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참으로 기승이다. 노인들이 많이 돌아다니는 복지관인지라, 이미 대외적으론 휴관을 해놨다. 노인들을 굶길 순 없고 할 일도 많으니 복지관을 돌리기 위해 직원들과 사회복무요원들은 정상 출근을 한다. 다만 봉사자들이 더 이상 오질 않아 할 일이 늘었다. 덕분에 이데 곳 소집해제를 하는 김형의 입에서 투정이 끊이질 않았다.
"말년에 이게 무슨 일이람..."
마스크를 쓰고 한참 일하다 마스크를 벗으면 마스크 안쪽 표면에 이슬이 맽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내가 만들어넨 생채 이슬이다. 이 이슬이란 놈을 잘 털어네고 말려두지 않으면 곳 말라붙어 악취를 풍긴다. 출근할 때 한번, 일할 때 한번, 퇴근할 때 한번 총 3번은 쓸 수 있는데 어쩌다가 관리를 소홀이 하면 귀중한 마스크를 버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복지관엔 후원으로 들어온 마스크가 쌓여 있어서 몇 개 슥슥 집어가면 그만이다. 하지만 그러면 뭔가 횡령을 하는 기분이 들어 양심에 찔리니 소소하게 투덜거려본다.
오전에는 식사지원을 나가야 해서 마스크에 이슬지는지도 모르게 바쁜데 오후엔 찾아오는 민원인이 없으니 한가하다. 한가하면 할 일은 많다. 책을 읽어도 되고 핸드폰을 만지작거려도 되고, 특히 내 자리는 컴퓨터가 있어서 이것 저건 할 게 많다. 하지만 차려주면 못 먹는다고 이렇게 시간이 잔뜩 주어지면 왠지 할 게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염 씨는 공부하느라 바쁜데, 공부는 하기 싫었다. 즈래 앉아 있으니 몸이 무거워졌다.
결국 나는 참을 수 없는 몽롱함을 이끌고 바람을 쐬러 밖으로 나섰다. 날씨가 많이 풀렸다. 그야말로 선선하다. 춥다는 느낌도 없고 쾌적하기만 하다. 가지치기를 당해 훌렁해 보였던 가로수들도 이제 슬슬 잔가지를 치기 시작했다. 지난해 어째서인가 가로수 가지를 거의 한 동우리만 남기고 과감하게 자르던 것 아닌가. 그때는 도대체 가로수를 죽이려고 저러는지, 하얗게 잘려나간 두껍고 둥근 흉터를 볼 때마다 마음이 아팠는데 내가 나무의 생명력을 너무 앝봤는지 때가 되니 다들 알아서 가지를 펴네고 잎사귀를 피워네었다. 파르르 바람이 불어왔다. 자동차 배기구에서 찐한 매연이 흘러들어왔으나 이제는 영 정겹기만 하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어린이가 느끼는 고향의 향이랄까.
생각 이상으로 잘랐지만, 잘만 살아난다.
그렇게 복지관 둘래를 휘적휘적 걷는다. 딱히 허락을 받지 않고 나선 길이라 그런지 그 기분이 각별했다. 어쩐지 몰래 한다는 행위가 성(性)적인 감성을 간질였다. 관음적인 그런 어떠한, 들키면 안 되는 그런 행위. 사실 화장실도 그냥 왔다 갔다 하는 마당에 잠 깨려고 슬슬 걷는 게 안될 일도 아니지만, 그냥 그렇게 생각하는 게 기분이 좋았다. 스스로 만들어넨 일탈이랄까.
짧은 산책이 준 쾌감은 참으로 은근했다. 이미 닳고 닳아서 무뎌진 감각들은 날 혼란스럽게만 하기 때문에, 짧게 눈을 감았다 뜨는 찰나의 시간은 참으로 소중하다. 이제는 어디를 봐도 기쁜 소식이 없다. 비극이 모든 것을 잡아먹었다. 그 분위기가 슬프니 어떤 감정이 들어도 꿈꿈 하게 음지에 머무를 뿐이었다. 니 탓이니 내 탓이니 말도 많고 그 와중에 사리사욕을 챙기려는 이들은 내심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
맥아리가 없는 정보는 위험하지만 힘이 있는 정보는 더 위험하다. 글을 읽지 않으면 불안하지만 글을 읽으면 더 불안해진다. 이는 요즘에 쓰인 글들이 전부 색깔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을 안전하게 하는 정보, 편하게 하는 정보는 오히려 짧고 담담하다. 색깔이 없기 때문이다. 색으로서 외부를 보면 왜곡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