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주말 육아를 독박이라 하지 않는 건, 누가 시켜서 맡겨진 일처럼 치부되는 아들과의 시간을 마치 버티고 견뎌야 하는 것처럼 훼손되는 게 싫어서다. 이런 맥락에서 남편에게도 굳이 오늘 누가 육아를 할 거냐 라는 눈치 보는 일로 주말 아침을 맞이하고 싶지 않아서 나는 배려 차원에서 양보를 한다고 생각했다. 이건 상대방의 의견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온전히 아주 순진한 나만의 오지랖 같은 착각이었다.
서로 부딪히고 나서야 알았다. 서로 앞만 보고 각자의 삶에만 살고 있구나.. 잠시 아들이라는 교차점에서 보게 되는 상대를 통해 비친 각자의 모습은.. 너덜너덜 힘들게 부여잡고 겨우 거기 서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최근 한 달여간 남편과 나는 돌아가면서 주말에 출근을 했다. 나는 일을 하고 와도 밀린 설거지, 빨래, 다음 주 이유식 준비까지..
일주일 이유식 다진 야채 준비 그냥 아들이 나랑 시간을 보내지 않은 것 외에는 내가 일하고 온 시간은 밀린 숙제로 보상이 되었다. 왜.. 나는 퇴근하면서 남편에게
"고생했지.. 미안해 얼른 저녁 준비할께"라고 하고
남편은
"나 오늘 모니터 토하도록 봐서 화면 보는 게 힘든데, TV 좀 꺼줄래"라고 한다..
결국 어제는 터지고야 말았다. 주말 출근이 얼마나 힘든지 내가 해봐서 남편을 이해하는 게 아니라, 내가 하면 내가 힘든 거지 상대가 힘든 건 "오늘 쉬지 못해 힘들지"라는 표면적 표현 속에는 "나도 오늘 쉬지 못했어"라는 나의 상황도 포함되어 있다. 어제는 퇴근해서도 뭐가 안 편한지 저녁을 먹고도 소파에 앉아 뚱한 표정이 그득했다. 밥 먹고 그냥 자리를 일어나는 남편의 뒷설거지를 하는 일은 사실 유쾌하지 않다. 딱히 일을 나누지 않은 것은 남편이 아들과 시간을 더 보냈으면 하는 마음에서 작은 집안일은 퇴근해서도 굳이 말로 꺼내 부탁하지 않는다. 그런데, 어제는 갑자기 한숨소리와 함께 아들을 안고 서재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박차고 들어가 뭐 하는 거냐 묻고 싶은 마음 반, 아.. 그냥 나도 피하고 싶은 마음 반.. 시간이 해결해 줄거라 생각했다. 20여분 아들이 아장아장 걸어 나오는데, 뒷따라 나오는 남편은 외출복 차림이었다.
-못 챙겨 온 게 있어서 학교 갔다 와야 할 것 같아
-뭐라고? 지금 뭐 한다고? 저녁 8시가 다 돼 가는데?
화가 났지만, 그러나 그것도 피하고 싶었다. 방금 전까지 아들과 놀던 사람이 갑자기 일을 하러 간다고? 남편은 머릿속에 해결되지 못한 일이 있으면 옆집에 불이 나도 자기 생각만 할 사람이기에 가능한 행동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상대의 행동을 이해하는 것과 내가 그것을 받아 들어야 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자기 일에만 몰두하면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 그래서 자기 분야에서 나름 성공하고 자리매김하고 있는 사람, 그 몰두하는 모습이 멋있어 내가 사랑했던 사람, 그러나 지금 너무 이기적이고 그것으로 말미암아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으로까지 생각이 치닫기 시작했다. 폭주하는 이 생각을 멈추지 않으면 곧 전복될 것 같았다.
나는 여느 때처럼 모든 방의 불을 소등하고, 차분히 아들을 안아서 재우고, 놀이방을 정리하고, 남은 부엌일을 마감하고, 자장가를 틀었다. 언제 올지도 모르고, 하루 종일 너무 피곤한 나는 그냥 자러 갔으면 하는 마음뿐이데, 이런 내 행동이 오해를 만들까 싫어서 넷플렉스를 보면서 그냥 기다렸다. 그리고 브런치 서랍을 열었다. 주채 할 수 없는 분노로 글을 막 써내려 가던 그때, 도어록 소리가 났다.
-삐삐 삑 삑삑
무시했다. 화를 참고 오늘을 그냥 넘기고 싶지 않았다. 어두운 거실에 서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 왜? 나도 이제는 안 참고 싶다는 표현이다.
-부추전 하나 구워 나눠 먹을까? 남편의 손 내미는 말이라고.. 부엌 정리 다 끝냈는데, 또.. 일거리를..
-어.. 구울께..라고 말을 피했다.
남편은 주섬주섬 치즈 안주와 화이트 와인을 한잔 따라왔다.
그렇게 한참을 전만 뜯어먹더니,
-오늘 사실 서운했어..라고 남편이 먼저 말을 띄웠다. 뭐래는 거야? 누가 할 소리를
-뭐가? 내가 과제 관리자에게 직접 문의하라고 해서? 내가 해도 해결 안 될 문제를 당신 전화 한 통이면 한 번에 끝날 일인데, 지지부지 시간도 없는데 그걸 꼭 내가 또 해야 하는 거야? 처음부터 내가 안 했나? 아니잖아! 내선에 해결 안 되니까 당신이 하면 되니까.. 내가 이렇게 티를 내야 겨우 알아먹고 하니까 일부러 더 그랬어..
그리고, 다음 과제 그거 당연히 당신 해야 하는 거 아니야? 당신이 해도 과제 선정될까 말까인데, 그걸 뭐 나한데, 좀 해주면 안 되냐고? 염치도 없어? 내 과제 연구 결과도 못 내서 이러고 있는 사람한테 그게 할 소리야?
누가 나 좀 말려줬으면 했다.. 이렇게까지 내가 할 줄은 나도 몰랐다. 내가 이렇게 퍼부으면 남편은 되려 차분하다.
-나는 몰리는 느낌을 받았어. 좋게 말하고 같이 해보자라고 당신이 말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당신이 해야지"라고 톡 쏘고.. 그래서 기댈 대가 없어서 아들 안고 방으로 들어간 거야.. 당신이 주말 내내 육아하느라 많이 힘든 것 같아서 더 같이 있으면 서로 싸울 것 같아서.. 아들하고 한 20분 여분 놀아주다 보니, 머리가 차분해져서 해결 못 하고 온 문제를 풀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래서 나갔다 와야겠다 싶어서.. 그런데, 들어오니 사람 와도 본적만 척 폰만 만지고.. 아,, 이건 화가 났다는 표시구나.. 그냥 좀 참아 넘어가 주지 싶었는데..
더 듣고 싶지 않아서 말을 끊어버렸다. 나는 내 이야기를 더 이어갔다.
-차라리 일이 덜 끝났으면 퇴근이 늦을 것 같다고 메시지를 보내. 괜히 머릿속 복잡하게 집에 와서 하루 종일 지친 나한테 뭘 바라지 말고.. 서로 힘들면 피 할 수 있는 사람이 피해야지.. 나도 좀 쉬다가 당신이 늦게 왔으면 차분히 서로 이야기할 수 있었지.. 극에 치닿을 만큼 체력이 바닥인데, 더 지친 얼굴로 퇴근해서는 딴생각만 하고.. 참.. 갑자기 일하러 나가겠다고 하니, 뭐 캐묻기도 그렇고.. 내가 뭘 더 참아 줘야 돼? 우리가 쌓아놓고 풀린 것처럼 하지만, 저 바닥에는 상처가 덜 치유돼서 뭐 하나만 붉어지면 막 다 올라와.. 왜 내가 말만 하려고만 하면 다 덮으려고만 해?
여기서 그만했어야 했다.. 하지 말아야 할 말까지 해 버렸다.
-당신만 힘들어? 나는? 내 거 다 내려놓고 이렇게 살고 있는 난 안 보여? 하루 절반은 아들 먹이고, 씻기고 그 외는 종일 부엌일만.. 나는 밀린 학교 일로 머리가 안 복잡한 거 같아? 올해까지 책 쓰기로 한 거는 어디까지 하다 말았는지 이제 기억도 안 나고.. 복직하고 처음으로 내는 책인데.. 마음이 얼마나 불안한지 알기나 해?
당신은 내가 안 불쌍해? 지나가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물어와 누가 불쌍한지!
앗불싸.. 너무 갔다. 이건 친구한테 하소연 정도로 했어야 하는 말인데.. 그런데 화가 화를 낳았다. 난 더 씩씩거리며 오늘 거의 끝장을 낼 기세였다. 남편의 대답이..어디론가 전화를 했가. 기가 찼다.
-어, 장모님 안 주무셨습니까? 집사람이랑 작은 다툼 중인데요. 누가 더 불쌍하냐 아무나 한테 물어보라 해서
전화드렸습니다.
-아이고 난 무조건 J서방 편이지~ 둘 다 안 불쌍한데? 불쌍한 사람 다 죽었는 갑다야. 내 진짜 불쌍한 사람들 불러주까? 원하면 내가 불쌍한 사람 줄도 세울 수 있데이~ 고마하고 둘 다 마 잠이나 자~~
우리 둘 다 빵 터졌다. 어이없는 남편의 전화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 밤의 끝을 결국 마무리했다. 우리 엄마의 한방 블루스로..
-내 좀 가여워해도 색시야.. 모라란 사람이다 아이가.. 좀 이뻐해도.. 우리 이래 핏대 세우면 오래 몬산데이
- 나 오래 살 생각 없어! 또 빗나갔다..
-이라지 마라, 아들은 어느 정도 키워놓고 우리가 이런 소리 해야지.. 내가 어쩌든지 먼저 갈 거다.. 내 혼자 아들 못 키운다. 마, 색시가 마지막까지 좀 더 고생 하소
그렇게 잠든 아들 이야기로 돌아 돌아 우리는 겨우 교차점에서 만났다. 각자 맡은 일만 잘해 내면 아무 문제없을 줄 알았다. 혼자 전력 질주하기도 하고, 달리다 넘어지기도 하고 내 길만 바라보며 가다 보면 좋은 날이 올 거라 믿었던 것이다. 우리는 몰랐다. 서로 손 내미는 곳에 서로가 있어야 할 만큼의 간격을 유지하며 평행선을 유지해야 서로 가끔은 바라볼 수 있다는 사실을.. 그렇지 않으면 상대의 평행선과 나의 평행선은 서로 다른 목적을 행해 가는 다른 두 개의 선이 된다.
부부는 하나의 선이다. 같이 가는 하나의 선 말이다.
내가 상대에게 부딪힐 것 같으면, 살짝 피해서 그 간격을 유지하고 안전선 상에 있을 때 해소할 부분이 있으면 손 내밀어 이야기를 나누며 선을 지키는 그런 관계 말이다. 서로 조심하고 배려하고 바라봐주며 같이 가는 평행선 같은 관계 말이다. 경주마처럼 내 길만 가다 보면, 지치고, 혼자서 모든 걸 짊어지고 가는 것 만 같은 외로운 막다른 길에 서게 될 때가 있다. 두 선 모두 같이 겪는다면, 결국 갑자기 아프게 부딪혀서 만나는 원치 않는 교차점은 서로 바라볼 여지가 없게 된다. 그래서 털어내고 일어날 기운을 얻는 게 아니라 갑자기 들어온 상대가 나를 이렇게 만든 것처럼, 그때 당시의 상대를 왜곡해서 나를 보듬으려 한다. 그건 사실 비난이고, 원망이고 또 다른 상처가 될 뿐이다.
나는 사실 남편에게 다 하지 못한 말들이 있다. 꼭 물어보고 싶은 말, 내가 걱정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 같은 것들 말이다. 내가 말을 하기를 정말 원하는 건지도 사실 잘 모르겠다. 내가 원하는 답을 안고 답을 몰아가는 이야기로 상대와 협상하듯 말하고 싶지 않아서 내가 조금 더 성숙하면 그 답을 내가 찾아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이 아직은 조금 남아서 고이 접어 담고 산다. 내가 이 사람을 선택했던 순간은 사실이었고, 난 그 한 페이지를 아직도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로 기억하고 산다. 지금이 어떤 모습이든 우리는 그때 정말 사랑했다.
이렇게 혼자 답답하고 힘들 때, 늦은 밤 어디 갈 곳도 이야기할 마땅한 상대도 없을 때 작가의 서랍은 벼랑 끝에 나를 잡아주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이제 브런치는 힘들지만 차분히 앉아 나를 들여다보며 정화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해 준다. 어제 그 기분대로 글을 썼다면, 화가 잔뜩 난 헐뜯는 이야기로 나만 완벽한 사람처럼 포장해서 남편에게 퍼붓는 아픈 일기로 남았을 것이다. 나는 브런치를 감사와 반성 그리고 깨달음이 있는 기록으로 담고 싶다. 글을 써내려 가다 보면, 내가 놓친 것들과 내가 나를 좀 더 냉정하게 볼 수 있어서 한 층 성숙된 인간이 되어 가는 것 같다. 지금 가장 잘한 일을 꼽으라면 브런치 작가에 도전한 일이다.
* 항상 부족하고 장황한 제 글 끝까지 읽어 주시는 분들께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합니다. 덕분에 제가 글을 씁니다. 저도 좀 괜찮은 뭔가를 하고 있는 사람 같은 기분을 갖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