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무너무 '열심히' 안하고 싶다

자연스럽게 누적되는 간절한 노력은 실력이 되고 결국 되어가는 사람이될거야

일상으로서의 일

자연스러움에 대하여

1. "열심히"라는 단어의 무게

나는 어릴 적부터 "열심히"라는 단어와 함께 자랐다.

열심히 공부해야 하고, 열심히 일해야 하며,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들어오면서, 잘지내? 라는 말을 듣는 것 처럼.. 열심히라는 단어는 마치 주문처럼 삶에 새겨져, 무언가를 할 때마다 스스로에게 종종 물어보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지금 충분히 열심히 하고 있는가?


열심히라는 단어에는 묘한 긴장감이 깃들어 있다.


마치 이를 악물고, 땀을 흘리고, 때로는 자신을 갈아 넣는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는가?

일이란 원래 고통스러운 것이고, 우리는 그 고통을 견뎌내야만 가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듯이 말이다.


그런데 과연 그래야만 할까?


밥을 먹을 때 우리는 열심히 먹는가?


잠을 잘 때 최선을 다해 자는가?


아니다.


우리는 그저 먹고, 그저 잔다.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삶의 일부로서.




2. 호흡처럼, 발걸음처럼

생각해보면 우리가 가장 오래, 가장 지속적으로 하는 일들은 모두 "열심히" 하지 않는 일들이다.


아침에 눈을 뜨고, 물을 마시고, 양치를 하고, 각자의 꿈의 거리를 걷는다.


이 모든 것을 우리는 특별한 의지력 없이도 해낸다. 오히려 너무 의식하면 어색해진다. 국방의 의무로 훈련소에 들어가 큰걸음으로 가~ 동작은 잘 아는데 걸음걸이를 지나치게 의식해서 그런지 자연스럽게 걷기 어려운 것처럼. (물론, 다른 이유들이 더 많긴하다.)


일도 그렇게 될 수는 없을까?


호흡처럼 자연스럽게, 발걸음처럼 당연하게, 아침 햇살처럼 매일 찾아오는 것으로. 특별히 동기부여를 하지 않아도, 영감이 넘치지 않아도, 그저 하게 되는 "나"의 쓰임일 수 없을까?


열심히 하지 않아야 한다는 건 게으름에 대한 변명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진정으로 무언가를 삶에 통합시킨다는 것은, 그것이 더 이상 "해야 할 일"이 아니라 "하고 있는 일"이 된다는 뜻이 아닌가?


식물이 광합성을 하듯이, 새가 날갯짓을 하듯이, 자연스럽게 일은 한다는 건 우리의 본성이고, 우리의 삶이 아닐까?



3. 생존으로서의 일

밥을 안 먹고 잠을 안 자면 죽는다.

이 단순한 진실에는 어떤 과장도 없다.


생물학적 사실이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에 "일"을 넣을 수 있을까?


일을 안 하면 죽는다고?


물론 경제적 의미에서는 사실이다. 일하지 않으면 생계를 꾸릴 수 없고, 가족을 부양할 수 없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죽음은 단순히 경제적 죽음만을 뜻하지 않는다.


정체된 물은 썩는다.

사용하지 않는 근육은 위축되고, 생각하지 않는 정신은 무뎌진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창조하고, 기여하고, 성장하도록 설계된 존재니까 (1)


(1) 뇌의 보상 시스템 뭔가 새로운 걸 만들거나 문제를 해결하면 뇌에서 도파민이라는 "기분 좋은 화학물질"이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처럼 나오고, 우리는 계속 배우고 만들고 싶어지는 거 아닐까?

뇌는 계속 자란다 운동하면 근육이 커지듯, 새로운 걸 배우면 뇌세포들 사이에 연결선이 더 많이 생기는데 나이가 들어도 계속 자라서 도전적인 일을 하면 뇌가 실제로 발달한다고 하니 말이다.

함께하면 기분이 좋다 남을 돕거나 팀에 기여하면 옥시토신 같은 "행복 호르몬"이 나오는데 인류가 혼자서는 살아남기 힘들었기 때문에 진화한 것이라고 한다.


일이 없는 삶은, 목적이 없는 배와 같다.


표류할 뿐이다.


내가 죽고 내 가족이 죽으니까라는 표현은 극단적으로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의 죽음은 생명의 소멸이 아니라 생기의 소멸이다.


빛을 잃은 눈동자, 활력을 잃은 영혼, 의미를 잃은 하루 하루를 산다는건 진짜 죽음이다.


일은 우리에게 구조를 준다.


아침에 일어날 이유를, 오늘을 살아갈 목적을 준다. 그것이 거창한 사명감이 아니어도 좋다.


그저 오늘 해야 할 과제가, 풀어야 할 문제가, 만들어야 할 무언가가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살아있음을 느낄테니 말이다.



4. 밥맛 없는 날의 지혜

누구에게나 밥맛 없는 날이 있다. (밥맛없는 그xx가 생각난 건 아니다.)

입맛이 없고, 음식이 목으로 넘어가지 않는 날. 그래도 우리는 결국 먹는다. 배고픔이 오면 죽을 것처럼 고통스러울 것을 알기에..


누구에게나 잠 못 이루는 밤이 있다. (문뜩 외로운 순간이 휘몰아 치지 않아도 말이다.)

천장만 바라보며 뒤척이는 밤. 그래도 우리는 눈을 감는다. 잠들지 못해도 쉬려 노력한다. 잠 없이는 다음 날을 견딜 수 없음을 알기에..


일도 마찬가지다.


어떤 날은 나만의 앱과 사이트를 만들고 싶어 배우며 보던 코드 한 줄이 사막처럼 느껴진다. 어떤 날은 키보드 앞에 앉기가 산을 오르는 것처럼 버겁다. 글을 쓰자! 생각을 했는데 순간 디스크로 고생하던 허리가 갑자기 더 아파지는 것 같고.. 어떤 글이 지금 이 글을 보고 있는 마음에 와 닿을지싶고, 영감은 사라지고, 퇴근하고 집에오면 운동을 가야하는데 가끔, 아니 매 순간 의욕은 바닥을 긴다. (그 순간만은 참 편하긴 하다.)


그래도 앉았고, 노션을 켰고, 한 줄을 썻다.


비록 2주넘는 시간이 걸렸지만,

순간들의 모여 지금 이렇게 쓰고 있다.


결국 해냈다.


이 순간들과 감정들에 영웅적인 것도, 드라마틱한 것도 없다. 그저 해야 하니까 했을 뿐이다.

밥맛이 없어도 밥을 먹듯이, 잠이 오지 않아도 누워있듯이.


중요한 것은 이 무기력한 날들도 삶의 일부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 같다. 매일 최선을 다할 필요도, 영감으로 충만할 필요는 없다. 매일이 생산적인 나의 총량을 쓸 필요도 없다. 어떤 날은 그저 버티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농부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밭을 본다. 매일이 풍년인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밭은 돌봐야 한다. 우리의 일도, 우리의 실력도 그런 밭과 같다. 매일 조금씩, 극적이지 않게, 그저 돌보는 시간들이 필요한 것 같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한다.


내가 어떤 결실을 원하고 있는지, 그 것을 제대로 수확하려고 하는지 말이다.



5. 최선을 다하지 않는 용기

최선을 다하라는 말큼 우리를 지치게 하는 말이 또 있을까?


최선(最善)이란 무엇인가? (어떤 일에 온 정성과 힘을 다함이라고?)


그것은 한계까지 밀어붙이는 것, 더 이상 짜낼 것이 없을 때까지 자신을 쥐어짜는 것을 의미하는가? 만약 그렇다면 최선을 다하는 삶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마라톤을 100미터 달리기처럼 뛸 수는 없는 법이지 않나?


열정(劣情)을 다하라는 말도 마찬가지다. 열정은 불꽃과 같아서 강렬하지만 오래가지 못한다. 끊임없이 연료를 공급해야 하고, 꺼지면 다시 붙이기 어렵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불꽃이 아니라 숯불이다. 화려하지 않지만 오래 지속되는, 은은하지만 꾸준한 열기말이다. 밥을 지을 수 있을 만큼, 겨울을 날 수 있을 만큼의 열기면 충분하다. (사실 이런 사랑을 만나고 싶지만 아직도 구워 줄 고기도 못 올린 숯불 빛이나는..solo.)


밥을 먹을 때 우리는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 그저 적당히, 배가 부를 만큼 먹는다. 너무 많이 먹으면 배탈이 나고, 너무 적게 먹으면 배고프다. (인슐린저항성, 대사 시스템이 망가지지 않았다면) 적당함을 안다.


잠도 마찬가지다. 8시간이든 7시간이든, 내 몸이 필요로 하는 만큼 잔다. 누가 봐주지 않아도, 누가 평가하지 않아도 - 일도 그렇게 할 수 있다. 오늘 할 수 있는 만큼 한다. 무리하지 않으면서도 멈추지 않는, 그 미묘한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최선을 다하지 않는 용기"다.


결정과 선택이 빠르던지 늦던지 뭐 어쩌라는 건가..?


세상이 요구하는 과도함을 거절한 지금이 나의 시작이고 그 시작을 자신에게 맞는 속도로 나아가겠다고 선택하는 숯불같은 믿음이 있다면 화려하지 않아도 되고, 눈부시지 않아도 되며, 외롭지만 단단해지는 순간들을 쌓으며, 그저 지속 가능하면 충분하다는 것을 아는 용기 말이다.



6. 고요한 실력의 축적

세상은 시끄럽다.

성공 스토리는 드라마틱해야 하고, 성장 곡선은 가파라야 하며, 성과는 즉각적이고 가시적이어야 한다.


박수받을 만한 것, 인정받을 만한 것, SNS에 올릴 만한 것이 가치 있다고 여겨진다.


Be famous, and they will give you tremendous applause when you are actually pooping.

(일단 유명해져라, 똥을 싸도 박수를 쳐줄 거라고? 개떡같다.)


진짜 실력은 조용히 자란다.


나무가 자라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없다. 나무는 소리 없이 자란다. 매일 눈에 보이지 않는 성장을 하고, 뿌리를 더 깊이 내리고, 나이테를 하나씩 더한다. 그리고 어느 날 우리는 그 나무가 거목이 되어 있음을 발견한다.


실력도 그렇다.


어제와 오늘 사이의 차이는 미미하다. 이번 달과 지난달의 차이도 크지 않다. 하지만 작년과 올해 좋든 안 좋든 달라져 있지 않나? 3년 전과 지금을 비교하면 다른 사람이 되어 있다. 그 긴 시간 동안 조용히, 꾸준히,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쌓아 올린 것들이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라는 표현에는 쓸쓸함이 묻어있을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자유가 있다. 남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때, 비교의 압박에서 벗어날 때, 우리는 비로소 자기 자신의 속도로 갈 수 있다.


"아무도 기대하지 않아도"라는 말에도 역설이 있다. 기대가 없다는 것은 실망도 없다는 뜻이다. 증명해야 할 것도, 변명해야 할 것도 없다. 그저 자신이 정한 길을 묵묵히 걸으면 된다.


중요한 것은 "그 과정에서 스스로 만족할 줄 아는" 능력이다.


외부의 인정은 솔직하지 않고 때로는 불안정하다.


오늘 칭찬해주던 사람이 내일은 외면할 수 있고, 지금 주목받는 것이 내일은 잊힐 수 있다. 하지만 스스로의 성장을 인지하고,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만족스러워할 수 있다면, 그것은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다듬어진 보물이 된다.


오해하지 않아야 한다.

자기만족이 아니다.

오히려 정확한 자기 인식이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를 비교하고, 성장의 증거를 스스로 찾아내고, 그 작은 진전에 기뻐할 줄 아는 것. 그것이 장기전을 버틸 수 있는 진짜 연료가 될테니까.



7. 되어가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사람이 되어가는 것이라는 표현이 중요하다.


도착점이 아니라 여정이고, 완성이 아니라 과정이다. 언젠가 달성할 목표가 아니라 매일 실천하는 삶의 방식이다.


우리는 절대 완벽한 사람이 될 수 없다.


같이 생각해보자. 지금까지 완벽한 순간도 없었고, 완벽하다고 느낄 땐 기회가 사라지며, 더 할 수 있는 건 없지 않았나? 완벽할 때 더 잘해냈나?


물론, 밥을 먹듯 자연스럽게 일하는 경지에 완전히 도달할 수도 없을 것이다. 어떤 날은 여전히 힘들고, 어떤 날은 여전히 의욕이 없고, 어떤 날은 여전히 남과 비교하며 괴로워할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


중요한 것은 그 방향으로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는 것, 어제보다 조금 더 그런 사람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 그 길로 돌아가려 한다는 것이다.


되어가는 것이라는 말에는 자기 자신에 대한 연민이 담겨 있다. 아직 완벽하지 않은 나를 받아들이고, 서툰 나를 이해하고, 느린 나를 기다려주는 마음인 동시에 "되어가는 것"에는 희망도 담겨 있다. 지금은 아니지만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 매일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것, 언젠가는 더 자연스러워질 것이라는 믿음이 쌓여가는 오늘이길.




에필로그: 평범한 위대함

위대함은 번개처럼 내리치는 것이 아니라 물방울처럼 떨어지는 것이다. 매일 아침 밥을 먹듯, 매일 밤 잠자리에 들듯, 매일 책상 앞에 앉는 것. 영감이 없어도, 의욕이 없어도, 박수가 없어도, 그저 하는 것.


오늘 이 글도 평범하다. 희노애락도 없고 결코 드라마틱하지도 않다. 누군가에게 영감을 주거나, 타임라인을 장식할 만한 이야기도 아니다. 하지만 이 평범함이 어떻게 와 닿았을까?


20년 이상 한결같이 자신의 일을 해온 사람, 화려한 커리어 대신 깊은 실력을 쌓은 사람. 남의 인정보다 자신의 성장에 집중한 사람을 본 적이 있다. 그런 사람의 눈빛은 다르다. 모든것이 완벽하지 않아도 그 일만큼은 안정되어 있고, 흔들리지 않으며,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확신이 있다. 증명할 것이 없는 사람의 여유로움이 있다.


매일 밥을 먹고, 매일 잠을 자고, 매일 일을 하는 것처럼, 지극히 평범하지만 지극히 중요한 일이다.


언젠가 돌아보면, 그 평범한 날들이 모여 비범한 삶을 만들어 내고 싶기에 나는 매일 똑같은 일하며,

똑같은 꿈을 꾸며 하루를 보내고 있다.



2025.11.19. 흑감쟈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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