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할머니
복지관에 온 지 얼마 안 된 일이다. 한 한 달은 됐을까, 멀뚱히 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S주임님이 업무 요청을 했다. 잠깐 단순 상식! 해줘요. 하고 부르는 것은 시키는 것이고, 해주세요. 하는 것은 업무 요청이다. 시키는 것은 나쁘고, 업무 요청은 좋다. 물론 안 시키는 것이 최고로 좋다. 결국 아 다르고 어 다른 문제이다. S주임님이란 사람은 좋은 사람이어서 업무 요청을 하지, 일을 시킨 적이 없었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업무 요청을 받아 내려가 보니 벌써 사회복무요원 선임 둘이 있었다. S주임님과 요원 셋은 경비실 옆 작은 창고로 향했다. 주임님이 말하길 옮길 물건이 좀 있다고 했다. 아직 가을이 다 차지 않았는데 바람이 꽤나 쌀쌀했다. 구름이 하늘을 가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창고 안 묵은 공기가 차갑게 식어 있었다. 곳 우리는 지시에 따라 접이식 책상 넷과 8미터 천막 하나를 을 꺼넷다.
책상이야 손잡이가 있어서 한 손에 하나씩 들면 부피도 그렇고 무게도 딱 맞았지만 천막은 들기도 힘들고 무게도 나가서 두세 명이 달라붙어 낑낑거려야 했다. 옮기고 나서도 천막이 문제다. 글로 표현하자면 이러하다. 우선 사람이 넷 필요하다 빼빼로같이 새워져 있는 천막에 발들을 한 명씩 잡는다. 그리고 발마다 잠가진 높이 고정대(나는 그렇게 부른다.)를 푼다. 높이 고정대를 풀 때 조심해야 하는데, 안 그러면 갑자기 늘어난 발 사이에 손이 찡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상태에서 같이 천막을 위로 올리고, 원하는 높이에 다시 높이 고정대를 잠그면 끝이다. 언젠가 전문 업자분이 와서 천막을 친 적 있는데 그 업자분은 가히 천막 치기의 프로라고 불릴만한 것이 혼자서 8미터 천막을 가지고 휘릭 휘릭 탁탁하더니 다 펼치는 것 아닌가! 4명이 붙잡았을 때 보다 더 빨리 펼치는 그 모습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않을 수 없었다. 효율성이 극한에 달하면 예술의 경지에 다다르는 것일까?
천막을 다 치고 책상도 펼쳐놓으니 S주임님이 따로 가져온 잡기들을 꺼냈다. 버너와 프라이팬, 신문지, 갖은 일회용기들 그리고 전 반죽과 간장이었다. 설명을 듣자 하니 복지관에서 이벤트처럼 좋은 날을 잡아다 바깥에서 전 나눔을 한다고 했다. 날이 이렇게 우중충한데 날이 좋다니, 싶었지만 결국 전 나눠주는 날이 좋은 날 아니겠는가.
중요한 것은 천막에 사회복무요원 한 명쯤은 도와주러 나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총시간은 3시간, 나를 비롯한 세명의 사회복무요원들은 수고를 덜기 위해 각각 한 시간마다 돌아가며 업무를 돕기로 결정했다. 나는 두 번째 순서였다. 그래서 나는 사무실로 돌아와 적당히 시간을 보네다가 천막으로 향했다. 그런데 가던 도중 나는 주차장 아스팔트를 기어가는 할 할머니를 발견했다. 그 백발은 귀 까지 내려왔는데 떡지고 헝클어져 추례해보였다. 살짝 헐렁한 겉옷은 무리한 적색 원색으로 때가 타 있었다. 바지며 신발이며 그리 처지가 다르지 않았다. 아스팔트를 짚은 손은 그 모습이 '구겨졌다'는 인상을 주었다. 그런 할머니가 뜬금없이 주차장에 엎드려 손을 더듬더듬 짚어가며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말을 걸어보았으나 말이 잘 통하지 않았고 일으켜 세워 보려니 몸이 제 말을 듣지 않으시는 듯했다.
당시 나는 사회복무요원으로서 복지관에 온 지 체 한 달도 안 된 신입이었다. 지금이야 온갖 사건 사고로 무뎌져서 어지간한 일에는 그려려니 하겠다만 그때는 당혹스러움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나는 당장 복지관 휠체어를 가져다가 앉히고 집에 데려다 드리려고 했는데 그 할머니 정신이 온전치 못한 건지 영 엉뚱한 동호수만 가르쳐 주셨고 나는 몇 번 낯선 사람네 집을 두들겼다가 머쓱하게 돌아서야 했다. 그 와중에 할머니는 뭐를 그리 웅얼웅얼 말씀하셨는데, 뭐라고 말했는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렇게 돌아다니는데 저기 천막서 S주임님과 파전을 드시던 주민들이 나를 보고 손짓했다. 허둥지둥 그리로 가니 거기 반장쯤 되는 한 아저씨가 다가와 휠체어를 넘겨잡곤 이렇게 말했다.
"이제 네 알아 할 테니 신경 끄소"
번역해보자면 ‘수고 많았소, 이제 이 할머니는 내가 잘 대려다 드릴 태니 학생은 쉬시오’라고 하셨다. 친절함이 과하면 담담해져서 말로는 잘 안 나오는 것일까? 얼마 지나지 않아 반장 아저씨는 할머니를 어디론가(아마 그 할머니네 집)으로 가셨다. 나는 그제야 한숨을 푹 내쉬면서 시름을 덜 수 있었다.
그렇게 이 해프닝은 끝이 났다. 사회복무요원으로서 처음 겪은 벙벙한 일이었다. 그때는 내가 아직 덜 사회복무요원이 되어서 이런 일을 겪었었던 것 같다. 내가 기어가는 할머니를 보고 몸을 움직인 것은 인간 아무게의 마음이 동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복무요원 아무개는 그 할머니를 쳐다보고 지나갔을 것이다. 그것은 당장 해결될 일도 아니거니와 복지사분에게 말하는 것이 훨씬 일처리가 빠르다는 것을 아는, 마음이 쉽게 동하지 않는 사회복무요원 아무개이기 때문이다. 인간성과 효율성은 같이 있지 못할까. 내게 일을 시키는 것과 요청을 하는 것은 결국 한 끝 차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