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충분히 오늘도 빛나고 있다.
2025 3 25 일 부고소식
-오랜만에 친정에 가서 주말에 돌아오는 일정인데, 경남, 경북 일대 대규모 화재로 고속도로 일시통제로 토요일 하루 더 지내기로 한 토요일 밤 10시, 난데없는 부고소식이 왔다. 스팸이라 생각했다. 친한 지인 부모님도 아니고, 평소 지병이 있다고 들었던 분도 아니었다. 정신이 번쩍 들고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박사학위를 받고 있는 학생의 어머니의 부고소식이었다. 메시지에도 정적이 흘렀다. 단톡방에 아무도 응답을 하지 않았다. 설마설마했던 혹시나 사고인 건 아닐까 하며 빈소에 들어선 내 마음이 쿵하고 내려앉았다.
아버지와 여동생 그리고 문상을 하는 학생은 아무런 말도 아무런 감정도 요동치치 않는 한 단계 넘어선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상주의 모습에 조문을 어떻게 해야 할지 되려 당황하게 만들었다. 심하게 적막한 빈소에서 나의 숨소리가 너무 크게 들렸다. 가슴이 답답해서 그저 물만 마셔도 체기가 생기는 것 같았다. 학생이 꺼낸 한마디였다.
"어머니 마지막을 못 보았습니다. 갑자기 복통을 호소하다 병원에서 별 다른 소견이 없다고 돌려보냈는데, 토요일 저녁 토하기 시작해서 큰 병원 옮겨 입원 수속 중에 쇼크가 와서 그대로 눈을 뜨지 못하셨다 합니다."
" 너무 많이 울어서 이제 눈물이 도저히 나지 않습니다."
아무도 위로해주지 못했다. 고2 때 아버지를 보낸 나의 슬픔이 감히 울지 못했다. 공감이 될 수 없는 나의 상처가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한 침묵으로 위문을 했다. 다양한 울음소리가 울려 퍼진 빈소, 조문객이 목놓아 울던 장례식장이었다. 나는 깊지 못한 관계로 울음으로 조문도 하지 못했다. 아버지를 먼저 보낸 나지만, 나느 침묵했다.
" 마음에 어떤 응어리가 있다면 엄마에게 다 말하렴.. 그리움이 사무쳐 오는 날이 매일 매시간 일거야.. 엄마와 함께한 시간만큼일 테니까, 애써 이겨내려 하지 말고 그런 날은 엄마를 불러.. 어디서든 불러보렴..."
나는 그렇게 메시지를 남겼다..
내가 가장 듣기 힘들었던 말이.." 괜찮아질 거야" , " 이겨내야지" " 산 사람은 살아야지.." 우리 엄마 나이가 지금 내 나이였고, 나는 학생보다 더 어렸던 시절.. 내가 기억하는 그때 나의 울음은 아버지 부재에 대한 두려움이었고ㅡ 나에게만 지금 일어난 부재에 대한 억울함이었다. 왜 나만 갑자기 아빠가 없는 거야? 나에게 무슨 일이 일 어 난 거야? 그리고 나는 내일 일상을 살아나가야 하는 마음의 멍이 너무 깊게 들었던 것 같다.
그냥 살아진다는 말이 툭하고 나오는 날이... 오긴 온다.. 우리가 어머니, 아버지 나이가 될 때쯤.. 다시 슬픔과 그리움이 두배로 사묻혀 오는 날도 온다.. 우리가 엄마, 아빠가 되었을 때쯤.. 먼저 가신 부모님의 마음도 이해하고 보듬을 수 있는 날도 온다고... 말해 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