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미국 다음 주는 파리 그 다음 주는 런던...
승무원 하기 전에는 북미와 유럽을 돌아다니는 승무원들의 생활이 정말 부러웠다.
말 그대로 내일은 도쿄 이틀 뒤에는 상하이 그리고 일주일 뒤에는 파리 이런 일정이 실제로 가능해 보였기 때문이고 나도 승무원 생활을 시작해 보니 이게 사실 조금의 과장이 있긴 하지만 아주 틀린 말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물론 이건 회사마다 다르긴 하다.
어느 회사는 특정 노선만 가는 경우가 있고 비행 기종에 따라서 가지 않는 경우도 크다. 예를 들어 중동의 어느 항공사는 에어버스 380 전용 승무원은 에어버스 380만 탈 수 있어서 가는 경로가 상당히 제한 되어 있다고 실제로 일하는 크루들에게 들었다.
내가 일했던 캐세이는 향후 어떻게 될 지 모르지만 모든 기종을 할 수 있어야 하고 그래서 전 노선을 다 간다. 그래서 캐세이는 비행기 기종이 다른 회사에 비해서 그리 다양하진 않다. 그래도 매년 돌아오는 안전 교육을 대비하기 위해 공부하다 보면 보잉과 에어버스 그리고 그 안에서 세부 기종까지 봐야하기 때문에 머리가 여간 아픈 게 아니다.
기본적인 안전 수칙은 동일하지만 비행기 기종마다 기기의 위치나 세부적인 게 다르고 도어를 여는 것도 미세하게 달라서 따로 다 외어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 뭐 지금도 눈감고 비행기 도어 정도는 열 수 있지만 시험도 봐야 하고 트레이너가 질문도 하고 해서 겨우 가볍게 볼 건 아니다.
실제로 나는 코로나 전이긴 하지만 한 달 로스터가 정말 다채롭게 나온 적이 있었다.
한국인 승무원이라 인천 비행은 당연히 나왔고 여기에 더해 일본 나리타 비행과 프랑스 파리 비행과 태국 방콩 비행까지 한 달 안에만 몇 개 국을 돌아다니는 건 기본이다. 특히 당시에는 스왑도 상당히 자유로워서 내가 원하는 스케줄을 만들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다.
그러다 보면 시차가 문제이긴 한데 사실 나는 북미를 제외하면 시차 문제를 거의 겪지 않았다. 북미는 거의 12시간 차이라서 시차 때문에 힘들긴 했고 남들이 쓰는 비법 같은 걸 다 사용해 봤지만 방법이 없어서 그냥 졸릴 때 자고 잠 안 오면 일어나서 활동하고 했던 기억이 난다. 홍콩 크루들은 홍콩 시차에 따라서 미국 비행을 가면 밤낮이 바뀐 생활을 하던데 나는 그것도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아서 그냥 미국이나 홍콩 시차도 아닌 내 몸의 시차를 따라 갔다.
그래서인지 처음에는 죽을 거 같은 시차도 나중에 가니 적응이 되긴 했다. 물론 시차 라는 게 완벽 적응은 어려워서 결국 나도 미국 비행은 자주 안 하긴 했던 기억이 난다.
미국 비행 가면 멜라토닌 같은 걸 사와서 버티는 승무원들도 있지만 나는 몸을 버리긴 싫어서 약으로 버티진 않았다. 사실 생각해 보면 몸이 정말 닳고 닳는 직업이기에 기본적으로 월급을 많이 줬으면 싶지만 현실은...
그래도 지나고 보니 다 즐거웠던 기억만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