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간의 강제 단약

A형 독감에 걸려버렸다

by 피존밀크
타미플루를 드실 때는 항우울제를 드시지 않는 게 좋습니다.

A형 독감 확진을 알리는 의사의 말보다 타미플루 먹을 땐 항우울제를 먹지 말라는 약사의 말이 더 심각하게 다가왔다. 나는 출근을 하기 위해 항우울제와 불안장애약을 먹는 사람이다. 근데 이놈의 독감 때문에, 타미플루 때문에 출근필수템을 섭취하지 못한다.



나는 출근을 하는 주중에는 약을 먹지만 주말에는 먹지 않는다. 주말에 이틀 안 먹었다고 월요일에 난리 나는 일은 없었으니 며칠 안 먹어도 괜찮지 않을까, 이렇게 정신승리를 시전 했다. 몸이 아프다는 데 어떡하겠어, 정신이 좀만 버텨줘야지. 놓지 마 정신줄!



타미플루와 각종 독감약을 먹고 첫 하루를 보냈다. 의외로 일과 중에는 신체에 큰 변화는 없었다. 오히려 일과 이후 편안히 쉬고 있을 때 심장이 쿵쿵 뛰며 긴장되는 기분이 느껴졌다. 불쾌했지만 그래도 견딜만했다. 근데 이 견딜만하다는 기준은 내 기준이다. 이 불쾌함을 멀쩡한 타인이 느낀다면 굉장히 힘들 수도 있다. 고통의 역치가 과하게 높은 건 나의 직업병인 걸까, 뭘까 도대체.



본의 아니게 항우울제 없이 5일 이상을 살았다. 아직까지 별다른 이슈는 없다. 근데 이건 내가 3일 간 밖에 안 나가고 집콕만 하고 있기 때문에 마음이 편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오늘은 저녁때 잠시 밖에 나가야 한다. 항우울제를 먹을까 말까 고민했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단약을 할 수 있을까. 아니다, 1년 전에 단약 했다가 반작용이 대단했던 걸 넌 잘 알고 있지 않느냐. 단약은 의사가 하라고 할 때 해야지 내가 결정해야 하는 부분은 아니다.



이런 여러 가지 생각들이 줄다리기를 하다가 결국 "단약은 의사가 하라고 할 때 해야 한다."라는 마음의 소리가 이겼다. 5일 만에 항우울제를 입에 털어 넣는다. 오늘 오후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며 무척이나 고요한, 그런 평화로운 오후다. 그런 상황에서조차 나는 종종 괴로움을 느낀다. 그 고통이 밀물처럼 들어오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나는 오늘도 약을 들이켰다.



이토록 심약한 중년이라니, 참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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