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이 지끈지끈 아팠다. 약국에서 무릎 보호대를 사서 착용하니 좀 나았지만 여전했다. 왼쪽보단 오른쪽 무릎이 정도가 심했다. 언제 깨질지 모르는 유리를 무릎에 박고 있는 기분이었다. 꽃샘추위가 꽤나 매서웠으나 별 생각이 들지 않았다. 마스크 틈새로 나온 입김에 안경이 뿌옇게 서리던 말던, 나의 신경은 온통 걸음걸이에만 집중됐다. 어떻게 하면 무릎에 무리가 안 가도록 걸을 수 있을까? 허벅지나 둔근이나 이리저리 힘을 줘 가며 걸어간 끝에, 내가 선택한 보행 자세는 마인크래프트의 스티브가 걷는 것처럼 무릎을 쭉 펴서 다리 전체를 휘휘 뻣어 가며 걷는 것이었다. 비록 둔근 쪽에 힘이 들어갔지만 살짝 피곤한 게 시큰시큰한 무릎 통증보단 나았다.
요즈음 출근길은 사뭇 다르다.
이게 다 우한 코로나 때문이다. 놀라운 사실을 하나 발견했다. 코로나가 퍼지던 말던 그러든 말든 어르신들은 밥을 먹고살아야 한다는 것. 나는 문 닫고 있으면 될 줄 알았는데 말입니다. 복지관에서 어르신들을 굶겨 죽일 순 없지 않은가? 밥을 해 드려야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분들을 계속 경로식당 모이게 둘 순 없으니, 결국 모든 식사를 집집마다 배달해 드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배달 나갈 일은 생겼는데, 또 코로나 때문에 자원봉사자들이 더 이상 오질 않아 일손은 더 줄어들었으니 참으로 고약한 상황이다. 배달까진 사회복무요원들이 나서서 도와 드릴 수 있으니 괜찮았다. 그러나 자원봉사자분들은 보통 배달만 나가는 것이 아니라 재료 손질이나 식사 포장 등등 생각보다 많은 일을 해 주시고 있었기 때문에 사회복무요원 만으론 모자랏다. 그래서 적어도 일주일에 두 번은 사회복지사 선생님까지 식당에 내려와 일을 도와주어야 했다. 쨋든, 이런저런 이유로 거의 매일 배달을 나가다 보니 어느 날부터 무릎이 아프기 시작한 것이다. 맨 앉아만 있었던 녀석이 갑자기 왓다갓다 하니 무릎이 놀란 모양이다.
아픈데도 불구하고 병가를 쓰지 않는 것은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아픈 게 아프다 하여도 어쩌다 욱신하면 그때뿐이라 평소엔 방심하게 만드는 게 첫째이고, 무릎보호대가 나름 짱짱하여 끼고 있으면 무릎 연골 언저리가 시원해지는 게 점점 나아진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 둘째였다. 또한 이건 내가 아파서 생긴 지병이 아니라 보단 갑자기 일이 들어와 생긴 골병이니 일이 많을 땐 뭘 해 봤자 지지부진할 것이며, 언젠가 코로나가 종식되고 일이 줄면 자연히 나을 것 이란 생각이 셋째였다.
그래서 오늘도 어김없이 나는 배달 카트를 끌고 아파트 단지 속으로 향한다. 동과 동, 호와 호 사이를 거닐며 무아지경의 경지에 빠진다. 배달할 땐 잡생각이 들지 않는다. 배달 갈 동호수 외우느라 정신 그럴 여유도 없고, 잠깐 엘리베이터에서 여유가 생겨도 '빨리 끝내고 쉬자'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똑똑똑, 복지관입니다. 식사배달 왔습니다. 똑똑똑, 띵동, 띵동, 계세요? 문에 걸어두겠습니다. 606호 문 체크. 똑똑똑, 식사배달 왔습니다. 예, 맛있게 드세요. 614호 체크... 아파트 아스팔트 벽과 바닥은 공기를 차게 만들고, 주민들이 복도에 내어 둔 잡기에선 사람 사는 냄새가 난다. 무심하게 지나치는 회색 문짝들 안에서 어르신들이 나와 식사를 받으러 나오신다. 다리를 못 쓰는 어르신은 '거기 놔둬요'소리치시고, 요양보호사가 있는 어르신은 요양보호사를 보네 받아 온다.
그렇게 한참을 오고 가고 오르고 내리던 때에, 충격적인 일이 생겼다. 층계를 오르내리던 중 그만 무릎을 난간에 부딪히고 만 것이다. 나는 그만 들고 있던 식사를 떨어뜨릴 뻔했다. 대신 식사를 잠시 내려놓고 조심스럽게 무릎을 움켜쥐었다. 일찍 끝넨단 생각에 그만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하고 말았다. 저주파 마사지기가 연골 속에서 꿍꿍 울리는 느낌이었다. 층계 창 사이로 따스하면서도 시원한 봄바람이, 야속하게 훙 불어 들었다. 내가 잊고 있었던 만치 분의 통증이 밀려왔다가 다시 쓸려내려 갔다. 바지 위로 무릎 보호대를 잡아 그 위치를 고쳐 올렸다. 다시 일어서서 잠시 다리를 폈다. 보호대 덕분에 화끈하던 무릎이 금방 시원하게 식었다.
'...'
통증이 가시고 정신이 들자 소리 없는 욕지거리가 입에서 튀어나왔다. 앝았지만 진심이었다. 그러나 내 발치엔 어르신들의 식사가 봄바람에 식어가고 있었다. 나는 봉지를 집어 들고 한 발 한 발 움직였다. 여전히 불안하지만 더 이상의 통증은 없었다. 다행이었다. 다음은 407동. 407동.
무사히 배달을 마치고 식당에 돌아가자 영양사님과 조리사님들이 점심으로 라면을 끓이고 있었다. 열심히 일한 대가였다. 반찬으로 장조림과 배추김치가 준비되어 있었다. 다른 사회복무요원들이 배달을 다 끝내기까지 나는 텅 빈 식당 안에 누워 석면천장을 바라보았다. 늘 보기에 익숙하지만 정면으로 보니 낯설었다. 통증은 강렬한 만큼 쉽게 잊힌다.
충격이 오는 순간 알아차린다.
그 날, 사람 한 명이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 사람, 어제 식사배달을 직접 받았다는 기록이 있었다. 어쩌면 내가 만났을지도 모르는 사람이 죽은 것이다. 그래서 사회복지사 분 한 명이 혹시 기억이 나느냐고 물었다. 당연히 아무도 기억하지 못했다. 이곳에는 내일 죽어도 이상할 것 없는 사람들이 즐비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죽음을 잊고 살아간다. 그런 순간, 죽음은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충격은 온갖 사물을 어색하게 바꾼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시간은 흐른다. 혹시 코로나로 인한 사망이 아닐지까 하여 아직 시체를 치우지 않았다고 한다. 수속이 끝나면 검사가 이뤄질 것이다. 덕분에 우리는 마음 놓고 잊을 수 있다. 나 대신 기록이 기억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덕분에 나는 간식으로 땅콩을 먹으러 간다.
장자엔 이런 구절이 있다. 연못이 마르면 물고기들은 서로 진흙을 토하며 돕고 살지만 그것은 맑은 물속에서 서로를 잊고 사는 것 만 못하다.
나는 더 말할 것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