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무요원 수필 (1)

추운 겨울날의 일상

by 연석

때는 지독하게 추운 날이었다. 얼마나 추웠으면 길거리에 사람들은 전부 불쾌한 표정을 지었고 아니면 아예 고통러워 했다. 나는 그때 상하의 내복에 기모 바지, 긴팔 셔츠에 얇은 패딩에 외투 하나 더 입고 목도리까지 끼고 있었는데도 이 날 만은 견디기 어려웠다. 집에서 정류장까지, 정류장에서 복지관까지 걸어가는데 바람이 옷을 비집고 들어왔다.


복지관 안에 들어오니 좀 나았다. 난방이 잘 되진 않았지만 바람이 불지 않으니 일단은 살 것 같았다. 아직 불을 켜지 않아 층계마다 어둑한 계단에 알록달록하게 칠해진 벽은 딱딱한 석면 천장과 부조화를 이뤘다. 나이 든 미망인이 어떻게든 젊게 보이려고 화장을 칠한 느낌이었다. 낡은 벽면을 숨기려고 이것저것 달아왔자 번거롭기만 할 뿐이다. 페인트칠은 사무실 벽에 가면 끝난다. 사무실 벽은 흰 바탕에 갈색 잉크들이 불규칙적으로 뿌려져 있다. 잭슨 풀록이 보면 좋아할 것이다. 살짝 응어리진 잉크가 오돌토돌하게 만져진다. 차갑고 미끌미끌하다. 떨어져 나온 잉크나 손가락에 묻어 튕겨 나왔다.


사무실 내 난방 대책이라곤 라디에이터 몇 개가 끝이었다. 실내에서도 외투를 벋을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출근 확인을 하고선 자리에 앉으니 복지사 선생님들이 짧게 인사를 건넸다. 내 자리의 의자는 등받이가 푹신하긴 하지만 어딘가 빠져 있는지 자꾸만 앞으로 쏠렸다. 쓸려내려가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이 정자세를 유지해야 한 했는데, 그래서인지 여기 와서 요통을 겪어보진 못했다. 대신 허벅지가 좀 당기긴 한다. 팀장님이 이 의자를 한번 보시더니 바꿔주겠다고 하시긴 했는데, 지금은 명세서를 다루느라 바쁘신 모양이다. 사무실 분위기는 정돈돼 있지 않다. 사회복지사들이 업무에 치이며 발산하는 엔트로피가 소용돌이치며 난잡하다는 인상을 준다. 그 안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앉아있다 보면 사무실뿐만 아니라 우주 전체에서 나 혼자 동떨어진 느낌을 받는다.


내가 겪어본 것 중 사무실과 가장 비슷한 환경은 적당히 웅성거리는 자습시간의 교실이 아닐까 싶다. 복지사 선생님들끼리 허울 없이 농을 나눌 땐 더 그렇다. 전화가 울려 업무가 찾아오자 선생님 한 분이 법인 스파크 키를 꺼내 들고 외근에 나선다. 남은 옆자리 분이 놔두고 간 업무를 처리한다. 한쪽에선 봉사자를 등록하느라 바쁘다. 엑셀을 건드리는 소리가 딸깍딸깍 울려왔다.


그내들의 광경을 지켜보고 있다으니 갑자기 내게 업무가 다가왔다. 회계팀 주임님이 정리된 서류 한 뭉텅이를 들고 오시더니, 날짜순으로 정리해달라고 하신다. 핸드폰을 집어놓고 서류를 넘겨받았다. 책상에 펼쳐놓으니 한 덩이 같았던 게 층층이 나눠진다. 종이가 판판한 걸 보니 관리가 잘 된 모양이다. 괜스레 기분이 좋아진다. 배일 것 같이 판판한 종이들도 좋지만 한지 마냥 흐물거리고 누렇게 산화된 늙은 종이도 나쁘지 않다. 그런 종이는 부드러워서 마치 비단이라도 만지는 것 같다. 하지만 키보드는 무조건 세것이 좋다. 내 자리 앞 앞자리 선생님이 사용 중인 키보드는 낡고 뻑뻑해져서 선생님이 뭔갈 입력할 때면 뭉툭한 타음 때문에 듣는 것만으로도 알아차릴 수 있다. 어쩌다가 그 키보드를 만질 때면 하나하나 힘을 줘서 꾹 꾹 눌러야 했다.


서류 정리를 마치고 가져다주면 짧은 감사를 받는다. 자리에 돌아와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손에 딱 잡히는 텀블러로 물을 받아 목마를 때마다 마시면 꽉 채워 두 병어치를 마셨을 때 점심시간이 된다. 딱 한병 반 어치를 마셨을 떼 또다시 업무지원이 들어왔다. 활빛청년단 마을 청소 보조업무였다.


아닌 게 아니라 사무실 유리문 너머로 김 선생님이 주머니에 손 넣고 있는 것이 보였다. 김 선생님. 이곳 주민들 중 선생 호가 붙은 건 김 선생님 뿐이다. 살짝 머리가 벗어지고 주름진 얼굴은 푸근하게 부드러워 보이지만 얇게 떠진 눈빛이 날카로워 만만해 보이지 만은 않는다. 아닌 게 아니라 김 선생님은 지역사회운동가의 훌륭한 표본이다. 복지관에서 치러지는 이런저런 소모임엔 거의 참여하면서, 자리가 되면 보통 회장 등 묵직한 역할을 맡으신다. 거기다가 이곳뿐 아니라 주변 복지관이나 단체 활동까지도 왕성하게 하고 있는 모양이니, 김 선생님을 대하는 복지사들의 태도도 사뭇 다르다. 오늘 김 선생님이 복지관에 오신 건 주기적으로 이뤄지는 동내 청소를 담당하기 위해서다. 나는 서둘러 집개며 봉지, 커피와 물을 챙겼다. 날이 추우니 끓기 직전까지 익힌 물이어야 한다. 사회복지사 선생님은 김 선생님과 이것저것 이야기를 하며 아파트 단지 내에 동내 청소를 알리는 방송을 틀으러 갔다. 곳 아파트 전체에 복지사 선생님의 목소리가 울렸다. 몇 번 해 보셨을 테지만 긴장을 감출 순 없는지 말끝이 파르르 떨렸다.


김 선생님과 같이 도구를 들고 마을 내 정좌로 향했다. 문을 열기도 전에 시린 바람이 날 맞이했다. 장갑을 끼지 않은걸 후회했다. 난 곳장 도구를 내려놓고 김 선생님께 커피를 하나 타 드렸다. 추운 겨울바람을 타고 뿌옇게 달콤한 향이 풍겼다. 뜨신 잔을 건네받은 김 선생님의 손은 거북이 등껍질처럼 거칠었다. 추위 속에서 청소에 참가할 주민들을 기다리고 있으니 어떤 남성분이 헐렁한 운동복을 입고 터덜터덜 걸어왔다. 그분은 커피도 거절하고 김 선생님과 짧게 인사만 나눈 후 어디서 큰 대빗자루를 끌고 오더니 혼자서 청소를 시작했다. 쓰윽쓰윽 낡은 잎사귀를 쓸어네시더니 이네 시야에서 사라졌다.


김 선생님이 어디 어디 전화를 걸어 사람을 불러네기 시작했다. 셋 중 둘은 병치래 때문에 나오질 못하고, 한 명은 자다 일어나 곳 나온다는 약속을 받아넸다. 마침 머리가 하얕게 센 할머니가 꾸부정하게 정좌로 다가왔다. 통화 중인 김 선생님과 목례를 했는데, 이미 허리가 굽어져 조금만 굽혀도 90도 인사가 되었다. 나는 미리 커피를 타서 나눠드렸는데, 할머니께서 직접 준비해온 쓰레기 봉지를 한 다발 꺼네더니 청소에 쓰라며 건네주었다. 커피와 봉지를 교환하는 모양이 됐다. 할머니는 커피를 후룩후룩 마시며 커피가 흔해지기 전 얘기를 해줬다. 그때는 커피 대신 차를 건네주었었지. 지금은 커피야. 대접하기에 그만한 게 없지 암. 조금 더 기다리니 두 세 분 줄지어서 모여들었다. 커피 물 양은 기분 좋게 양이 딱 맞았지만 마지막 잔을 받은 아저씨는 물이 식어 영 맛이 없었는지 커피를 하수구에 뿌려버리셨다. 서로서로 안부를 묻거나 주변에 무슨 일 있었는지 예기를 나누다가 김 선생님이 청소 시작을 알렸다. 꼬부랑 할머니하고 털털한 아저씨, 머리 희게 센 할머니, 김 선생님, 그리고 아주머니 한 분 이서 각자 봉지와 집게를 들고 나섰다. 사람이 모자라면 나도 같이 가는데, 이번엔 정좌에만 다섯 명이고 혼자 빗자루를 가져간 남성분이 한분이니 김 선생님도 굳이 나보고 오라고 하진 않았다.


내가 할 일은 청소하는 모습을 찍어 복지사 선생님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처음엔 별걸 다 기록하시네 했지만 이젠 익숙했다. 할머니 한 분을 따라가 몇 장 찍는데 별말 없이 쓰레기를 줍는데만 집중하셨다. 아파트 화단에 왜 깨진 반찬통이 있을까. 다른 분을 찾아다니러 동내를 돌아다니니 빗자루를 들고 간 분이 보였다. 그분은 어느새 경비아저씨와 패어를 맞추고 있었다. 적당히 각이 나오도록 몇 장 찍고, 다시 다른 분 몇 장, 그렇게 대여섯 장을 찍은 뒤 정좌로 돌아와 청소가 끝나길 기다렸다. 갑자기 추위가 밀려들어왔다. 좀 움직일뗀 나았는데 가만히 앉아있으니 계속 추워지기만 했다. 물병에 조금 남은 물은 이미 냉수가 돼 있었다. 할머니 한 분이 끌차를 끌고 정좌 앞을 지나쳤다. 이렇게 추운데 어디를 가시려는지 걷기에 열심히였다. 젊은이들은 그냥 걷는다. 굳이 힘을 들일 필요도 못 느낀다. 하지만 노인들 걸음엔 힘이 느껴진다. 힘을 주고, 최대한 허리를 피고 늘어난 혈관을 긴장시키며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간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아저씨가 쓰레기를 한 다발 들고 왔다. 누가 버렸는지 모를 냄비도 하나 들고 왔다. 이건 유리인가? 아저씨는 투명한 냄비 뚜껑을 들더니 봉지에 나눠 넣었다. 나는 자리에 일어나 준비해 뒀던 큰 종량제 봉투를 꺼내 열었다. 들고 온 쓰레기들은 담배꽁초이며 일회용 접시, 음식물 담았던 비닐봉지, 젓가락, 휴지, 과자 봉지, 이것, 저것 전부 다 무신경한 사람들이 휙휙 던져 댄 것 들이였다. 봉지 입구를 열고 주워 온 쓰레기들을 털어 넣을 때마다 역하고 따가운 냄새가 밀려들었다. 큰 봉지로 두 개를 꽉 채워 나왔다. 다른 분들도 뒤따라한 덩이씩 쓰레기를 주워왔다. 빗자루를 들고 간 아저씨는 어디서 뭘 하시고 있는지 아직도 오시질 않았다.
종량제 봉투는 아저씨가 말없이 가져가셨다. 도와드릴 새도 없이 훌쩍 떠나시고 모임은 파했다. 나는 빈 물통과 집개들을 챙겨 복지관으로 향했다. 유리문을 어깨로 밀어 열고 계단을 올라갔다. 도구를 정리하고 자리에 앉는데 옷에 쓰레기 냄새가 살짝 배인 모양이었다. 하지만 곳 익숙해질 터였다.


그분들은 열심히 살았다. 그야말로 군더더기 없는 인간상이다.


이제 곳 점심시간이다. 밥을 먹기 전 나는 생각했다. 사회복지사라고 했을 때 일단 가난한 사람을 돕는 성자의 모습이나 숯검댕이 묻어 연탄을 나르는 모습이 떠오르기 마련이다. 내가 사회복지관에 배치되어서 얼마간까지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남을 돕는, 동정심에 호소하는 일이 어느새 직업이 된 건지 놀랍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특히 고된 업무네 친 그분들의 모습에서 뭔가 의아함을 느꼈다. 겨우 일차적인 쾌락을 주기 위해선 그런 고생은 할 필요 없지 않나? 그들이 왜 도시락이나 배달하고 지원금이나 부치러 끊임없이 머리를 싸매고 회의하고 또 회의하며 밤을 지새울 필요가 있던가? 애컨데 굶지 않게 하고 적당히 심심하지만 않게 하면 되는 것 나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관찰을 거듭한 결과 사회복지사들은 오히려 주민들이 꾸준히 지치고 피곤해지며, 감정을 소모하길 바란다는 걸 알아넸다. 사회복지사는 주민들의 등잔에 앉은 파리처럼 끊임없이 그들을 움직이게 만든다. 그리하여 새로운 감각이 샘솥고 의지를 가지며 삶에 동력을 얻길 바란다. 제정신으로 하루를 보네느니 술에 빠져 길거리에 쓰러지는 편을 더 좋아하는 사람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삶의 가치는 쾌락과 다른, 어쩌면 정 반대인 곳에 있다 화려해 보이는 쾌락은 알고 보면 따분하고, 지루해 보이는 일 속에는 무엇보다 다채롭게 빛나는 기쁨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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