지 말고 천천히 여유롭게 하자, 허세로운 표현을 빌리자면 ‘빈칸 가득한 여행’을 해보자며 왔더니, 결국 관광명소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꽉꽉 눌러담고 말았네 마치 머슴밥처럼! 그러니까 내가 이런 머슴 같은 팔자를 사고 있는 건가. 끊이지 않은 자책과 함께 한여름의 교토의 거리를 지나 청수사 도착. 마감시간 15분전, 세이프다. 청수사를 한바퀴 돌고 나오면서 문득 드는 생각 ‘그래도 결국 하나 봤네, 미션컴플리트.’


후회하며 머슴 팔자니 어쩌구 해도 결국 나는 눈앞의 목표를 향해 뛰며 사는 경주마 같은 본성을 가지고 있나 보다. 청수사를 나오는 길에 오던 길에 서두르면서 모두 스쳐 보내버린 교토의 풍경이 보인다. 단기목표를 달성하니 그제서야 보이는 건지, 물론 아까와는 달리 모두 문닫아버린 쓸쓸한 풍경이지만…


Day4

교토의 마지막은 비가 내렸다. 아무래도 우산 들기가 귀찮았던 나는 적잖이 실망했다. 한국에 있는 지인은 비 오는 거리의 매력에 이 참에 한번 빠져 보지 않겠느냐며 위로하지만, 축축히 젖을 신발에 걱정이 앞선다. 적어도 이때까지는.


“오늘은 정말 딱 한 곳만 가야지” 다짐하듯 읊조리며 여유롭게 조식을 먹으러 1층 레스토랑으로 내려갔다. ‘일본식 조식’이라는 단어가 이국적이다. 각 국가별 스타일의 조식이 있지만 사실 조식이라면 모두 간편하고 덜 부담스러운 것, 즉 별로 차린 것 없는 아침상을 상상하기 마련이다. 모든 음식에서부터 사람까지 담백하기로 유명한 일본은 더더욱 기대하지 않았다.


‘호텔의 조식에는 나카무라씨 가게의 두부가 제공되고 있습니다. 시판되지 않는 두부이니, 그 특별한 맛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솔직히 나는 두부 맛을 모른다. 술 맛 정도 구별 할 수 있는 정도랄까? 하지만 저런 멘트를 듣고 두부를 먹으니 좋더라. 매우 좋더라, 이번 여행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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