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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나케이 May 30. 2023

나는 그녀를 이해하기로 했다.

그녀의 삶은 그녀의 것

 2020년 음력 4월 8일.. 새벽 2시경.. 부처님은 오시고, 아버님을 부처님 품으로 돌아가셨다. 그해 여름 7월 나는 임신을 했고, 21년 4월 아들이 태어났다.. 투병 중에 시어머니는 마음의 준비를 그렇게 하셨다.



-할아버지, 힘들어요? 내가 그만 욕심부릴게요. 편하게 언제든 가요. 그리고... 당신 아들의 아들로 그렇게 오세요. 그렇게라도 와 주세요. 그리고 원하는 공부 실컷 하세요. 그동안 너무 고생했어요..



거짓말처럼, 그해 임신을 했고, 다음 해 아들이 태어났다. 모두들 그리워하던 아버지가 아들로 태어났다고 믿었다. 나는 어떤 형태든 감사했다. 그저.. 아버님 살아생전 손주 안겨드리 못한 죄송함을 이렇게 라도 풀어드리고 싶었다. 아들이 시어버님 모습을 많이 닮았다. 웃는 얼굴이 아버님 모습 같았다. 믿고 싶었다. 



우울해하시던 어머니도 많이 밝아지셨고, 손주 보고 싶어서 더 오래 살아야겠다 긍정적인 마음도 먹으시고 그럭저럭 한 해를 잘 마무리 하나 싶었는데, 건강검진 결과 어머니 머리에 꽈리가 있다고 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라고 진단을 받았다. 무서운 꽈리의 제거술은 비교적 위치가 좋아서 간단하게 진행된다고 해서, 결국 21년 겨울 수술을 했다. 경과는 좋았지만, 병상에서도 어머니는 1월 설제사를 걱정하셨다. 



두 며느리 상의 끝에 맏며느리인 나는 이 참에 저희 집으로 제사를 모시고 오겠다 했다. 동서는 형님은 아직 아기도 어리고, 거리상 어머니 이동도 힘드시니, 그냥 어머니 집에서 지내자고 했다. 결국, 두 며느리 사이에 거리가 좁혀지지 않자 어머니께서, 제사상 사서 지내자고 의견을 주셨다. 당신이 아파서 모두에게 미안하다며.. 이 참에 앞으로 그렇게 지내자고 하셨다. 



적당한 상차림을 주문하고 설을 맞이했다. 음식상을 받아 보시자마자 어머니의 낯빛은 쭉 먹구름이 끼어 당최 걷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마음에 안 드시면 말씀하시라고 권유드렸지만, 한숨만 쉬시고 대꾸도 하지 않으시고, 이게 얼마냐고 같은 질문만 하셨다. 우리는 그냥 무시하고 지내기로 했다. 그렇게 서로 불편함을 안고 추석차례를 또 지내고, 그해 겨울 어머니는 넘어지셔서 결국 허리를 다치셨다. 연이은 어머니의 상해는 도돌이표처럼 겨울마다 찾아왔고, 드디어 어머니께서 말씀을 꺼내렸다. 



-자네들도 나도 안 먹는 이 상차림 비싸게 사서 차리고 나면 남은 음식 다 버린다. 생각하니 돈을 버리는 거지.. 해서 기제사는 내가 사서 장만하고, 명절제사는 그냥 제내지 말자. 요즘 뭐 다 그렇게도 한다더라..



상상도 못 한 전개에 아무도 대꾸도 못하고 한참을 그렇게 멀뚱이 다들 멋쩍어 두리번거렸다.  어머니는 당신의 민망함과 미안함을 해소할 수 있는 마지막 수를 내놓신 것이었다.  다행히 두 아들이 나서 마무리했다. 그렇게 합시다라고.. 그렇게 올해 설명절은 각자 먹을거리 조금씩 챙겨 와 설날 아침 아버님 사진과 함께 간단한 식사를 했다. 모두 무리하지 않고 책임도 없으니 오히려 어머니 건강을 화제로 잘 넘어갔다. 



어김없이 돌아온 부처님 오신 날을 우린 아버님 오신 날로 부른다. 슬프다기보다 오히려 설렌다. 부처님과 친구 먹은 아버님이 셀럽이 되신 것 같아 뿌듯하기까지 했다. 시이모님께서 어머니를 도와 제사장을 봐주신다고 했다. 어머니 돌봐 주시는 여사님과 함께 딱 이틀 장보고 끝냈다며 며느리들을 안심시키셨다. 행여 다시 제사상을 사서 지내자고 할까 두려우셨던 모양이다.  



정말 탕국과 나물만 손수 하시고 모두 다 장만해 둔 음식을 상차림 양만 사서 준비해 두셨다. 믿을 수 없었다. 음식 손 크기로 대한민국 열손가락 안에 드시는 어머니께서 이렇게까지 변화실 줄 몰랐다. 하루종일 그렇게 기뻐하시며 웃으시는 모습을 정말 오랜만에 뵈었다. 



제사가 끝날 무렵, 어머니는 마치 처음처럼 이모님의 입을 빌어 이야기하셨다.

- 언니 대신해서 장 보니까 시장에서 장만하고 조금씩 사서 하니까 딱 좋아. 이틀 만 장 보면 된다. 

이어 어머니께서 마무리하셨다.

- 그래, 두 며느리가 다 장만해 놓은 거 장만 봐 오면 된다. 내가 탕국 하고 나물은 직접 하면 딱이다.



내가 먼저 정적을 깼다. 

-어머니, 동서랑 제가 일을 하니 같이 장 보러 가는 건 날짜 잡기도 힘드니, 예전처럼 제가 전, 생선, 문어 사서 오고, 동서가 마른 거, 과일, 떡사 올게요. 그리고 어머니께서 탕국 하고 나물 준비 하시면 상처림 되겠네요. 



어린 소녀처럼 어머니께서 기뻐하셨다. 명절제사 안 하기로 한 것도 은근히 이렇게 사서 하자며 넌지시 말을 섞으셨다. 그냥 그렇게 못 이기는 척해드리기로 했다. 당신의 남편 제사상인데, 당신이 몸이 불편하니, 간소하게 하자는 아들 며느리의 의견이 어머니는 섭섭했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아들 며느리에게 짐을 지어 미안함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남편에 대한 미안함까지 속만 상하셨겠구나.. 며느리 고생시켜 미안해도 당신 남편 제사상도 하고 싶은 대로 못하면 더 속상할 수 있겠구나 싶었다.. 그냥 내가 내 남편 제사상 아들 며느리가 못 차리게 하면 속상하겠다 싶었다. 딱 그 입장 한번 되어 보니, 그녀가 이해가 되었다. 그동안 그녀를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았던 내가 참 결국 며느리구나 싶었다.. 며느리의 어머니가 아닌 어머니를 여자로 봐 드렸다면, 남편 밥상 차리고 싶은 대로 못 차려 주는 이 상황이 정말 답답하셨겠다 싶었다.. 



나는 그녀를 응원하기로 했다. 그리고 한 여자의 딱한 사정을 도와 제사상을 차림을 돕는 옆집 아줌마가 되어 드리기로 했다. 가끔 수다도 떨고, 친척보다 더 가까운 이웃말이다, 서로의 생사가 더 애틋한 오래오래 내 곁에서 살아주길 바라는 내 이웃 할머니가 되어 주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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