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L flower- 소설 <동백꽃>에 나온 동백꽃(생강꽃)
“느 집엔 이거 없지?”
이 짧은 질문을 모르는 사람은 우리나라에 없을 것이다. 이름하야 한국형 츤데레라고 불릴 정도로 속마음을 새침하게 표현하기로 유명한 구절이니까. 저 한 문장 때문에 속을 끓이고 끓이다, 남의 집 닭하고 싸움까지 시키는 점순이는 정말 사랑에 한 몸 바치는 열혈 사랑꾼이다. 결국 온몸으로 좋아하는 남자애와 넘어지지 않던가! 노란 동백꽃 속에서 두 소년 소녀의 얼굴은 붉어졌다는 표현이 여전히 선명하게 남아있다. ‘노란 동백꽃’이라는 모순된 묘사 덕분인지는 몰라도 말이다.
노란 동백꽃이라니. 당혹스러웠다. 내가 아는 동백꽃은 언제나 선홍색의 탐스런 꽃송이뿐이었는데. 내가 모르는 동백꽃의 종류가 있나 싶었다. 처음 느끼는 충격에 혼란스러워하다 수업 시간에 알게 된 정체는 더 의외였다. 생강나무 꽃이라니. 이름도 생소하고 정체도 낯선 그 꽃은, 알고 보니 강원도에서 사투리로 동백꽃이라고 불리는 꽃이었다. 애당초 동백나무 꽃의 북방한계선은 충청남도와 전라북도 경계 금강 즈음이라고 한다. 그러니 훨씬 북쪽인 한강 이북에 살았던 김유정이 자생하는 동백꽃을 글에 썼을 가능성은 적다. 지금도 강원도민의 상당수는 동백꽃이 빨갛다고 하면 놀라는 경우가 많단다. 사실 생강나무 꽃과 헷갈려야 할 꽃은 따로 있다. 바로 산수유꽃이다. 사진을 보아도 두 꽃들은 구분하기 힘들다. 잎보다 꽃이 먼저 피어나 봄을 알리는 것까지도 똑같아 향과 열매, 자생지만 차이 날 뿐이다. 물론 산수유꽃에선 진짜 산수유가 달리지만, 생강나무 꽃에선 생강이 달리지 않는다. 나무를 베어낼 때 생강 냄새가 나는 탓으로 생강나무란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생강나무는 정말 쓸모가 많은 나무인데, 그 때문인지 환웅이 하늘에서 내려올 때 환인이 나라를 염려하여 선물한 나무란 전설이 있다. 나무껍질은 산모의 기력 회복에 도움이 되고, 잎은 차로 끓이고, 열매는 머릿기름으로 쓰이니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나. 실제로 생강나무의 나무껍질은 한방에서 약재로 사용되는데 타박상의 어혈과 산후에 몸이 붓고 팔다리가 아픈 증세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이를 감안하면 작가는 신분 차이가 있는 점순이와 ‘나’를 이어주는 데 도움이 필요하다고 보아 동백꽃 근처에서 둘이 만나도록 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토록 이모저모 도와주는 식물이라면 이 소년소녀의 관계를 도와줄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말이다.
우연인지 몰라도 생강나무 꽃의 꽃말 역시 점순이와 아주 비슷하다. ‘수줍음’ 혹은 ‘사랑의 고백’. 점순이는 쾌활하고 당당한 면모가 돋보이는 아이지만, 사랑 앞에선 그런 모습이 좀체 보이질 않는다. 되려 평소와는 다르게 온 세상의 수줍음을 끌어모은 모습이다. 생강나무의 꽃말을 이렇게 보여주나 싶을 정도다. 점순이만큼 이런 의미가 가득한 인물이 또 있을까. 점순이는 소작농의 아들과 마름의 딸이란 신분 차이를 개의치 않는다. 사람들 앞에서 마냥 수줍어하는 성격도 아니고, 자기 할 일도 제법 야무지게 처리한다. 마을 사람들의 이쁨도 받아 정말이지 괜찮은 며느릿감이고 만인의 귀염둥이라 할 만하다. 그런 점순이에게 뜻하지 않았다고 한들 첫 면박을 준 사람이 하필 좋아하는 남자애다. 씨근거렸다는 ‘나’의 말만 들어도 얼마나 부끄럽고 분했을지 짐작이 간다. 보통의 여자애들이었다면 이쯤에서 ‘나’와 최대한 피해 다녔을 것이다. 창피를 당했으니 얼굴을 보려고도 하지 않았을 거고, 어쩌면 부끄러움이 증오로 변해서 싫어하게 되었을 수도 있다. 괘씸한 마음이 들어 몰래 부모님한테 일렀을 수도 있고.
하지만 점순이는 그러지 않았다. 절대 ‘나’를 피하지 않는다. 오히려 닭싸움을 붙여 ‘나’와 만날 계기를 만든다. 욕설과 짓궂은 놀림을 계속해 가며 ‘나’를 계속 도발하는 걸 보라. 그 과정에서 ‘나’는 점순이를 싫어하게 되지만, 그건 생각보다 긍정적인 신호다. 첫 대화에선 점순이를 쳐다보지도 않고 일 없다던 애였다! 어느 유명한 드라마의 대사처럼 사랑의 반대말은 증오가 아닌 무관심인 법이다. 짜증이든 신경질이든 ‘나’는 점순이에게 관심을 쓰게 되었다. 그게 극에 달하자 결국 닭을 때려죽이면서 ‘나’와 점순이의 갈등이 절정을 향해 달려가지만, 점순이는 이때 또 한 번 대단한 면모를 보여준다. 닭 죽은 건 말 안 할 테니 자기 말을 들으란 맹랑함을 누가 짐작이나 했을까! 언제 보아도 표현이 서툴 뿐, 아주 제대로 사랑하는 사람의 태도다.
두 소년소녀는 그렇게 알싸하고 향긋한 꽃 사이에 파묻힌다. 그 순간 ‘나’는 아찔함을 느낀다. 과연 그 아찔함은 생강나무 꽃의 짙은 향기였을까? 아니면 점순이의 사랑을 마주한 ‘나’의, 강렬한 첫사랑에 빠지는 감상이었을까? 생강나무 꽃의 꽃말은 점순이보다 ‘나’에게 어울릴지도 모른다. 그 무뚝뚝한 남자애의 성격은 달리 보면 수줍음이고, 결국 생강나무 꽃에 파묻히며 사랑의 고백은 해버린 것이나 다름없으니까. 어린 연인이 서로를 제대로 마주하는 순간이 생강나무 꽃 속이라니 어울리는 풍경이다. 이런 이유로 작가님은 제목을 굳이 동백꽃으로 설정하셨을지도 모른다. <소나기>라는 작품도 보면 어린 소년소녀의 사랑이 소나기 속에서 마주하지 않았던가. <동백꽃>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 두 작품 다 제목에 나오는 순간에 서로가 유일하게 있어서 소중한 추억이 되었던 걸 보면 더더욱 그 생각에 무게가 기운다.
가끔 결말 이후의 인물들의 모습이 궁금할 때가 있다. 하지만 <동백꽃>의 점순이와 ‘나’는 그리 걱정되지 않는다. 그리 생활이 풍족한 것도 아니고 관계가 무지갯빛인 것도 아니지만, 둘은 이미 강렬한 고백을 겪어서 만일 이별을 했어도 미련이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생강향이 얼마나 짜릿한가. 아마 둘은 헤어지더라도 서로에게 평생의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흔한 이야기일지 몰라도 막상 되기는 어려운 그런 풍경으로…. 절대 잊히지는 않을 순간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