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도 닦는 방법
어제 오랜만에 핸들을 잡았다. 겨울 내내 여기저기를 누볐던 나의 애마는 이런 꼬질이가 없다. 볼일을 본 후, 집으로 돌아가면서 오토세차장으로 갈지 말지를 끝없이 고민했다. 내일 날씨를 확인한 후, 핸들을 세차장이 아닌 집으로 돌렸다. 내일 날씨, 그러니까 오늘 날씨가 굉장히 푹해지기 때문이었다. 이런 날은 손세차하기 좋은 날이다.
처음 인도받은 애마는 그 어떤 흠집도 없는, 무결함 그 자체였다. 그 고결함을 지키기 위해서 앞으로의 세차는 손세차만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셀프세차용품은 생각보다 꽤 비싸다. 그리고 손세차 과정은 굉장히 번거롭다. 물에 불리고, 거품에 불리고, 그 거품을 제거하고, 물로 헹구고, 타월 드라이하고, 코팅제를 바르고, 그 코팅제를 드라이 타올로 문질러 지워내야 기본적인 세차가 끝난다. 그리고 문 틈에 낀 물기를 제거하고, 내부세차를 하고, 타이어 광택을 내고... 손세차 비용이 왜 5만원 이상인지 충분히 이해되는 부분이다.
오토세차장에 가면 이 과정이 1분 내외면 끝난다. 결과도 그렇게 나쁘지 않다. 무엇보다 간편하다. 이런 면을 보면 손세차는 정말 번거롭고 성가신 일이다. 하지만 절대 포기하고 싶지 않은 일이기도 하다.
처음엔 이 차의 무결함을 유지시키기 위해 손세차를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은 이유가 좀 다르다. 몇 년간의 운행동안 이 차를 똥차로 만들어버려서 그런 것도 있지만, 비포 앤 에프터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이 과정이 나에게 엄청난 보람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난 직업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보람을 느끼며 살아본 적이 크게 없다. 한 줌도 안 되는 성과를 손에 쥐고 로또 1등 된 사람처럼 기뻐해야 했던 것이 전반적인 내 삶의 초상이다. 근데 이렇게 처음과 끝이 완벽히 달라지다니, 그것도 온전히 내 힘으로 해낼 수 있다는 것이 날 손세차의 세계에서 벗어날 수 없게 만든다.
과거 도인들이 도 닦는 방법은 무엇이었을까? '도를 닦다'를 사전에 검색해 보니 도덕적 이치를 깊이 깨닫기 위해 노력하는 일이라고 한다. 그래서 도를 닦는 방법을 검색해 보니 방법이 생각보다 다양하다. 모든 방법이 기본적으로 내 욕심을 비우는 자세에서부터 출발하는 것 같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사람에게 내가 추천해 줄 수 있는 도 닦는 방법은 바로 손세차다. 세상의 각종 찌든 때를 내 진심을 다해 닦아내는 것. 이 과정은 한겨울에도 땀이 뻘뻘 날 정도로 고단하지만 내가 고생하는 만큼 비워지고 비워진다. 결국 모든 것이 비워진 차를 바라보면 내 가슴속 응어리도 어느새 신기루처럼 사라져 있다.
도 닦겠다고 이 날씨에 산에 가는 것보단 셀프세차장에 가는 것이 도시인들에겐 더 나을 수도 있다. 마침 오늘 날씨가 손세차하기 참 좋은 날씨다. 시린 손을 호호 불며 함께 도 닦으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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