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무요원 수필 (0)

감사함, 억울함, 허탈함

by 연석

봄바람이 세록세록 분다. 점심을 든든히 먹고 앉아 있자니 잠이 슬슬 온다. 그러나 졸 수는 없지. 텀블러에 냉수를 따르러 정수기에 간다. 요 저번 3달 전쯤인가, 복지관 정수기를 바꿔서 물이 훨씬 차다. 몇 모금 먼저 마시고 다시 꽉 채워서 텀블러 뚜껑을 닫았다. 다시 자리로 돌아와 핸드폰이나 만지작거리고, 책이나 읽고 물이나 홀짝인다. 실로 여유롭다.


그런데 친구에게 카톡이 왔다. 나보다 1년 늦게 사회복무요원이 된 친구다. 그 1년 이란 것이 말이 1년이지 사실상 2년이다. 나보다 1년 일찍 사회복무요원 신청을 넣느라 1년 먼저 휴학을 해 놓고서는 그렇게 1년, 2년. 2년 동안 그 친구는 사회복무요원에 발이 매여 복학도 못하고 편의점 알바나 하면서 살았다. 그리고서도 배정된 곳이 힘들기로 유명한 지하철이라, 운도 지지리도 없는 녀석이었다.


무슨 내용으로 카톡이 왔는가 보니, 누가 전철 안에서 구토를 해 놨다는 내용이었다. 필시 취객이었을 것이다. 이 녀석이 비슷한 얘기를 자주 들려줘서 이잰 대충 머릿속에 그려진다.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이런 '비상시'에 어떻게 하는지 한번쯤은 궁금해했을 것이다. 우선, 신고가 접수되면 지하철 사회복무요원들이 둘이 내려간다. 그리고 무전을 친다.

'역장님, 000칸에 오물이 있어 청소해야 하니 대기해주십시오.'
가끔씩 일어나는 전철 지연은 큰 사고가 아니면 보통 이런 소소한 일들이 모여 일어나는 것이었던 것이다. 전철이 멈춰 대기하면 사회복무요원들은 들어가 구토를 치운다. 최대한 신속하게. 그리고 다시 무전을 친다.
'역장님 청소 완료했습니다. 출발해주십시오.'
내 친구는 그렇게 하나의 업무를 마친다. 그야말로 요원이다. 그 요원은 무엇이 그리 억울한지 나에게 카톡을 날리며 하소연을 한다.

애초부터 입담이 좋은 친구였는데, 지하철에서 몇 달 일을 하고 나니 만날 때마다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화수분처럼 쏟아져 내려왔다. 진상이 들어와 쌍욕 들어야 했다는 것은 이제 예삿일이고, 사람이 쓰러져 피가 철철 나는 와중에 역무실 직원과 돌아가며 CPR(응급 심폐소생술)을 했어야 했다는 이야기나 야간근무 시간표가 꼬여서 3일 연속으로 지하철에 지내야 했다는 이야기 등등, 하나하나 박진감 넘치고 흥미진진한 내용들이다.


그러고 보면 나는 참 감사할 일이다. 이렇게 여유 있는 기관에 배정됐으니 감사하고, 기관에 좋은 사람들이 있으니 감사하다. 또 현역이 아닌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또 일반 직원들은 어디 없이 야근하고 일하는데 사회복무요원들은 엔간하면 칼퇴근을 하니 감사하다. 내가 하는 일이라야 그래 봤자 몸 쓰는 '쉬운'일 들 아니던가? 역시나 감사하다. 월급에 교통비도 주고 점심 식비도 나온다. 감사하다. 월급을 따져보면 전부 국민의 세금에서 나오는 것인데 적게 일하고서도 이만치 받으니 또 감사하다. 마지막 한 가지가 사회복무요원 대다수가 20대 청춘들인데 근무 기관에 일하면서 경험하는 것들이 그야말로 어디 가서 얻지 못할 귀한 사회경험이라 말하겠다. 그러하니 또 감사하고 감사해야겠다.


그런 감사가 끝나면 우선은 억울하다. 전설에 따르면 사회복무요원들 중 시청이나 행정 쪽엔 출근했다 퇴근하는 것 외에 업무가 없다는 사회복무요원도 있다고 한다. 그들과 비교했을 때 우리 처지가 억울하다. 그리고 우리들 월급이 50만 원 남짓 하니, 최저임금과 비교했을 때 모자라는 것이 억울하다. 그러면서도 겸직은 불허하니 당장 무엇 없이 먹고 자는데 가정에 보탬이 안 됨이 억울하다. 또 대학교 잘 다니다가 2년 국방에 의무에 바치는 것도 모자라 신청 대기하느라 1년 하고도 2년씩 공매로 국가에 넘겨진 그 청춘이 억울하다. 거기에 애초에 사회복무요원들이란 몸이 안 좋은 사람들이다. 현역으로 가면 일해주는 돈값보다 국군 수도병원 약값이 더 나갈 사람들인데, 그런 사람들을 굳이 모아 궂은일을 시키니 그것 또한 억울하고 억울하다.


억울함이 끝나면 허탈하다. 현역이랑 비교당하니 어디 가서 이런 소리 했다간 눈총 받을 것이 뻔하니 그것이 허탈하고, 같은 학년 동기들은 곳 졸업하고 이르면 취업까지 했는데 복학하여 다시 공부를 하려니 허탈하다. 앞으로 나처럼 사회복무요원이 될 사람들이 많으니 또 허탈하고 사회복무요원 들네 이미지가 공노비 아니면 꿀 빠는 사람이니 그것이 허탈하다. 또한 이런 잡 일꾼들 없이 안 돌아가는 기관이 지천에 널려 있으니 허탈하며 아무리 이런 말을 해 봤자 다시 나일이면 출근해야 하니 허탈하고 허탈하다.


사회복무요원이라야 이런 것이다. 더 이상 할 말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