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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나케이 Jul 09. 2022

임시 보관함.. 추억에 잠기다

잠시 동안 담아두려 했던 시간이 10년을 훌쩍 넘겼다. 

새벽 5시 무렵.. 마치 방금 전까지 아팠던 것처럼 너무 생생한 가슴 저림은 10년이 훨씬 지난 옛사랑과의 이별이 너무 생생하게 전해져 왔다. 너무나 일방적이었던 나의 태도가 고스란히 담겨 상대방이 얼마나 아팠는지 어젯밤 꿈에서야 생생하게 보였다.  이렇게 절절하게 용서를 구하고 싶은 마음은 뭘까? 아직도 힘들어하고 있는 건 아닌지 라는 어설픈 떠보는 감정이 아닌 지금 이 감정 그대로 다 전하고 싶었다. 너무 미안하다고..


연락처를 찾을 방법이 없었다. 한국을 오면서 모든 연락처는 새롭게 리셋이 되었고, 당시에는 잊고 싶은 마음에 차단까지 했던 터라 도무지 방법이 없었다. 이메일 기록을 뒤졌다. 정말 깨끗이도 지웠다. 모든 사진, 메일, 연락처.. 그토록 잊고 싶었던 내가 이토록 집요하게 연락해서 용서를 구하겠다는 심사를 나도 모르겠다. 


임시 보관함... 뭐지..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이메일 주소가 아니라  거의 로그인해서 들어와 보지 않았다. 아무런 생각 없이 열었다.. 이렇게까지 슬픈 편지들이.. 여기 고스란히 보관되어 있을 줄이야.. 한참을 읽고 울고 웃었다. 

보내지 못한 이별 편지 한 통을 여기에 전한다. 


제목 : 시간이 지나면... 

잠시 잊었었습니다... 무척 놀라고 당황스럽기도 합니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었냐고 물어야 순서란 거 알지만 순간 제 머릿속에서, 제 마음이 그랬습니다. 너무 갑작스레 저의 일방적인 판단으로 끝내버린 이 관계를 맘속 깊이 담아두고, 30대의 아름다운 사랑의 한 페이지로 넘기려고 합니다.. 그 속에 당신 이란 사람도 함께..

기억이란 거, 지나버려야 그 이름값을 하나 봅니다. 

추억이란 거, 되새겨야 그 이름값을 하나 봅니다. 

사랑이란 거, 이별을 해야 그 이름값을 하나 봅니다. 

이별이란 거, 잊어야만 그 이름값을 하나 봅니다.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는 거... 그 사람 자체로 사랑할 수 있다는 거... 참 어려운 일입이다. 

그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에 내 사람이라 뭐든 다 해주고 싶은 맘 때문에 정작 사랑하는 사람 맘은 보지 못합니다. 그 사람 맘이 이미 떠나가고 있는데도 그 소리 듣지 못하고 자꾸 자기의 맘으로 상대 맘을 읽어버립니다. 그것마저 아님을 모르고 그렇게 자신의 마음만 애가 타는 것처럼... 그 사람 행복하게 해 주겠다고 하던 다짐은 그 사람이 행복하면 됩니다. 그걸로 된 것입니다. 정작 자신이 행복해서 그 사람을 사랑하고, 곁에 있는 자신이 행복해서이지, 그 사람이 지금 울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헤어짐에, 이별에 이유를,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이유를 물어옵니다. 자신의 사랑에 문제를 수학 문제 풀듯이 사랑의 시간을 문제 풀이 과정으로 하나하나 짚어보고, 고치고....

사랑하는 사람과 그 사랑을 지켜나가고 이어나가는 게 사랑이라면 사랑하는 사람을 놓아줄 수 도 있고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 사랑 정리할 줄도 아는 것 또한 사랑의 한 면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사람은 이게 맘에 들지 않아서가 아니고 이 사람이 이것만 고쳤으면 하는 마음에서도 아니고 한 걸음 물러서서 다시 생각해보면 서로를 좀 더 이해하고 받아들여 줄 수 있는 상대에 대한 서운함과 소홀함이 문제가 되어서도 아니기 때문에.. 상대방에게 어떤 미련도 여운도 줄 수가 없었습니다.
처음 나를 만나서 나를 사귀게 되고 내 맘을 가져가기까지 혼자 노력했던 시간... 그 마음 알고 제가 받아들여서 이 사랑 시작하게 된 것처럼 사랑의 시작이 한 사람 맘에서부터 일 수 있는 것처럼 사랑의 끝도 한 사람 맘에서부터 일 수 있고 그걸 받아들이는 데는 사랑한 시간만큼 지나야 비로소 혼자가 될 수 있습니다.  

이별은 또 다른 사랑의 시작입니다.      


이 편지를 읽고 난 잠시 동안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꽤 오래전 그러니까 10년이 훨씬 지난 편지였다. 상대방의 이름만 당신이라고 고치고 그 편지 그대로 가져와 담았다. 헤어지자는 말을 전하는 마음을 수십 번 정리하고 정리해서 유선상으로 전하고 정말 잊고 살았는데, 몇 년이 지나 갑자기 연락이 와서 놀라기도 했고, 뭔가 넘어가지 않는 페이지 같은 답답한 상황과 헤어진 사람과의 연락으로 시간이 거슬러 가서 다시 이별을 맞이 하는 것 같은 힘들었던 심정을 담아 다시 한번 이별을 알리는 이 편지를 썼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보내지 못했다.. 그렇게 지금까지 임시 보관함에 내 추억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잘살아 달라는 말을, 그냥 나를 잊어달라는 말을, 마음 떠났으면 그만이라는 말을, 나는 나름 우리에게 아프지 않게 전하고 싶었던 것 같다. 상처 주는 단어로 영원히 기록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편지를 썼었다. 함 참을 써 내려갔던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있다. 그러나 보내지 못한 이유는 상대방에게 이런 말까지 영원히 간직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내가 어차피 나쁜 사람이니까.. 애써 포장하려는 내가 별로 였던 것 같다. 


나름의 세월을 살아오면서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만들면서 인연을 맺었다. 사랑하는 순간 그것이 다 인연인 것이다. 연속성과는 무관하게 연의 수명이 거기까지인 인연인 것이다. 아프지만 각자의 인연의 길이와 횟수가 다르고, 이번 생에 인연이 없을 수도 있고.. 누군가를 만나 둘이서 만든 시간이 있다는 추억은 시간이 갈수록 옅어지면서 길어지는 것 같다. 행복했던 기억을 아픈 기억이 다 뒤덮어서 헤어진 마지막만 머릿속에 남지만, 순간순간 불현듯 내가 아닌 내 몸이 기억하는 추억은 모두 다 아름답기만 하다. 


종종 이런 꿈을 꾸지만, 이번에는 내가 너무 큰 죄를 지어 꼭 내가 죗값을 받아야 할 것 같았다. 나는 한 번도 제대로 상대의 힘든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았다. 내가 더 힘들다 생각해서.. 보내지 못한 편지를 여기 남기며 나는 용서를 구하고 싶다. 



너무 늦은 용서를 구해서 미안해.. 좀 더 네 마음이 이별을 받아들일 시간을 주고 덜 아프게 덜 힘들게 잘 마무리했어야 하는데, 내가 너무 나빴어. 항상 내 편에서 이해해 주던 착한 네 마음을  내가 나쁘게 이용했어. 이별통보가 아니라 이별 이야기를 했어야 했는데.. 좀 더 내가 솔직했어야 했는데.. 난 숨기면 네가 더 독하게 나를 잊을 줄 알았어.. 미안해 너무 오랫동안 방황하게 해서.. 시간이 많이 흘러서 둘 다 상처가 잘 아물어 가길 바라고, 이제는 지난 추억으로 기억되길 바랄게.. 어디서든 행복하길 바랄게..넌 정말 괜찮은 사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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