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부와 너구리수염 그리고 방값
1.b
내일 모레면 서른이 다 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IMF 사태에 대한 경험과 기억은 많이 없는 세대이다. 그래도 어릴 때 가족과 주변의 혼란과 책이나 기록에서 미루어 짐작하기에는 부족하지도 않다.
우리나라나 일본은 대혼란이 오기전에 있던 경제적 풍요의 시절에는 졸부들이 여럿 생겼다고 알고 있다. 모래성이 무너지기 전에 한참 올라갔던 것인지, 부실한 기반을 넘어설 만큼의 세계적인 호황이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러한 사람들이 생겼다. 주차장의 주차선을 한참 삐져나오는 주차를 하고 주차요원의 공손한 요청도 모른척 하며 콧방귀나 뀌고, 백화점에서 잔뜩 긁고 콧대 번쩍 들고 당당히 걸어다녔을 사람들. 하지만 그들은 부자가 아니아 졸부라고 불렸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말을 생각하며 그런 모습을 비판할 수도 있었겠지만, 따져보면 그들은 귀족들도 아니고 사회 고위층도 아니고 그냥 졸부였을 뿐이다. 도덕적인 잣대를 들이밀기전에 그들에게 귀족의 대우나 권한을 부여한 적도 없으니까. 따져보면 고양이 수염 비스무리한 것을 가진 너구리한테 너는 왜 고양이처럼 울지 않느냐고 핀잔을 준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냥 살짝 비슷했을 뿐인데 말이다.
2.
근래에 많은 회사에서는 직원들에게 주인의식을 갖고 업무에 임하라고 한다. 주인의식이라는게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지만, 현상적으로 야근이나 주말출근을 하고 그러면서 수당은 바라지 않고, 혹여나 잘못된 일에 대해서 책임을 지기 바라는 것이라 생각한다. 너는 일찍 퇴근하기만 하고 왜 그렇게 주인의식이 없냐? 왜 그렇게 주인의식 없이 보상만 바라냐?
표면적으로 보면 직원들은 회사의 (거의) 주인이긴 하다. 사무실 내외부의 용품들을 제멋대로 쓰면서 구성원을 위해 돈을 벌어오고 있지 않은가? 꼬박꼬박 자취방 월세를 내면서 화장실 청소도 하고 안에서 밥도 먹고 잠도 자고..우리의 삶과 비슷하다. 아 근데 생각해보니 자취방의 주인은 건물주나 또는 은행이다. 월세 내는 사람은 사실 아무것도 아니다. 전셋집 사는 사람들도 실은 아무것도 아닌것처럼, 모두 아무것도 아니다. 이쯤되면 주인의식이라는건 월세와 전셋값에 치환할 수 있지 않을까? 요구하는만큼 지불하면 그 방과 그집의 주인이 된(것 같)다. 매년 차곡차곡 오를 주인의식, 아니 방값만 지불하면 진짜 주인과 주인의식들은 모두 행복해지는 것이다. 그러다 그게 맞지 않으면 더 낮은 방값, 더 높은 비용을 찾아 서로 재조정이 일어날 뿐이다.
1.e
여하튼 나도 모르는 사이에 고양이 수염이 붙어있겠다, 목소리 가다듬고 고양이 울음소리를 내보아야지. 너굴~너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