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지독하게 추운 날이었다. 얼마나 추웠으면 길거리에 사람들은 전부 불쾌한 표정을 지었고 아니면 아예 고통러워 했다. 나는 그때 상하의 내복에 기모 바지, 긴팔 셔츠에 얇은 패딩에 외투 하나 더 입고 목도리까지 끼고 있었는데도 이 날 만은 견디기 어려웠다. 집에서 정류장까지, 정류장에서 복지관까지 걸어가는데 바람이 옷을 비집고 들어왔다.
복지관 안에 들어오니 좀 나았다. 난방이 잘 되진 않았지만 바람이 불지 않으니 일단은 살 것 같았다. 아직 불을 켜지 않아 층계마다 어둑한 계단에 알록달록하게 칠해진 벽은 딱딱한 석면 천장과 부조화를 이뤘다. 나이 든 미망인이 어떻게든 젊게 보이려고 화장을 칠한 느낌이었다. 낡은 벽면을 숨기려고 이것저것 달아왔자 번거롭기만 할 뿐이다. 페인트칠은 사무실 벽에 가면 끝난다. 사무실 벽은 흰 바탕에 갈색 잉크들이 불규칙적으로 뿌려져 있다. 잭슨 풀록이 보면 좋아할 것이다. 살짝 응어리진 잉크가 오돌토돌하게 만져진다. 차갑고 미끌미끌하다. 떨어져 나온 잉크나 손가락에 묻어 튕겨 나왔다.
사무실 내 난방 대책이라곤 라디에이터 몇 개가 끝이었다. 실내에서도 외투를 벋을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출근 확인을 하고선 자리에 앉으니 복지사 선생님들이 짧게 인사를 건넸다. 내 자리의 의자는 등받이가 푹신하긴 하지만 어딘가 빠져 있는지 자꾸만 앞으로 쏠렸다. 쓸려내려가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이 정자세를 유지해야 한 했는데, 그래서인지 여기 와서 요통을 겪어보진 못했다. 대신 허벅지가 좀 당기긴 한다. 팀장님이 이 의자를 한번 보시더니 바꿔주겠다고 하시긴 했는데, 지금은 명세서를 다루느라 바쁘신 모양이다. 사무실 분위기는 정돈돼 있지 않다. 사회복지사들이 업무에 치이며 발산하는 엔트로피가 소용돌이치며 난잡하다는 인상을 준다. 그 안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앉아있다 보면 사무실뿐만 아니라 우주 전체에서 나 혼자 동떨어진 느낌을 받는다.
내가 겪어본 것 중 사무실과 가장 비슷한 환경은 적당히 웅성거리는 자습시간의 교실이 아닐까 싶다. 복지사 선생님들끼리 허울 없이 농을 나눌 땐 더 그렇다. 전화가 울려 업무가 찾아오자 선생님 한 분이 법인 스파크 키를 꺼내 들고 외근에 나선다. 남은 옆자리 분이 놔두고 간 업무를 처리한다. 한쪽에선 봉사자를 등록하느라 바쁘다. 엑셀을 건드리는 소리가 딸깍딸깍 울려왔다.
그내들의 광경을 지켜보고 있다으니 갑자기 내게 업무가 다가왔다. 회계팀 주임님이 정리된 서류 한 뭉텅이를 들고 오시더니, 날짜순으로 정리해달라고 하신다. 핸드폰을 집어놓고 서류를 넘겨받았다. 책상에 펼쳐놓으니 한 덩이 같았던 게 층층이 나눠진다. 종이가 판판한 걸 보니 관리가 잘 된 모양이다. 괜스레 기분이 좋아진다. 배일 것 같이 판판한 종이들도 좋지만 한지 마냥 흐물거리고 누렇게 산화된 늙은 종이도 나쁘지 않다. 그런 종이는 부드러워서 마치 비단이라도 만지는 것 같다. 하지만 키보드는 무조건 세것이 좋다. 내 자리 앞 앞자리 선생님이 사용 중인 키보드는 낡고 뻑뻑해져서 선생님이 뭔갈 입력할 때면 뭉툭한 타음 때문에 듣는 것만으로도 알아차릴 수 있다. 어쩌다가 그 키보드를 만질 때면 하나하나 힘을 줘서 꾹 꾹 눌러야 했다.
서류 정리를 마치고 가져다주면 짧은 감사를 받는다. 자리에 돌아와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손에 딱 잡히는 텀블러로 물을 받아 목마를 때마다 마시면 꽉 채워 두 병어치를 마셨을 때 점심시간이 된다. 딱 한병 반 어치를 마셨을 떼 또다시 업무지원이 들어왔다. 활빛청년단 마을 청소 보조업무였다.
아닌 게 아니라 사무실 유리문 너머로 김 선생님이 주머니에 손 넣고 있는 것이 보였다. 김 선생님. 이곳 주민들 중 선생 호가 붙은 건 김 선생님 뿐이다. 살짝 머리가 벗어지고 주름진 얼굴은 푸근하게 부드러워 보이지만 얇게 떠진 눈빛이 날카로워 만만해 보이지 만은 않는다. 아닌 게 아니라 김 선생님은 지역사회운동가의 훌륭한 표본이다. 복지관에서 치러지는 이런저런 소모임엔 거의 참여하면서, 자리가 되면 보통 회장 등 묵직한 역할을 맡으신다. 거기다가 이곳뿐 아니라 주변 복지관이나 단체 활동까지도 왕성하게 하고 있는 모양이니, 김 선생님을 대하는 복지사들의 태도도 사뭇 다르다. 오늘 김 선생님이 복지관에 오신 건 주기적으로 이뤄지는 동내 청소를 담당하기 위해서다. 나는 서둘러 집개며 봉지, 커피와 물을 챙겼다. 날이 추우니 끓기 직전까지 익힌 물이어야 한다. 사회복지사 선생님은 김 선생님과 이것저것 이야기를 하며 아파트 단지 내에 동내 청소를 알리는 방송을 틀으러 갔다. 곳 아파트 전체에 복지사 선생님의 목소리가 울렸다. 몇 번 해 보셨을 테지만 긴장을 감출 순 없는지 말끝이 파르르 떨렸다.
김 선생님과 같이 도구를 들고 마을 내 정좌로 향했다. 문을 열기도 전에 시린 바람이 날 맞이했다. 장갑을 끼지 않은걸 후회했다. 난 곳장 도구를 내려놓고 김 선생님께 커피를 하나 타 드렸다. 추운 겨울바람을 타고 뿌옇게 달콤한 향이 풍겼다. 뜨신 잔을 건네받은 김 선생님의 손은 거북이 등껍질처럼 거칠었다. 추위 속에서 청소에 참가할 주민들을 기다리고 있으니 어떤 남성분이 헐렁한 운동복을 입고 터덜터덜 걸어왔다. 그분은 커피도 거절하고 김 선생님과 짧게 인사만 나눈 후 어디서 큰 대빗자루를 끌고 오더니 혼자서 청소를 시작했다. 쓰윽쓰윽 낡은 잎사귀를 쓸어네시더니 이네 시야에서 사라졌다.
김 선생님이 어디 어디 전화를 걸어 사람을 불러네기 시작했다. 셋 중 둘은 병치래 때문에 나오질 못하고, 한 명은 자다 일어나 곳 나온다는 약속을 받아넸다. 마침 머리가 하얕게 센 할머니가 꾸부정하게 정좌로 다가왔다. 통화 중인 김 선생님과 목례를 했는데, 이미 허리가 굽어져 조금만 굽혀도 90도 인사가 되었다. 나는 미리 커피를 타서 나눠드렸는데, 할머니께서 직접 준비해온 쓰레기 봉지를 한 다발 꺼네더니 청소에 쓰라며 건네주었다. 커피와 봉지를 교환하는 모양이 됐다. 할머니는 커피를 후룩후룩 마시며 커피가 흔해지기 전 얘기를 해줬다. 그때는 커피 대신 차를 건네주었었지. 지금은 커피야. 대접하기에 그만한 게 없지 암. 조금 더 기다리니 두 세 분 줄지어서 모여들었다. 커피 물 양은 기분 좋게 양이 딱 맞았지만 마지막 잔을 받은 아저씨는 물이 식어 영 맛이 없었는지 커피를 하수구에 뿌려버리셨다. 서로서로 안부를 묻거나 주변에 무슨 일 있었는지 예기를 나누다가 김 선생님이 청소 시작을 알렸다. 꼬부랑 할머니하고 털털한 아저씨, 머리 희게 센 할머니, 김 선생님, 그리고 아주머니 한 분 이서 각자 봉지와 집게를 들고 나섰다. 사람이 모자라면 나도 같이 가는데, 이번엔 정좌에만 다섯 명이고 혼자 빗자루를 가져간 남성분이 한분이니 김 선생님도 굳이 나보고 오라고 하진 않았다.
내가 할 일은 청소하는 모습을 찍어 복지사 선생님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처음엔 별걸 다 기록하시네 했지만 이젠 익숙했다. 할머니 한 분을 따라가 몇 장 찍는데 별말 없이 쓰레기를 줍는데만 집중하셨다. 아파트 화단에 왜 깨진 반찬통이 있을까. 다른 분을 찾아다니러 동내를 돌아다니니 빗자루를 들고 간 분이 보였다. 그분은 어느새 경비아저씨와 패어를 맞추고 있었다. 적당히 각이 나오도록 몇 장 찍고, 다시 다른 분 몇 장, 그렇게 대여섯 장을 찍은 뒤 정좌로 돌아와 청소가 끝나길 기다렸다. 갑자기 추위가 밀려들어왔다. 좀 움직일뗀 나았는데 가만히 앉아있으니 계속 추워지기만 했다. 물병에 조금 남은 물은 이미 냉수가 돼 있었다. 할머니 한 분이 끌차를 끌고 정좌 앞을 지나쳤다. 이렇게 추운데 어디를 가시려는지 걷기에 열심히였다. 젊은이들은 그냥 걷는다. 굳이 힘을 들일 필요도 못 느낀다. 하지만 노인들 걸음엔 힘이 느껴진다. 힘을 주고, 최대한 허리를 피고 늘어난 혈관을 긴장시키며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간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아저씨가 쓰레기를 한 다발 들고 왔다. 누가 버렸는지 모를 냄비도 하나 들고 왔다. 이건 유리인가? 아저씨는 투명한 냄비 뚜껑을 들더니 봉지에 나눠 넣었다. 나는 자리에 일어나 준비해 뒀던 큰 종량제 봉투를 꺼내 열었다. 들고 온 쓰레기들은 담배꽁초이며 일회용 접시, 음식물 담았던 비닐봉지, 젓가락, 휴지, 과자 봉지, 이것, 저것 전부 다 무신경한 사람들이 휙휙 던져 댄 것 들이였다. 봉지 입구를 열고 주워 온 쓰레기들을 털어 넣을 때마다 역하고 따가운 냄새가 밀려들었다. 큰 봉지로 두 개를 꽉 채워 나왔다. 다른 분들도 뒤따라한 덩이씩 쓰레기를 주워왔다. 빗자루를 들고 간 아저씨는 어디서 뭘 하시고 있는지 아직도 오시질 않았다.
종량제 봉투는 아저씨가 말없이 가져가셨다. 도와드릴 새도 없이 훌쩍 떠나시고 모임은 파했다. 나는 빈 물통과 집개들을 챙겨 복지관으로 향했다. 유리문을 어깨로 밀어 열고 계단을 올라갔다. 도구를 정리하고 자리에 앉는데 옷에 쓰레기 냄새가 살짝 배인 모양이었다. 하지만 곳 익숙해질 터였다.
그분들은 열심히 살았다. 그야말로 군더더기 없는 인간상이다.
이제 곳 점심시간이다. 밥을 먹기 전 나는 생각했다. 사회복지사라고 했을 때 일단 가난한 사람을 돕는 성자의 모습이나 숯검댕이 묻어 연탄을 나르는 모습이 떠오르기 마련이다. 내가 사회복지관에 배치되어서 얼마간까지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남을 돕는, 동정심에 호소하는 일이 어느새 직업이 된 건지 놀랍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특히 고된 업무네 친 그분들의 모습에서 뭔가 의아함을 느꼈다. 겨우 일차적인 쾌락을 주기 위해선 그런 고생은 할 필요 없지 않나? 그들이 왜 도시락이나 배달하고 지원금이나 부치러 끊임없이 머리를 싸매고 회의하고 또 회의하며 밤을 지새울 필요가 있던가? 애컨데 굶지 않게 하고 적당히 심심하지만 않게 하면 되는 것 나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관찰을 거듭한 결과 사회복지사들은 오히려 주민들이 꾸준히 지치고 피곤해지며, 감정을 소모하길 바란다는 걸 알아넸다. 사회복지사는 주민들의 등잔에 앉은 파리처럼 끊임없이 그들을 움직이게 만든다. 그리하여 새로운 감각이 샘솥고 의지를 가지며 삶에 동력을 얻길 바란다. 제정신으로 하루를 보네느니 술에 빠져 길거리에 쓰러지는 편을 더 좋아하는 사람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삶의 가치는 쾌락과 다른, 어쩌면 정 반대인 곳에 있다 화려해 보이는 쾌락은 알고 보면 따분하고, 지루해 보이는 일 속에는 무엇보다 다채롭게 빛나는 기쁨이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