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은 뒤로 미룬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부탁을 거절할 때 느껴지는 미안함, 의견 충돌 후에 찾아오는 불편함, 누군가와 어긋날 때 감당해야 하는 긴장— 그 모든 것을 이 한 문장으로 덮을 수 있었다.
괜찮아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내가 점점 흐릿해지는 것 같았다.
윤곽(輪廓)이 지워지고, 중심이 사라지는 느낌..
문제는 상대가 아니라 내 기준이 없었던 것 아닐까?
예전의 나는 갈등이 생기면 일단 상황부터 정리했다.
내 감정은 나중에
해결이 우선이었다.
그러면 괜찮아질 줄 알았다.
하지만 감정은 나중에 처리한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았고 삼켰던 말들은 소화되지 않은 채 어딘가에 남아, 조용히 썩어갔다.
어느 날 문득 달리는 중에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중 내 안에 쌓인 것들이 너무 많다는 말을 속으로 내뱉었다.
표면적으로는 다 괜찮은 척했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계속 무언가가 울리고 있었다. 묵혀둔 감정들은 사라진 게 아니라, 그저 가라앉아 있었을 뿐인가 보다.
연습을 시작했다.
내 감정이 진짜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먼저 묻는 것.
그리고 흥분? (마땅한 비유가 생각나지 않는다...) 이 가라앉았을 때, 조심스럽게 꺼내보는 것.
이제는 모르면 묻는다.
내가 이렇게 느낀 게 맞는지, 상대의 의도는 무엇이었는지, 이 관계에서 내가 지키고 싶은 건 무엇인지.
예전처럼 한 가지 방법만 고집하지 않는다.
때로는 말 대신 템포를 늦추고, 침묵을 활용하며 글로 정리해 볼 때도 있다. 완벽한 정답을 찾는 게 아니라, 나에게 맞는 리듬으로 대화한다.
나는 완전히 단단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단단해도 실패하고 망해봤잖아.
약 1.5년 동안 하루 4시간씩 자고 닥치는 대로 제안하고 일했었다.
실패해 본 사람이라면 알 수 있는 끝없이 무너지는 낭떠러지를 잡고 있는 손을 부들거리는 나의 모습, 떨어질까? 생각하다가도 회복하려는 무수히 많은 작용과 반작용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고 싶은 내가 되고 싶다" 단순한 이 한 문장이 유연하고 말랑거리는 마음을 만들어 주었고 현실을 똑바로 마주하며 "지금"에 집중할 때 회복이 되었다.
다시 같은 문제들로 무너지지 않기 위해 체력과 에너지를 차곡차곡 쌓고 있는 버틸 힘을 모으는 지금 이 순간도, 앞으로 그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돌처럼 생각과 몸이 굳어지고 싶지도 않다. 그렇다고 바람 부는 대로 형태가 바뀌는 존재도 되고 싶지 않다.
내가 바라는 건, 중심은 분명히 있으면서도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흔들릴 수 있는 상태다.
겉은 말랑하고 다정하지만, 안쪽에는 절대 잃지 않을 핵심이 있는 복숭아처럼 부드럽지만 중심을 잃지 않는, 그런 사람이고 싶다.
좋은 게 좋지 뭐~ 괜찮다는 말이 틀리다고 할 수 없지만, 그 괜찮다는 말과 좋음 속에 나 자신도 포함되어야 한다는 걸, 나이가 차 오른 지금도 배우는 중이다.
꽤 많은 파도를 지나왔지만..
여전히 조건과 상황에 따라
경험해 보지 못한 다름의 파도가 오면
다른 물결을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할 테니^^)>
상대를 배려하는 것과
나를 지우는 것은 다르다.
평화를 원하는 것과
진실을 대면하지 않으며
내 목소리를 삼키는 것은 다르다.
진짜 좋은 관계란,
나도 그 안에서 온전히 존재할 수 있는 관계 아닌가?
이 나이를 먹도록?
더는 억지로 밀고 당기지 않고, 회피하거나 거리를 두며 스스로를 지우지 않는다.
감사와 배려를 거름 삼아 내 윤곽을 지키는 일은 이기적인 것이 아니다. 나를 돌보는 일이 관계를 해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건강하고 편안한 관계를 만든다는 것을 안다.
결국 내가 바라는 건 중심을 지키는 삶이다.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그 순간의 기류에 나를 잃지 않는 것.
내 소신을 지키고,
내 이야기를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용기.
옳고 그름을 분명히 하되,
고집이 아니라 올바른 기준에서 흔들리지 않는 힘.
매 순간 도파민과 에너지가 넘칠 수 없더라도 목적이 분명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
그리고
남의 말은 어디까지나 충고이고 조언일 뿐,
우리 대신 살아줄 수 없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
그 좋음 안에 내가 있을 때
서로 안정감을 느낄 때 좋은 게 좋은 거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