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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나케이 Jul 05. 2022

쌓이면 골병이라면, 쏟으면 소통이다

쏟아낼 용기가 치유의 시작이다.

대학원 시절에는 꼭 어디 한 곳에 고질병이 생긴다. 위경련, 설사, 허리 디스크 등등. 넘치게 외향적인 나도 턱관절 근육이 뭉쳐서 갑자기 입이 안 벌어져서 티스푼으로 밥 먹던 서러운 기억이 있다. 항상 긴장한 상태로 스케줄을 머릿속에 타이머처럼 돌리던 그 시절 온몸은 항상 경직되어 있었다. 학위만 받으면 아픔도 미움도 지겨움도 리셋될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때 나의 시간은 거꾸로만 흘렀다. 반복되는 일상과 매번 실패하는 연구결과가 하루, 일주일 길게는 한 달씩 가기도 했다.  하루가 너무 길었고, 일요일은 한 번도 마음 편하게 쉬어 본 적이 없었다. 그때의 나의 세상에는


학위에, 학위에 의한, 학위를 위한 시간만 존재했다.

아무도 부여하지 않은 혼자만의 세상에서 인내는 쌓이다 터지는 골병과도 같았다. 학위 쟁취라는 동기부여가 의욕상실로 돌아왔고, 롤러코스터 같던 감정 기복은 결국 궤도를 이탈하게 했다. 한 달여쯤 학교를 못 나가게 되었던 어느 날, 아이러니하게도 아프고 화가 나고 미운 기억은 전혀 남아있지 않았다.


복도 커피 자판기 밀크 커피의 달달함이, 누렇게 때 묻은 실험가운의 묘한 따뜻함이, 지나가던 선후배와 안부 인사를 묻던 정겨움이 미치도록 그리웠다. 돌아가고 싶었다. 그 시간의 아련함이 지워지기 전에 다시 가서 연이어 기억하고 싶었다.


자리를 털고 다시 학교로 돌아가던 날, 뭐라 첫마디 운을 띄워야 할지 쭈뼛거리던 나는 혼자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런데, 선배가 지나는 길에 어깨를 툭 치며 인사를 건넸다. 숨 쉴틈도 없이 나는 그냥 막 다 쏟아냈다. 내 기억 속에 이야기 내용은 남아있지 않지만, 너무 말을 많이 해서 머리가 어지럽고 턱관절이 욱신욱신하게 아팠던 느낌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리고 선배의 한마디,   


- 야... 너... 우와.. 진짜..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어서 그동안 어떻게 참았데? 그러니 병이 나지 병이나..


어차피 멀리 가야 할 길이잖아 같이 가야지 같은 템포가 아니라 같은 곳을 바라보면서 말이야..     


누구와 내 인생을 공유하면서 산다는 생각은 그 시절에 하지 못했다.  나의 두서없는 쏟아냄이 그 선배로 하여금 나의 인생을 다시 바라보게 되는 터닝 포인트를 제공해 주었다. 그 당시에는 목표 달성 후 그림은 전혀 그리지 않았다. 목표까지도 사실 갈 수 있을지 막막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나 스스로를 힘들게 했던 것 같다. 유학시절도 그랬다. 유학만 가자 일단 가서 생각하자라고 습관같이 몸에 뱉 습성이 나를 뒤덮고 있었다.  생각이 행동을 방해할까 두렵기도 했고, 가진 패가 뻔해서 할 수 있는 게 떠나는 것 밖에 없기도 했다.  


모든 집단생활이 그렇듯 유학생활은 특히 인간관계가.. 가장 힘들다. 연구분야는 그냥 묵묵히 결과를 내면서 노력을 하면 되지만, 외로운 타지 생활과 언제 끝날지 모르는 길고 긴 수련기간 그리고 하루가 똑같이 반복되고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도 내가 누군지 조차 모르는 답답한 생활이다. 그때는 내가 말이 되던 안되던 내가 주체가 되어 다가가지 않으면 하루에 한 번도 말을 못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그게 소통이었을까? 나의 처음은 서툴렀다. 너무 오랫동안 쌓인 것들을 어디서부터 풀어내야 하고 상대가 어디까지 나를 받아들여줄 준비가 되어있는지도 모르면 그냥 잠깐 잡담으로 끝난다. 그런 시간은 시간이 갈수록 피로도가 쌓이고 시간 대비 기억에 남는 내용이 거의 없다. 리프레쉬 차원에서는 도움이 되지만, 물론 필요도 하다. 그러나, 내가 나를 이해하고, 지금의 나를 제대로 바라보고 하나씩 꺼내어 풀어보면서 이것이 쌓여서 병이 되지 않고 보듬고 치유하며 살 수 있는 방식은 아니었다. 어쩌면 내 유학생활이 가장 힘들었던 이유이다. 


내가 시간이 날 때, 내가 이야기하고 싶을 때 누군가와 이야기를 시작하는 여유도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중요하다. 그러나 너와 내가 같은 스폿에 앉아서 마주할 시간을 정하고, 서로 맞는 주제를 찾아서 이야기한다. 아니면, 아주 아주 가끔 있지만, 개인사를 먼저 던지기도 한다. 그러나 혼자 쌓아두는 것보다는 어떠한 방식이든 내 생각을 쏟아낸다는 것은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 나를 들어내겠다는 용기, 나를 직면하겠다는 용기, 나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할 용기까지 필요하니까.. 


나는 원래 바로 반응하는 응답 같은 소통을 선호했다. 만남, 웃음, 기운, 대화, 음식, 장소 모두 다 나를 둘러싼 주변이 나를 표현하는 하나의 그림처럼 기억되기 때문에.. 육성을 통한 서로의 마음을 들어주고 보듬어주는 따뜻한 소통은 여러 가지 나에게 동기 부여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항상 가능한 소통은 아니다. 특히 임신과 출산 이후 육아를 병행하며 직장까지 다녀야 하는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가뭄의 단비 같은 이런 소통이 작은 소원이나 소망이 되기도 한다. 아니면, 혼자만의 세상에 갇혀 꿈만 꾸는 희망이 쌓여 불통이 되기도 하고..  


그런 시간이 꽤 쌓여가면서 이 생활을 답답해하기도 했었고, 빨리 흘러보네 버리고 싶기도 했었다. 누군가와 만나 이야기하고 싶기만 한 그리움이 우울함으로 변해가던 어느 날 나는 종이에다 대고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글쓰기라는 매개체를 통해 말을 하기 시작했고, 결국 나를 가장 잘 이해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누군가를 통해 나를 이해받고 싶어서 쌓았다 풀어내던 화풀이가 아니라, 일상의 나의 발자취를 한 글자 한 글자 담아내면서 내가 잘 살아가고 있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그렇게 조금씩 나를 만나는 방식에 익숙해지고, 편안해지고, 오히려 더 많은 에너지가 내 안에 담기게 되었다. 글쓰기를 통해 나는 또 다른 세상을 마주하게 되었다.


나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일상에 쫓겨 정신없고 허우적거리며 하루를 보내고 있다. 친구를 만나는 것도, 친정엄마를 만나는 것도 휴가를 가는 것도 밀린 숙제처럼 쌓여 있다. 이제는 쌓아두고 누군가를 원망하지 않는다. 지금 내 마음을 여기 담아 전한다. 만나지 못해 아쉬운 마음과 만나서 전하고 싶었던 마음을 글에 담에 편지를 보내보려 한다. 비록 전해지지 않는 편지라 해도 나는 그들과 소통하며 언제나 만나고 있다고 내 마음 담아 함께 살아가는 이 시간을 같이 이야기하고 싶다. 



지난 2주간 목전 앞에 마감을 둔 일들이 또 나를 허둥대게 만들고, 모두를 원망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시간이 있었다. 가장 가까이 사는 지인과 만나 하소연하고 싶고, 내 상황을 이해해 달라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잠시 브런치를 열었다. 마음이 가만히 내려앉고 설렘이 먼저 다가왔다. 언제나처럼 열려 있었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다시 한번 나는 브런치를 두드리고 다른 세상으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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