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역시 어릴 때는 친구에 연연하던 시절이 있었다.
연인 관계 못지않게 끈끈하고 좋아하면서도 미워하고 싸우기도 했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내가 여고생이던 시절,
정말 좋아하던 내 친구는 늘 밝고 재미있어서 친구들에게 인기도 많았다.
고등학교 3년 내내 같은 반인 적은 없었지만 집에 가는 길이 같아 친해졌고,
집안 사정도 비슷해 공감대가 많아 친구는 언제나 나의 베프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로에게 남자친구가 생겨도 우린 늘 자주 만나고 비밀이 없는 사이었는데 어느날 인가부터 대화의 주제가 없음을 알게 되었다.
내가 뒤늦게 대학에 진학하고 였다.
친구는 회사 이야기를 하게 되고 나는 학교 이야기를 주로 하게 되니 더이상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아서 우리의 대화에 공백이 생기는 것이었다.
내가 느낀 것을 친구도 느꼈으리라.
우리는 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은 없지만 그렇게 조금 틈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래도 내 마음속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친구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친구가 이직을 한 회사에서 친해진 직장동료의 별명을 부르며, 그 동료의 이야기를 자주 할 때에는 작은 질투심이 일기도 했다.
이제는 내가 친구의 가장 좋아하는 친구가 아닐까봐서.
친구는 나보다 더 일찍 결혼하고 아이를 낳다보니 인생에 중요한 시기가 점점 어긋나 우리에게 틈은 점점 더 벌어졌다. 어느새 우리는 생일날에나 안부를 묻는 사이가 되었다.
성인이 되어서도 친구라는 존재가 결코 작지 않았던 나도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보니 세상 모든 것이 멀어 지는 느낌이다.
중학교 때 만난 친구도,
고등학교 때 만난 친구도,
대학교 때 만난 친구도,
인생의 사이클이 점점 달라지니 점점 멀어져간다.
그만큼 삶에서 중요한 우선순위가 달라진다는 말이겠지만, 더 나이가 들면 내게는 자주 만나는 가까운 친구가 얼마나 남아있을까?
친한 친구라도 각각 처한 사정이 다르니 내 속의 이야기가 다른 친구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경험을 한 뒤로는 친구임에도 말 한마디가 조심스러울 때도 있다.
어느샌가 내 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진심으로 이야기를 들어줄 친구는 남아있지 않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 그런 친구는 아닌 것 같다.
마흔에도 그런 친구가 있다면 인생을 잘 살았다는 증거이다.
사소한 것에 울고 웃던 어린 시절보다는 감정의 소비가 덜한 지금이 편한 면도 있지만,
가끔은 순수하게 친구들과 웃고 떠들던 그 시절이 그립기도 하다.
친구야, 잘 지내니?