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킬미힐미

조각나버린 삶과 마음을 다시 이어 붙이다.

by 앨리쨔

"기억해 2015년 1월 7일 오후 10시 내가 너에게 반한 시간."


정말 말그대로 10년째 기억해두었다.

무거운 듯 가볍고 즐거운 듯 슬픈,

필자의 최애 드라마를 소개한다.


극본: 진수완

연출: 김진만, 김대진

배우: 지성, 황정음, 박서준

이미지 및 정보 출처: mbc 공식홈페이지



누구를 죽이고 누구를 살릴 것인가

이게 무슨 햄릿 같은 소리냐고? 바로 주인공 차도현(배우: 지성)의 이야기이다. 도현은 재벌 3세로, 똑똑하고 잘생겼으며 예의까지 바른 사람이다. 완벽해 보이는 그에게 비밀이 하나 있었으니. 인격이 무려 7개로 갈라진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다는 것이다. 재벌이라. 되어본 적은 없지만 그 어깨에 온갖 책임과 돈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는 것은 알만하지 않는가? 도현은 집안에 누를 끼칠 것을 염려해 늘 숨기려 전전긍긍 한다. 어느 순간에는 정말 숨겨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를 만나고 그 안의 인격들이 미쳐 날뛰기 시작한다. 바로 오리진(배우: 황정음)이다. 정신의학 레지던트 1년차의 그는 바쁜 와중에도 쌍둥이 오빠 오리온(배우: 박서준)이 사고치고 튄 것을 잡으려 나섰다가 도현을 우연히 마주치게 된다. 의도치 않게 도현의 인격들(세기, 요나, 요섭, 나나, 페리박, X, 순서가 이상한가? 맞다. 애정하는 순이다.)이 행하는 기행들을 목격하며 리진은 도현과 가까워진다. 어찌저찌 이어지는 인연에 도현은 리진에게 비밀 주치의를 제안한다. 자신이 아닌 다른 인격을 죽여달라는 도현의 부탁. 리진, 과연 그 많은 인격들을, 아니 도현들(?)을 죽이고 치료할 수 있을까?



볼만한 이유 1: 연기의 신 지성과 코미디 왕 황정음

사실 오래된 드라마의 후기를 가져온 것은 올해가 10주년이고, 이 드라마를 가장 좋아한다는 필자의 말에 " 의외로 막장 드라마를 좋아하시네요?"라는 반응을 마주했기 때문이다. 상대방이 무례하게 필자의 취향을 까내리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고 본 드라마를 정말 그렇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전반에 깔려있는 코믹한 요소들과 재벌이라는 설정으로 인한 오해가 아닌가 추측한다.

사실 그게!!! 다가!!! 아닌데!!!!!! 본 드라마의 묘미는 그런 막장(이거도 동의할 수 없지만,) 요소들이 무거운 주제와 이루는 밸런스이다. 그리고 그것이 가능하도록 만드는 주인공들의 탁월한 연기가 있다. 먼저 지성 배우는 7개의 인격을 마치 얼굴만 같은 다른 사람인양 연기한다. 너무나도 연기를 잘해버리는 탓에 드라마를 보다 인격 개개인(?)에 정이 들어버렸을 정도다. 리진에게 인격들을 없애달란 부탁을 할 때는 '세기는 안돼'라고 생각했던 것은 다 쓸데없이 연기를 너무 잘한 지성 배우 때문이다. 황정음 배우는 코미디 왕, 코미디 대장이라고 부르고 싶다. 자칫하면 어두운 쪽으로만 쏠릴 수 있는 이야기들을 자신만의 매력으로 귀엽고 가볍고 사랑스럽게 표현한다. 황정음 배우가 만들어 놓은 이 코믹한 바탕이 후에 점점 더 무거워지는 이야기들을 더욱 아프고 안타깝게 만든다. 100번 말해 뭐 하는가. 그 무겁다는 이야기와 연기쇼가 궁금하다면 일단 영상으로 확인해 보시라.



볼만한 이유 2: 뭘 먹고 살면 대사를 이렇게 잘쓰지?

필자가 이 드라마를 가장 사랑하는 이유이자, 아직도 겨울이 되면 돌아보게 하는 이유다. 맨 앞줄에서 언급한 대사를 보고 오글거렸는가? 부럽다. 그렇다면 당신은 이 드라마를 보지 못한, 필자가 사고싶은 눈을 가졌다. 마음이 아픈 자들에게 건네는 작가의 따듯한 메세지들이 콕콕 마음에 박혀서 아마 드라마를 보고 나서는 '기억해'라는 단어만 들려도 눈물이 솟을 것이다. 우울감과 항상 싸워 이겨내고 있는 필자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다른 이들도 그런 위로를 받았으면 한다.


볼만한 이유 3: K드라마의 근본이자 미래

K어쩌고의 향연인 현재의 트렌드를 보며 한국 드라마가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음을 실감한다. 이렇게 세계로 나아가는 K드라마의 장점이자 특징은 무엇일까? 나름 이 분야를 사랑하고 공부하는 사람으로써 정리하자면, 재미를 놓치지 않으면서 사회적 메세지가 담긴 것이 큰 특징이라 할 수 있겠다. 다른 국가의 드라마에서처럼 성적인 자극만 추구하거나 연애 얘기만 하며 오락적 이야기만 다루는 것이 아닌 묵직한 메세지가 곁들어 있다. 그렇다고 메세지만 있느냐? 그럴리 없지. 재미가 없으면 흥이 많은 한국인들 성에 차지 못한다. 킬미, 힐미가 그런 특징을 가지고 있다. 재벌 3세와의 로맨스를 다루면서도 우리의 마음속 상처들을 떠올리게 하는 놀라운 재주가 있다. 마리의 토끼를 잡는 것은 어렵다는데 킬미 힐미가 해냈다.

본 드라마는 예술성이 무척 뛰어난 것은 아니다. 다만 K 드라마가 가져왔고 앞으로 가져가야 할 특성이 반짝거린다는 점에서 볼만하다고 추천한다. 개인적으로 '이게 바로 드라마지' 라고 표현하고 싶다.


한줄평(★★★★★)

일곱 갈래로 찢어진 마음이 다시 모여 무지개가 되는 이야기.


- 이 부분을 남길까 말까 고민하다 남긴다. 브런치에서 글을 쓰는 것이 누군가에게 필자의 소박한 취향을 추천하기 위함도 있지만 지금껏 보아왔던 나의 모든 주인공들에게 보낼 수 없는 편지를 대신 하기 위해서 쓰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을 갈기갈기 찢어가며 누군가를 지켜낸 용기로 이젠 자기 자신도 잘 지키며 살고 있기를. 10년이 지난 지금도 어디선가 리진과 도현이 함께하며 행복할 것이라 믿는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검은 수녀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