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Old 엄마의 장점

Old의 사전적 의미: 늙은, 오래된, 낡은

by 루나케이

학부 2학년부터 대학원 생활 5년 하면 연구실 생활 도합 8년을 견뎌내고, 10여 년의 외국 유학생활도 다 이겨내고 한국으로 돌아와 입사한 연구소에서 내가 받은 첫 질문은 " 어머 결혼하셨다면서요? 그럼 애들은요? 몇 살인가요? 애도 아니고, 애들 이란다. 너무 황당하기도 했고, 일부러 그러나 싶어서 화도 났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지금은 글쎄, 엄마 연구원들은 어쩌면 나와 공감대를 찾기 위해 꺼내 든 화두였을지 모른다는 아주 따뜻한 배려이지 않았을까라고 해석하고 싶다. 당시에는 대답도 제대로 안 했던 것 같은데..


1. 생물학적으로 "늙은" 엄마의 장점: 나를 향한 모든 것들에 감사하다.

43세에 출산을 하고 1년간의 육아를 해본 생물학적 Old 엄마는 임신과 출산 그리고 아들 육아를 아직까지 할 수 있는 신체를 주신 하늘에 감사하고, 많은 것들이 젊은 엄마들에 비해 늙어서 불편했을 텐데 나와 함께 10달 잘 살고 건강하게 태어나준 아들에게 감사하고, 아직 남은 40년 아니 50년을 더 건강하게 체력을 단련해서 너와 함께 보낼 시간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손목, 허리, 어깨, 네가 지나간 자리 마디마디 너의 흔적들은 아픔이 아니라, 너에 대한 기억이기에 너의 그 넘치는 건강함에도 난 감사한다. 처음으로 늙어간다는 사실이 두렵기만 하던 임신을 기다려온 시간들은 참으로 많은 포기와 선택을 하게 했다. 모두에게 동일한 시간이 나에게만 왠지 야속하게 흘러가고 나만 더 빨리 늙어가고 있는 것 같았다. 반복되는 기대와 후회로만 가득했던 그 시간들이 지금 생각해보니, 감사함을 알게 해 준 고마운 시간들이었다. 그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 나는 늙었지만 하나도 서글프지 않다. 내 마음은 늘 꽃밭이다. 너와 함께 하고 있는 이 순간순간이 봄날이다.


2. 연식이 "오래된" 엄마의 장점: 사회생활 20년과 1년의 육아, 웬만하면 다 참고 내가 한다.

사회생활이 힘든 건 대부분 인간관계이고, 육아는 24시간 대기조에 대부분 외로운 독박이다. 관계는 풀 수도 있고, 접을 수도 있고 어떤 형태로든 내가 마음먹기에 달렸다면, 육아는 내 의지 따위는 필요 없고, 한 사람의 성장에 평생 같이 익숙해져 가야 하는 더디고 더딘 시간과 체력의 싸움이다. 긴 시간 사회생활은 나 답게 일하는 것에 포커스를 두고 살면서 끝없는 도전과 실패, 반복되는 경쟁과 실망, 다른 길의 선택을 위한 포기와 같은 하나를 얻기 위한 하나를 어쩔 수 없이 내려놓는 씁쓸한 일들의 일상이었다. 임신은 새로운 경험에 대한 설렘과 선택받은 삶과 같은 감사함의 연속이었고, 출산은 두려움과 아기와의 첫 이별임과 동시에 다른 형태의 만남이라는 초고조의 떨림을 선사했다. 그러나 육아는 시작부터 모든 것들이 실패의 연속이었고, 오뚝이 같은 도전이었으며, 남편에 대한 실망으로 가득 찼으며, 매일 포기했다 내려놓기를 반복했다. 동시에 매일매일 아기의 새로운 모습은 늘 설렘이었고, 아름다웠고, 축복이었으며, 나만 이런 세상을 이제야 알게 된 게 너무 억울하고 속상하기까지 했다. 어떤 말로도 표현이 안 되는 턱밑까지 숨이 차서 가슴 벅찬 이 기분으로 평생 살 수 있을 것 같다. 기회가 된다면 엄마가 되어 보는 경험은 포기하지 말기를 조심스레 권한다. 엄마에게 아기는 앞으로 살아갈 남은 날들이 어떤 모습이든 참고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힘을 주는 것 같다. 특히 나처럼 긴 시간 사회생활로 잔뼈가 굵은 늦깎이 엄마에게 육아는 웬만하면 다 할만한 일들이다. 왜냐면 힘들어도 행복하니까.


3. 여기저기 "낡은" 엄마의 장점: 새로운 경험은 다 좋다. 그게 무엇이든 말이다.

조리원에서 내 나이에 첫아기를 출산한 엄마는 나 밖에 없었다. 친정 근처에서 출산을 해서 주변에 아는 사람도 없고, 잠도 실컷 내 맘대로 자고, 눈뜨면 밥도 주고, 빨래도 해주고 세상 이런 천국이 없었다. 머무를 수 있는 기간이 최대 2주라는 것이 가장 아쉬웠다. 그래서 안내 데스크에 구차한 변명을 해가며 난 어렵게 일주일 더 연장을 하게 되었다. 캬~ 너무 신났다. 그런데, 그 옆에서 건드리면 울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던 엄마가 대뜸 나한테 물었다.


"여기 견딜만하세요?" 헐... 견디다니 이게 뭔 소리인지... 내 귀에는 "너는 뭐가 그리 행복하니"로 들렸다.

" 여기요? 저요? 저... 어.. 완전 네.. 좋아요.. 저는 군대 체질이라 하하하하"

너무 민망해서 그냥 혼자 막 개그를 치고 하는데도 뚱하시다.

"저는요 아침마다 밥 먹는 것도 싫은데 자꾸 주고, 모유는 안 나오는데 자꾸 주라고 하니까 힘들고.. 코로나라 나가지도 못하고 남편도 못 들어오고 여기 감옥 같아요.. 흑흑 저는 그래서 조기 퇴실해요 위약금도 물고요"


이 어린 엄마는 지금 이곳이 제일 힘들어 보였다. 정말 나가고 싶어 했다. 혼자 있는 시간이 견디기 힘들다고. 내 유학 시절이 생각났다. 집값이 워낙 비싼 싱가포르는 월 월세 개념으로 방 하나를 랜트해서 한집에 방마다 다른 사람이 같이 사는 형태가 정착되어 있었다. 백만 원이 넘는 돈을 매달 주고 방하나 빌려 화장실과 부엌도 같이 써야 하고, 매 끼니 밖에서 해결하거나, 책상에 앉아 컵라면 정도 먹으면서 나가지도 못하고 작은 방 감옥에 갇혀 있던 기분.. 알 것 같았다. 혼자 있는 시간이 가장 힘들었던 일요일 저녁 5시에서 6시 사이 석양... 어떤 상황이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혼자 있는 시간을 견디기 힘들다는 그 심정이 뭔지 알 것 같아서 순간 나도 멈칫했던 것 같다. 어쩌면 혼자 있는 시간을 처음 겪었던 내 나이 서른이 지금 이 엄마도 처음 일지도 모르겠다. 사무치게 외롭고 혼자 다 짊어지고 가야 할 것 같은 무게감... 이해가 되었다. 지난 시간 내가 경험한 일들을 이제야 겪고 있구나.. 여기저기 부딪혀 가며 낡은 나는 이제야 엄마가 되었지만, 지금 나에게 일어나는 엄마여서 다가오는 새로운 모든 세상이 다 좋다. 조금 더 침착할 수 있고, 작은 것들 하나하나가 소중하다. 시간이 부족해서 마음이 급한 게 아니라, 준비가 덜 되어서 마음이 급하니까 시간이 부족한 것이다. Old 엄마가 아닌 준비된 Gold 엄마가 되기 위해 어떤 새로운 일도 받아들일 자세로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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