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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나케이 Jun 17. 2022

도전한다는 희망고문
실패했다는 주홍글씨

내가 패배한 게 아니라, 내 부족함이 실패한 것이다.

사실은 많이 안 괜찮다. 누군가에게 하소연도 하고 푸념도 하고 화도 내고 싶었다. 그런데 막상 말이 안 떨어지는 나를 보자니, 이 화제를 끄집어낼 용기도, 다시 털고 일어날 자신도 없었던 것이다. 


연이은 실패는, 그냥 한번 내 던져본 도전이 아닌, 막다른 골목에서 살기 위해 고개 들어 한줄기 빛을 향해 달려들었던 그런 도전의 실패는 아프다기보다 다음 살길이 보이지 않아 말문이 막힌다.


다음도 두렵지만, 방법이 없어 도망도 못 치고 이 자리에 서서 기약 없는 다음을 하염없이 준비해야 한다. 


에피소드 실패#01

나 같은 연구교수는 강의로 밥벌이를 하는 것이 아니라, 연구할 돈을 어디서든 따와야 연명이 가능하다. 막상 3월부터 복직을 하려고 하니, 좋기도 하면서 당장 앞으로 어디서 연구비를 따와야 하나 하는 무거운 마음도 있었다. 지난 2월 복직 전에 우연히 아는 교수님을 통해  정부 과제 공고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연구 업적이나, 새로 시작할 연구분야를 접목해서 준비하면 해 볼만 하지 않을까라고 생각이 들었다. 과제 공고 요강을 통해 제일 먼저 자격 요건부터 확인했다. 혹시나 비전임은 제외라는 규정이 어디 있나 조마조마하면서..


일단 제출은 가능하다는 판단이 들었다. 제출 마감이 그런데.. 일주일밖에 안 남았다. 아.. 너무 늦게 알게 된 사실이었다. 이를 어쩐다.. 주말까지 빡빡하게 계산해도 겨우 일주일이다. 남편과 상의하고 난 2월 말 일주일 내내 출근했다. 거의 2년 만에 연구과제를 쓰려니, 모든 것이 더디고, 어설프고 시간은 2배로 들었다. 결국 퇴근 후 아들을 재우고 새벽까지 3~4시간씩 자며 과제를 마무리했다. 1차 서류 심사 통과를 하면 2차 과제 발표를 통과해야 된다. 첫 페이지를 거의 하루 반나절 이상 잡고 안 넘어가던 날, 그냥 내지 말까 생각을 했었다. 끝까지 해낼 자신이 없었다. 


그런데.. 여기서 그만두면 앞으로 자꾸 중간에 그만두게 될까 봐, 내가 나를 포기한 사람이 될까 봐, 육아를 핑계 삼아 자꾸 피하게 되면, 아들도 남편도 내 모든 생활을 부정하게 될까 봐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일단 제출 완료에 목표를 두자 했다. 우여곡절 끝에 제출하니, 후련하고 대견했다. 딱 1차만 통과해서 발표 기회라도 주어줬으면 좋겠다 하고 목표가 한 단계 더 가고 있었다. 과제 제출 하루 다음날 난 복직을 했다. 나름 뭔가 모를 뿌듯함과 "나 아직 안 죽었네 에헷" 하는 뭐든 도전할 수 있을 것 같아 어깨가 으쓱했다. 기대 없이 흐르던 어느 날, 문자가 왔다. 1차 통과해서 2차 발표평가 준비하라는 문자였다.   

날아갈 듯이 기뻤다.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간 것 같았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도전한 나에게 가장 큰 칭찬을 해주고 싶었다. 안될 줄 알았는데.. 정말 조금만 더 준비하면 진짜 될 것 같았다. 죽을힘을 다해 준비했다. 그런데, 너무 떨렸다. 긴장하지 않는 편인데, 온라인 발표가 너무 오랜만이라 그런지.. 화면에 내 얼굴 보는 것 보차 힘들었다. 빨리 끝났으면 했다. 너무 떨어서 뭘 보고 발표를 한 건지.. 너무 외웠던 탓에 15분도 안 걸려 발표를 마쳤더니 10명 가까이 되는 심사위원의 오디오 겹치기까지 하면서 질문 공세를 해댔다. 오히려 나는 발표보다 질의응답이 더 편했다. 차분히 성의껏 대답했다. 그런데.. 본인은 안다 이미 발표를 마칠 때쯤 오는 세~한 기분.. 이 분야 몸 담은 지 나도 거의 20년이 되어간다. 나름 판단이 선다. 


질문이 많으면, 내 발표를 전혀 못 알아 들었거나 정말 흥미가 많거나 이고, 질문이 없으면 정말 별로이거나 아니면 진짜 완벽하게 발표를 했거나.. 주로 전자인 경우가 많다. 내 경험상 나는 그랬다.   


그리고 또 하나, 주로 합격이나 선정과 같은 좋은 소식은 발표 기간 전에 유선상으로 따로 연락이 온다. 불합격이거나 미선정은 발표 기간 지나서 아니면 거의 마지막에 문서로 연락이 온다. "홈페이지 결과 참고"


내 감은 맞다. 특히 안 좋은 쪽으로 거의 100프로다. 용한 점쟁이도 좋은 일은 잘 못 맞추어도 나쁜 일이 일어날 것 같은 건 웬만하면 다 맞춘다. 그리고 우리가 점쟁이가 던진 미끼 같은 말에 답을 다 주는 경우도 많다.


꽤 힘든 시간을 보냈다. 미선정 결과를 받아보고 좀 충격이었다. 내가 될 거라고 기대를 했었다기보다 정말 되기를 너무 간절히 염원했었다. 1년에 과제를 쓸 수 있는 기회는 특히 자격 요건까지 맞추어 제출할 수 있는 기회는 너무 드물기 때문에 정말 선정만 되면 앞으로 2년은 연구비 걱정 없이 정말 열심히 연구할 거라 다짐했다. 역시나.. 결과는 아프다. 나라는 사람은 안된다는 것처럼 꼬여서 들리는 이 메시지는 꽤 오래간다. 뭔가 부족했다고 인정하고 받아들이기까지 먼지라도 일지 못하도록 잊은 것처럼 덮어둔다. 다시 생각날 때까지..


에피소드 실패#02

인생이 그렇듯 계획대로 잘 안 되는 걸 알면서도, 무계획으로 살 수도 없다. 큰 틀속에 고삐는 놓지 말아야 흔들려도 다시 빠짝 당겨 중심을 잡고 나아갈 수 있다. 어디까지나 교과서적인 말로 나를 다듬는 과정일 뿐이다. 사실은 번아웃이 왔었다. 밤을 새우다시피 준비한 모든 시간을 부정받는 것 같아서 속상했다. 당분간 과제는 내지 않기로 했다. 연구비 없으면 그냥 땅 파서 연구하면 되지 뭐 하고 먼발치 남일처럼 말했다. 그렇게 살고 있던 어느 날 갑자기 문자가 하나 왔다.   

전 직장에서 온 문자다. 지금 퇴사한 회사에 나보고 연구과제를 제출하라고 문자를 보낸 거야? 혹시나 잘못 보낸 게 아닌가 해서 문자를 보냈다. 오랜만이라는 인사와 함께.. 바로 회신이 왔다. 타기관에서도 지원이 가능한 과제라 혹시나 관심 있으시면 지원해 보시라 보냈다고 했다. 이건 받지 말았어야 했다. 기회조차 얻기 힘든 내가 지원할 수 있는 과제가 확실하다. 내가 누구보다 잘 안다. 단 하나 전 직장이다. 과제 평가기관이 전 직장인 것이다. 부서장부터 연구원까지 나를 다 아는 그곳에 지원을 해야 하나.. 객관적 평가로는 확률 50:50이지만, 나의 짬밥으로 봤을 때, 미선정 확률이 더 높다. 그러나 모르는 일이다. 늘 그렇듯 과제는 제출 종료 후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사실 안 되는 건 안된다. 특히나 내가 자신이 없는 연구분야일 경우 과제 계획서 어딘가 꼭꼭 숨긴다 해도 베테랑 평가위원은 귀신같이 나의 부족한 부분을 찾아낸다. 어쩐다.. 당분간 과제를 내지 않겠다 했지만, 현실을 보자니, 연구비가 절실하다. 재료비는 줄여도 연구원 인건비는 내 월급을 쪼개서라도 지급해야 한다. 


마음 한편, 그렇게 속삭여 본다. "그래도 될지 모르잖아.. 피하지 말고 도전해 보자 1%의 가능성이 있다면 희망을 가지고 딱 제출 거기까지만 해보자"라고 지친 나를 달래어본다.


이번에는 시간은 전혀 문제가 안되었다. 오히려 더 큰 문제가 있었다. 재직 당시 이 과제는 전혀 관심이 없던과제라 도무지 형식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당시에는 과제가 넘쳐서 골칫거리였던 나는 팀장으로 너무 바빴다. 회의며 출장이며 우리 팀 MBO관리만으로 하루가 모자랐다. 팀장씩이나 되어서도 모르는 게 참 많았었구나. 부끄럽고 후회스럽다. 


그러나 지금 나는 결핍 그 자체다. 결핍, 상실은 사실 모든 에너지의 원천이 될 수도 있다라며 꼰대 같은 소리를 하며 나를 부추겨 또 한 번 도전했다. 친한 전 직장 동료에게만 과제 제출 의사를 밝히고 조언을 구했다. 역시나 들어도 잘 모르겠다. 모든 일에 좀 더 관심을 가질걸.. 결국 처음부터 하나씩 공부해 가며 관련 분야 선배의 도움을 받아 열심히 작성해서 결국 또 제출은 했다. 후련하지도 대견하지도 않은 한 번도 느끼지 못한 감정이 밀려왔다. "괜히 냈다.. 내가 낸걸 다 알 텐데.. 떨어지면.. 아. 소문이 엄청나게 날 텐데.. 좀 더 준비하고 다듬어서 다음에 낼걸.." 


발표날까지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다. 역시나, 발표 당일 아무런 연락이 없기에, 공고문을 재확인했다.  

"선정자에 한해서 메일로 안내드립니다" 답이 없으면 떨어진 걸로 알라는 말이다.. 누구도 나쁜 역할은 하고 싶지 않으니 각자가 알아서 뒷감당은 하라는 말이다. 참.. 씁쓸했다. 알면서도 그래도 선정되지 않았다고 알려주면 미련이 좀 덜 할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선정 발표 날짜 이틀 후 미선정 이메일 안내와 평가위원 평가내용이 첨부되어 왔다. 연구 참고하시어 연구개발에 도움 도시기 바란다는 위로 섞인 내용과 함께..

 

이번 일은 살면서 몇 안 되는 내 인생의 후회되는 일로 상위권을 차지했다. 어디서부터 멈췄어야 했나.. 아무리 부족해도 아니라고 판단이 되면 도전을 멈췄어야 했나.. 도전은 성공으로 가는 첫걸음이라고 믿고 있던 나의 순진한 생각을 멈췄어야 했나.. 될 거라고 믿고 싶었던 내 희망을 멈췄어야 했나..


    


도전하는 순간에 나는 가장 많이 성장했다. 도전하고 있는 나를 보며 대견해했고, 도전할 수 있는 지금의 나를 사랑했으며, 도전의 끝에서는 다음을 기약하며 다시 겸손했다. 그러나.. 결핍의 끝에 선 지금의 도전은 손에 잡히지 않는 희망고문이다. 놓지도 부여잡지도 못하는 채워질 때까지 멈출 수 없는 숙명과도 같은 희망고문 말이다. 


결과에 연연하지 말고 도전하는데 의미를 두자고 시작했지만, 결과는 어딘가에 남는 기록이다. 성공은 괜찮은 이력이 되지만, 실패는 지우고 싶은 그러나 지워지지 않는 주홍글씨와도 같다. 특히나 전 직장에서 꽤 잘 나가는 팀장이었던 나의 이력은 결국 실패라는 주홍글씨를 직장에 남겨버렸다. 도전하지 않았더라면 차라리 나를 회상 지도 않았을 텐데 말이다. 웃으며 아들 키우며 잘 살고 있다고 찾아가 수다를 떨 정도의 여지도 사라져 버렸다. 예상했던 일이지만 막상 닥치니 생각보다 멋쩍고 편하지 않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당시에는 더 많이 도전했었고, 더 많이 실패했었다. 그때는 실패하는 동료가 있어서 내가 실패한 게 아니라 우리가 실패했다 생각했었다. 그리고 절실하지 못했다. 지금은 너무 절실하다. 기댈 곳도 없지만, 멈출 수도 없다. 단체전은 내가 멈춰도 돌아가지만, 개인전은 내가 멈추면 거기서 경기 종료다. 나는 오롯이 혼자 가야 한다. 언제 기회가 올지 모른다는 막연함이 낯익어 가지 않게 벼랑 끝에 서 있지만 흔들리지 않는 단단함이 몸에 베이질 기도해 본다. 나의 전부가 실패가 아니라 내 부족함이 실패한 것이라 또 희망고문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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