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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윤 Mar 12. 2022

가족애(愛) 꽃 그 자체

REAL flower-애니메이션 <코코>에서 나온 금잔화(메리골드)


애니메이션 <코코>를 본 사람이라면 화려한 금잔화의 향연을 기억할 것이다. 이곳저곳 상영 시간 내내 존재감을 뽐냈던 그 꽃들을! 나는 정말 궁금해서 미치는 줄 알았다. 꽃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저런 꽃이 있었나 의아스러울 정도였다. 알아보니 그 꽃은 번역상 금잔화일 뿐, 메리골드라는 꽃이었다. 멕시코에서 동양의 국화만큼 상징적 의미가 있는 꽃이다.     


<죽은 자의 날 축제 풍경. 촛불과 함께 메리골드가 놓여 있다.>

멕시코에서는 죽은 자의 날(Día de Muertos)이 부활절, 성탄절과 함께 최대 명절로 꼽힌다. 국경일로 지정되어 매년 10월 31일에서 11월 2일까지 각종 축제와 행사가 치러지는데, <코코>의 배경인 이 시기에 메리골드가 개화한다. 그러다 보니 멕시코에서는 메리골드가 전통적으로 망자를 인도하는 꽃으로 여겨져 꽃들을 장식하고 길가에 꽃잎을 뿌려 망자를 집으로 인도하는 풍습이 생겼다고 한다. 밝은 오렌지빛에 부스러지면 독특한 향기를 내뿜는 이 꽃을 두고 멕시코 사람들은 일종의 사이렌 역할이라고 믿었다나? 우리나라의 향처럼 메리골드의 향기가 죽은 자들을 불러들여 기다리는 가족의 품으로 안내한다고 여겼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메리골드의 꽃말은 남다르다. ‘슬픈 애정, 이별의 슬픔, 반드시 찾아오고야 마는 행복’. 특이하게도 슬픈 꽃말과 기쁜 꽃말이 공존하는 꽃들 중 하나다. 꽃과 꽃말만을 봤을 때는 몰랐지만, 멕시코의 전통을 떠올려보면 메리골드의 꽃말은 죽음에 대한 의미일 확률이 높다. 멕시코의 국민 화가 프리다 칼로의 일기를 보면 그 의미는 더욱 확실해진다. 프리다 칼로의 마지막 일기 중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이 외출이 행복하기를, 그리고 다시 돌아오지 않기를’     


그녀의 인생이 기구함을 떠나, 그녀의 말이 멕시코의 죽음에 대한 인식에서 비롯되었음은 부정할 수 없다. 프리다 칼로는 죽음을 끝이나 머나먼 세상으로 보지 않았다. 언젠가 맞이할 일이며, 행복할 수도 있는 일로 보았다. 만약 우리나라에 프리다 칼로가 있었더라면, 저런 말을 남길 수 있었을까? 나는 메리골드의 꽃말도, 프리다의 말도 멕시코 사람들의 죽음에 대한 생각이 평면적이지 않은 덕분이라고 본다. 누가 미구엘의 모험을 보고 무조건 섬뜩하거나 화려하다고만 할 수 있을까. 그 작은 소년의 분투기는 언뜻 재기 발랄하고 티 없이 빛나지만 음울하고 악에 차 있다. 메리골드가 죽은 자의 날 축제에 늘 쓰이는 꽃이어서가 아니라, 이런 미구엘의 이야기에 참 적절한 꽃이라서 영화에 나올 법하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메리골드는 그런 꽃말만으로 <코코>에 등장한 게 아니다. 또 다른 의미가 있다. ‘가족’이라는 의미다! 망자의 꽃답게, 메리골드는 가족을 이어준다. 멕시코에선 누구나 세 번의 죽음을 맞이한다고 여긴다. 숨을 거둘 때 첫 죽음이, 땅에 묻힐 때 두 번째 죽음이, 고인을 잊지 않고 추억하던 사람마저 세상을 떠났을 때 마지막 죽음이 온다고…. <코코>를 포함해 대부분의 마지막 죽음이 오는 순간은 자신을 기억하는 가족이 죽은 순간이다. 그러니까 달리 말하면 세상을 떠난 가족을 추억하기만 해도 망자는 가족을 다시 찾아올 수 있다. 메리골드 길을 따라 가족과 재회하는 것이다. 그렇게 떠난 이도, 남은 이도 함께 어우러진다. <코코>에서 나온 것처럼 말이다. 

<고인의 기타를 훔쳐 건드리면서, 죽은 자의 세상으로 떠나는 순간. 꽃잎들이 빛나며 흩날린다.>
<죽은 자의 세상에서 가족들의 도움으로 메리골드 꽃잎을 받아, 돌아갈 희망을 얻는 미구엘>

메리골드의 꽃바람에 휘말려 죽은 자의 세상으로 향한 미구엘은 메리골드 꽃이 있어야 돌아갈 수 있게 된다. 위험하고 위태롭지만, 미구엘은 증조할머니 코코의 한에 가까운 소원을 풀어 코코가 기다리던 아버지를 집에 데려온다. 헥터의 사연을 밝히고, 마마 이멜다와 헥터를 화해시키고, 헥터가 마지막 죽음을 마주하지 않도록 코코의 기억을 일깨운다. 그러다 영원히 죽은 자의 세상에 갇힐 위험에도 처하지만 헥터가 사수한 메리골드 꽃잎으로 집으로 돌아온다. 메리골드가 먼 가족들을 이어준 다리가 된 것이다. 영화에 나오는 거대한 메리골드 다리가, 심리적 거리도 이어줬다.  

   

가족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미구엘이 메리골드의 도움을 받았다면, 이멜다는 가족의 상처를 딛고 가족을 지켜 나가야 했다. 그런 그녀의 옷에는 메리골드 장식이 있다. 냉정히 말하면 헥터는 자신의 꿈을 위해 가족을 떠난 게 사실이다. 이멜다는 그런 헥터와 반대로 가족을 지켜 가족의 가장이 되었다. 완고하고 근엄한 그녀의 모습에선 언뜻 가족에 대한 애정을 보기 어려울 수 있지만, 미구엘 덕분에 헥터와 다시 만나며 감상적인 부분까지도 회복한다. 미구엘도 이멜다도 메리골드라는 꽃이 아깝지 않은 가족의 구성원이라는 게 잘 보인다. 

     

메리골드의 전설은 이런 가족의 이야기와는 거리가 멀다. 여인이 짝사랑의 질투로 죽은 후 피어난 꽃이거나 태양을 흠모한 청년이 구름 때문에 보지 못하자 죽은 자리에서 피어난 꽃이 메리골드다. 어쩌면, 가족 간의 사랑은 반드시 소통을 해야만 그 의미를 가지기 때문에 그 교훈을 간직하고자 외사랑의 면모를 보인 두 전설이 지금까지 남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결국 <코코>에서도 미구엘의 집에 금잔화가 진정으로 꽃 폈던 건 헥터와 미구엘, 코코의 단절된 소통이 이어진 후가 아니었던가. 가족에 대한 소통과 사랑을 메리골드 하나로 표현하는 게, 최고의 영화 소재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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