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의 숙취

당분간 소주 금지

by 피존밀크




집들이에 가니 호스트께서 내가 사랑하는 빨뚜(진로 빨간 뚜껑)를 내놓으셨다. 그걸 보고 눈이 돌아간 나는 집주인과 함께 빨뚜와 초뚜를 번갈아 마시며 울고 웃는 시간을 보냈다.



다음 날 아침, 격한 손발 저림이 내 육신을 덮친다. 속은 엉망진창이고 도무지 일어날 수 없다. 남편이 배고프다고 비명을 지르길래 겨우 몸을 일으켜 식사 준비를 한다. 오늘의 메뉴는 얼큰 칼제비, 순전히 내 해장용이다.



해장을 끝낸 후 술에 찌든 몸을 소파에 누인다. 난 언제부터 이리도 빨뚜를 사랑했는가, 아니 언제부터 이렇게 술을 사랑했던가.



대학에 들어가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처음 먹어본 소주 맛은 마치 알코올램프 속 메틸알코올과 흡사했다. 왜 어른들을 이따위 음료를 마시며 행복해하는 걸까, 도무지 그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다만 과일소주는 달달하니 그 맛이 참 좋았다. 그래서 술의 쓴 맛에 약한 나는 과일 소주 피처를 시켜 친구들과 즐겁게 나눠 먹었다. 이렇게 글로 써놓고 보니 참 귀여운 술자리였구나.



그때의 나는 체력이 넘치고 넘쳤다. 12월 31일에서 1월 1일로 넘어가는 시간까지 호프집에서 술을 마시며 자리를 지켰었고, 심지어 그 다음날 첫 차를 타기 위해 지하철 역 화장실에서 오돌돌 떨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하면 그냥 택시 타고 집에 가면 될 것을 왜 쓸데없는 부분에서 돈을 아끼겠다고 그 시간까지 버티고 버텼던 걸까. 아마 건강과 체력이 넘쳤던 20대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중년이 된 지금은 어떠한가, 일단 나가서 술 먹는 게 부담스럽다. 술에 취한 육신을 끌고 집으로 들어오는 건 마치 마라톤을 하는 기분이다. 그래서 30대 중반부터 집술을 즐기기 시작했다. 그 쯤 코시국이 시작되었어서 자연스럽게 그리 되었다.



지금은 과일소주는 취급하지 않는다. 누가 줘도 안 먹는다. 중년의 술은 역시 빨뚜다. 한라산, 빨뚜와 같이 20도 정도의 소주를 먹어야 술을 마시는 기분이 든다. 맥주도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면 역시 소주다.



난 왜 소주를 좋아하게 됐을까. 어릴 때는 그렇게 쓰디쓰던 소주가 지금은 그냥 그렇다. 쓰긴 쓰지만 그 쓴 맛을 안주로 싸악 닦아주면 이렇게 개운할 수 없다. 그 쓴 맛과 안주의 앙상블이 나를 술독으로 안내한다.



술과 함께했던 행복한 시간, 그 시간이 지나가면 지독한 숙취가 날 지배한다. 어릴 땐 숙취라고 해봤자 반나절이면 다 지나갔다. 하지만 지금은… 심하면 일주일은 간다. 어제 먹은 술은 며칠짜리 숙취일까, 어째 나이가 먹으면 먹을수록 이 시간은 더 길어진다.



술을 마신 지 24시간이 지난 지금도 숙취는 여전히 날 지배한다. 두 번째 해장푸드인 감자탕을 끓이며 다짐한다. 당분간 술은 쳐다도 보지 말자고. 하지만 또 이 고통을 잊고 또다시 소주 뚜껑을 비틀어 까겠지, 그날이 올 때까지 당분간 소주 금지!



#별별챌린지

#글로성장연구소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