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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럽고도 달콤한 나의 도시, 부평

내가 30대 초반에 잠시 머물렀던 도시

by 피존밀크




20대 후반부터 자취를 시작했다. 하지만 자취하는 동네, 자취방 모든 것들이 맘에 들지 않았다. 동네는 동인천인 관계로 당시엔 매우 낙후되어 있었다. 자취방은 여러 군데 돌아다니지도 못하고 처음 본 그 집을 바로 계약을 해버려서 처음부터 맘에 들지 않았다. 주변에 함께 거주했던 이웃들도 뭔가 음산해 보였고. 그래서 자취를 시작함과 동시에 늘 이 동네와 이 집을 뜰 생각에만 가득 차있었다. 덕분에 그 집에 머물던 1년 정도의 시간 동안 혼자 살기 좋은 동네와 괜찮은 매물에 대한 정보를 많이 얻을 수 있었다.



이사 갈 동네는 부평역 인근으로 정했다. 내가 다음 기간제 교사 자리가 어디로 구해지던 부평역은 교통의 요지이기 때문에 뚜벅이인 내가 어디든 갈 수 있을 것이란 판단이 들어서다. 부평역 인근 오피스텔과 원룸을 열심히 서칭 한 결과 어느 복층 오피스텔이 내 눈에 들어왔다.



부평역까지 도보 5분 정도밖에 안 되는 엄청난 접근성, 가격 역시 그리 나쁘지 않았다. 무엇보다 대단지 오피스텔이라 매물이 늘 쏟아지던 곳이었다. 동인천의 원룸 계약일이 끝남과 동시에 난 눈여겨봤던 그 오피스텔로 쏜살같이 이사했다.






이렇게 복층으로 된 오피스텔이라 집 꾸미기에 대한 욕망이 가득했던 나의 꿈을 이뤄줬던, 마치 스케치북과 같았던 그런 집이었다. 예쁜 집, 훌륭한 교통환경, 밤낮이 따로 없는 유흥가 한가운데에서 30대를 시작하는 느낌은 너무나 좋았다. 앞으로의 30대는 이 귀엽고 멋진 집처럼 늘 운수대통할 것이란 희망이 샘솟기 시작했다. 정말 그랬는지는... 음...



그래도 이 집에 살며 참 많은 것들을 했다. 집 예쁘게 꾸미기, 맛있는 집밥 해 먹기, 친구 초대하기, 집 근처 영화관에 가서 야밤에 혼자 영화 보기 등등. 비록 나중에 갑자기 임용공부를 하겠다고 주경야독을 시작하면서 위에서 말한 것들을 모두 포기하게 되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 나에겐 이 귀엽고 따스한 보금자리가 있었기에 그 무엇도 부럽지 않았다.



지금은 이때 살던 부평을 떠나 어느 외딴 신도시 한 귀퉁이에서 살고 있다. 객관적으로 봐도 지금 사는 집이 이때의 집, 동네보다 훨씬 좋다. 하지만 난 여전히 이때 살던 오피스텔을 그리워한다. 이 아기자기한 공간이 그립기도 하고, 이 공간에서 살던 나의 30대 초반이 그립기도 하고.






그래서 부평역에 갈 일이 있으면 이 오피스텔 건물에 꼭 들러본다. 부평역 지하던전은 여전히 복잡하지만 3년을 이 동네 살았던 나는 내 오피스텔 가는 길목만큼은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오피스텔 1층, 이곳은 대단지 오피스텔이라 상가도 굉장히 크다. 끊임없이 펼쳐지는 다양한 가게를 보는 즐거움이 있어 난 이곳을 거니는 것을 참 좋아한다.



하지만 이 오피스텔도 이젠 슬슬 구축으로 접어 들어가고 있어 과거에 처음 이곳에 갔던 때만큼 반짝거리진 않는다. 어쩐지 상가들도 공실이 참 많다. 그 많던 부동산은 다 사라지고 이젠 정말 소수의 부동산만 남아있더라. 이렇게 나의 30대 초반의 추억이 바래지는 거 같아 뭔가 마음이 아련해왔지만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내가 아니듯 이 공간 역시 마찬가지겠지.



시간이 흐르며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오랜만에 놀러 온 나를 포근하게 안아주는 그런 도시, 내 인생에 이 도시에서 살았던 순간이 있었다는 게 참 좋다.



더럽고도 달콤한 나의 도시, 다음에 또 놀러 올게!



#별별챌린지

#글로성장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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