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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여옥 작가와의 추억

돌아와요 꿀단지엄마!

by 피존밀크




제목을 보고 화들짝 놀라 들어오신 독자님들, 전 투표권이 생긴 이래로 보수정당에 투표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그러니 안심하시고 해당 글을 읽으셔도 됩니다.



정치인 전여옥에 대한 나의 인상... 몹시 나빴다. 하지만 그녀를 마냥 미워하기엔 내 현생을 살기 바빠서 박근혜 당선 이후, 그녀가 어떻게 사는지 알 길이 없었다. 관심이 없기도 했었고.



그러던 어느 날, 박근혜 탄핵에 대한 이야기가 스멀스멀 나올 때로 기억된다. 전여옥씨가 TV 뉴스프로에 나온 것이다. 딱히 반가운 얼굴은 아닌지라 채널을 돌릴까 했었는데 마침 손가락 힘이 빠져 리모컨 버튼을 누르지 못했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는데... 쇳소리를 뱉을 것 같은 입에서 의외로 옥구슬 같은 목소리가 나오는 것이었다. 저 사람, 목소리가 저렇게 예쁜 사람이었던가? 그녀의 메시지만 보고, 목소리를 들은 적이 없어 그녀의 예쁜 목소리가 생경하게 들렸다. 어느 순간 나는 자세를 바르게 잡고 그녀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그녀는 과거 박근혜를 위해 일했던 자신에 대해 반성하는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보수주의자들이 어떻게 이 시국을 살아야 할지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했다. 그 당시 이 분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그 자리에 섰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굉장히 진솔하게 들었다. 앵커가 맨 마지막에 "전여옥씨는 어떤 명칭으로 불리고 싶으세요?"라고 질문했는데 그녀는 "그냥 전여옥 작가라고 불리고 싶습니다."라고 담백하게 말했다.



그 인터뷰를 본 후, 처음으로 그녀의 이름을 검색창에 쳐보았다. 그녀는 프로필에 블로그가 연동이 되어 있길래 그곳에 가보았다. 그녀는 자신의 블로그에서 '꿀단지엄마'라는 닉네임으로 자신만의 소소한 일상을 기록해나가고 있었다. 가끔 정치 이야기를 할 땐 날 선 모습을 보일 때도 있었지만, 자신의 일상을 이야기할 땐 특유의 아기자기한 언어로 반짝반짝하게 표현하고 있었다. 그녀의 글을 계속해서 보던 나는 어느 순간 그녀에게 친밀감 비슷한 것이 생겨버렸고 가끔 댓글도 달곤 했었다.



그 시절 나는 공부하는 백수였다. 근데 마침 그녀가 4년 간 백수생활을 했다고 하여 그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염치 불구하고 그녀의 블로그에 안부글을 남겼다. 내용은 아마도... '앞으로의 백수생활 어찌해야 슬기롭게 보낼 수 있을까요?' 글을 쓰고 반나절 정도가 지나자 그녀의 댓글이 아래와 같이 달렸다.






난 이 정성스러운 댓글을 읽고 또 읽었다. 그리고 캡처해서 꽤 오랫동안 간직했다. 유명인이 글을 써줘서 그런 것이 아닌, 진짜 어른이 힘든 청춘을 위해 진심을 다해 조언해 줬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정말이지 참 감동스러운 순간이었다.



그 뒤로도 그녀의 블로그에 열심히 들어갔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녀의 글이 읽기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자신의 일상보단 정치이야기를 많이 하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난 그녀의 글을 읽으며 힐링하고 싶을 뿐이었는데 그녀의 글이 업데이트 되는 것이 이제는 은근한 스트레스가 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결국 그녀와 블로그 이웃을 내 손으로 취소했다.



바쁘게 일상을 살아가던 어느 날, 뉴스에 전여옥이란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이 보였다. 해당 뉴스를 클릭해 보니 그녀가 암 4기 진단을 받았다는 내용이었다. 어찌 됐든 내가 힘들 때 날 위로해 줬던 사람이기 때문에 그녀에게 가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녀의 블로그를 오랜만에 들어가 봤는데 아이고야... 이게 뭔 일이래~ 내가 과거에 알던 그녀는 그곳에 없고 웬 애국투사 분이 끊임없이 피를 토하고 있었다.



그녀의 글 중 '진보세력들이 내가 암 걸린 게 벌 받은 거라고 이야기하고 다닌다'라는 뉘앙스의 글이 있었다. 그걸 보니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진보세력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래서 정말 큰 용기를 내어 그녀의 블로그에 안부글을 적었다. 해당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이런 뉘앙스의 글을 적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안녕하세요, 전여옥 작가님. 저 몇 년 전에 종종 댓글 달고 했었던 아무개입니다. 작가님이 아프시다는 소식을 듣고 정말 오랜만에 글을 써봅니다. 작가님, 실은 저와 작가님의 정치적 성향은 완전 반대입니다. 하지만 작가님은 제가 힘들 때 진심을 다해 위로해 주셨던 어른이었습니다. 덕분에 전 많은 위로를 받았고 하던 공부도 좋은 결실을 맺게 되었습니다. 이제야 감사드린다는 말을 드립니다. 그리고 지금 몸이 많이 안 좋으실 텐데요. 부디 치료 잘 받으셔서 건강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글을 쓰고 그녀의 댓글을 내심 기다렸지만, 현생을 사느라 바빴던 나는 내가 이런 글을 썼던 것을 잊고 지냈었다. 그렇게 살다가 남편에게 내가 이런 글을 그녀의 블로그에 올렸다고 이야기하자 남편은 어떤 댓글이 달렸냐며, 당장 확인하자고 말했다. 그래서 내가 쓴 안부글을 찾으러 갔는데 놀랍게도...



해당 게시물은 삭제된 상태였다. 오마이갓.



내가 쓴 글의 어느 부분이 그녀의 심기를 건드렸던 걸까. 이제 그녀는 나와 생각이 조금만 다르기만 해도 말을 도저히 섞을 수가 없는 그런 사람으로 변해버린 걸까. 진심으로 비애가 느껴졌다. 그리고 그녀가 너무 안타까웠다. 자신의 소소한 일상도 반짝거리는 눈빛으로 바라보던 꿀단지엄마는 이제 이곳에 없었다.



요즘 시국이 시국인지라 그녀의 블로그는 여전히 각혈 중이다. 그녀가 나에게 달았던 댓글 중에 '세상 여기저기 구경 다니다가 이제야 우리 집에 있는 내 작은 책상에 앉은 기분이다'라는 말을 본 기억이 난다. 지금 그녀는 어디를 구경하고 있는 것일까. 과연 좋은 구경거리일까, 그걸 보는 그녀는 행복할까?



그녀가 부디 암을 극복하여 건강을 회복하길 바란다. 이건 정말 나의 진심이다. 어서 건강을 회복하여 과거의 그녀처럼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고 지인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순간들이 그녀 인생에 끊임없이 펼쳐지기 바란다. 그러니 험난한 세상 구경은 이제 그만하시고... 어서 돌아오세요, 꿀단지엄마!



#별별챌린지

#글로성장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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